4,423만 명이 지켜보는 다큐, 대한민국 검찰왕국

뜬금없는 양복쟁이 부대가 시장에 들어선다.
‘네꼬다이’ 붙동이고 ‘메가네’ 걸친 자들이다. 가지각색으로 위장한 경호원 수백 명의 호위는 기본이다. 놋갖신 질질 끄는 소리를 내는 따라쟁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제법 각축이 치열하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는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을 든 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말 그대로 줄줄이 사탕처럼 엮인 자들이라, ‘이방인’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다. 좁은 저잣거리는 금세 북새통을 이루고,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으로 둔갑한다.

성지가 된 시장

그 와중에 내로라하는 ‘배불뚝이’ 빙 둘러 세우고, ‘와리바시’로 벌건 떡볶이를 달게 삼킨다. ‘먹방’에라도 출연한 듯 ‘팥고물시루떡’을 집어 먹다가 ‘우와기’를 벗고 ‘오뎅’ 꼬치를 한 입 베어 문다. 그리고 괴춤에서 온누리 상품권을 몇 장 꺼내 들더니, 사무실에 들어가서 먹자면서 튀김이랑 닭강정을 한 봉지씩 챙기도록 지시한다. 거리낌 없이 이 집 저 집 들락거리고, 당당하게 이 사람 저 사람 지근거리며 ‘야리꾸리’하게 희희낙락한다. 방약무인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생뚱맞아 보이지만 그게 다 연출이란 걸 왜 모를까.

띠쟁이 피켓쟁이들이 ‘아싸아싸!’를 외치는 가운데, 앞치마 두른 상인이 ‘대박’을 연발하고, 구부정한 상인은 그의 손을 잡지 못해 안달복달한다. 사진쟁이가 그 순간을 놓칠 리 없다. 말쟁이는 그의 일거일동을 생중계하고, 글쟁이는 갖은 미사여구로 호도하기에 바쁘다.

바로 그 순간, 「공정과 혁신으로 새로운」 KBS를 비롯하여, 오만 신문과 방송이 뉴스거리랍시고 밤낮으로 내보낸다. 이는 다시 소셜 미디어 광고를 통하여 핫뉴스나 톱뉴스로 포장한 채 곳곳을 되누빈다. 흥미 하나 없는 ‘고짓’을 무슨 보약이라고 재탕 삼탕한다. 내가 뉴스 채널을 돌리는 까닭이다.

‘총선 교본’에 나오는지 모르지만, 하루가 멀다고 그렇고 그런 시장을 싸돌아다닌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자들에게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그중의 하나가 대구 서문시장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성지 순례단’을 이끌고 그곳을 찾아 ‘고해 성사’를 한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 남 없이 다 같다. 쌀값, 콩나물값, 버스비도 모르는 자들이 무슨 민생 타령인가.

세상천지에 없는 ‘합리적’ 대파

근데 이번엔 전통시장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주재한 민생경제 점검 회의에서,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를 내릴 수 있도록 농산물을 중심으로 특단의 조치를 즉각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파 한 단을 들어 보이면서 “나도 시장을 많이 가 봐서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뉴스를 종합하면, 대통령이 들른 매장은 일주일 전인 지난 11~13일 할인 행사에선 대파를 한 단에 2,760원에 팔았다. 당시 매장은 이 가격이 농식품부 지원 20% 할인 가격이라고 광고했다. 이후 대통령 방문 전에 1,000원으로 가격을 낮췄고, 대통령 방문 당일 875원으로 더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한겨레(2024.03.19.)는 “대통령이 ‘합리적’이라고 말한 875원은 농민이 1년 동안 들인 공을 모조리 포기하게 하는 ‘불합리한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0년 대파 가격이 817원까지 떨어졌을 때 전남 지역 농민들은 앞다퉈 밭을 갈아엎었다. 생산비는 한 단에 1,000원 이상이다.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는 50대 농민 허 아무개 씨는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대파 가격 875원이 가능한 가격이냐는 논란보다, 대파 가격의 적정선조차 알지 못하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 수준이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최혜정 논설위원은 “마음만 급할 뿐 세상 물정은 모르는 것 같다.”고 하면서 875원을 「대통령 맞춤형 가격」이라고 빗대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임이 틀림없다.
필자가 사는 고양시에서는 ‘깐 대파(500g/봉)’ 한 단 값이 얼마나 될까? 오렌지마트(중산점) 2,580원, 자유로마트(중산점) 2,980원, 홈플러스(중산점) 3,990원, 이마트(풍산점) 3,980원, 하나로마트(삼송점) 3,500원이란다.

내친김에 대통령이 들렀다는 마트에도 문의했다. 천 단 한정인데 금세 동이 났단다. 내일(21일) 가면 살 수 있느냐고 묻자, 행사 기간을 연장해서 오늘까지였다면서 관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875원은 아니라고 하자, 원래 1,250원인데 회원 적립할 경우 30% 추가 할인이 되는 거라고 했다.

같은 하나로 마트지만, 매장의 위치에 따라 가격을 대중없이 매기고 있다.
같은 대파지만, 마트에 따라 그 값이 875원부터 3,990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양재동파'와 '삼송리파'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집은 대파라는 미끼 상품으로 대통령까지 낚는 대단한 손이 작용한 모양이다. 떴다방 수준의 장사치 수법이 아니라면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말한 ‘합리적’ 대파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아무튼 대통령 말을 인용하면, 내가 사는 고양시 파값은 모두 ‘비합리적’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줄곧 터무니없는 값을 주고 파를 사야 한다. 대통령 앞에서만 875원이라니, 이 얼마나 부조리(不條理)한가? 고양시에 사는 내가 잘못인가? 파를 그닥 즐겨 먹지 않아서 다행이다.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파이낸셜뉴스(2024.03.20.)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농협 하나로 마트의 대파 가격은 18일에만 특별히 낮춘 가격이 아니다.”라며 “최근 발표된 정부 물가 안정 정책이 현장에서 순차적으로 반영된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달라진 게 뭔가?
한 사흘 그렇게 호들갑을 떨더니 그게 끝이다. 결국은 도로아미타불이다. ‘값도 모르고 싸다 한다.’더니 빈말이 아니다. 그러니 욕을 먹는 게지. 누구 말대로 ‘잡으라는 물가는 아니 잡고 애먼 사람만 잡는다고.’

일언천금

예부터 일언천금(一言千金)이라 했다.
장부의 말 한마디는 천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장부일언 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나 장부일언 천년불개(丈夫一言千年不改)란 말이 회자하고 있다. 장부의 한마디는 천금보다 무겁고, 천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굳이 ‘장부’에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 남녀를 가리지 말고 그만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허투루 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대파 한 단을 놓고 무슨 농지거리할 리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대파값을 안다는 자체가 더 이상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고 ‘합리적’이란 말을 할 수 있을까? 필시 어떤 노회한 모사꾼이 넌지시 귀띔했으리라. 

하늘같이 섬긴다던 만백성은 ‘개돼지’로 전락했다.
숫백성의 머슴이 되겠다던 간상(奸商)은 갖은 짬짜미 뒤에 숨어 지상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개돼지’보다 못한 천하의 잡것들이, 회관 관사 청사 의사당 요정 기방 아방궁을 넘나들며 떼거리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 대한민국!
‘건전가요’란다. 아니다. 지네들만의 교방가요(敎坊歌謠)일 뿐이다. 어차피 나야 ‘이생망’이니, 내 입으로 저 노래를 부르기는 글렀다. 니 맛도 내 맛도 없다. 노랫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4,423만 명이 지켜보는 다큐, 대한민국 검찰왕국

대파 못 먹고 죽은 귀신 있을까마는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누구 한 사람 들어주지 않는다. 앉은뱅이 강 건너듯 별수 없이 혼자 흘긋거린다. 가다 말고 쌕쌕거린다. 길모퉁이 돌다 말고 침을 뱉는다. 꺼이꺼이 나만의 콧노래를 불러보지만, 곡조 없는 푸념만 헐떡거린다. 성에 차지 않으니, 오늘도 허공에 대고 뇌까린다.

서울의봄 물럿거라
개불상놈 나가신다
절찬리에 상영중인
대한민국 검찰왕국

간대로운 등신꼴통
가불가불 나불나불
간실간실 능글능글
주구장창 깐죽깐죽

눈만뜨면 나달나달
입만열면 거짓부리
이집저집 껄떡껄떡
사방팔방 허랑방탕

꾸역꾸역 다진뱃속
구멍구멍 벌룩벌룩
목구녘은 피똥싸고
밑구녘은 꺽꺽대고

쎗부닥이 씨불씨불
숨구뎅이 걸근걸근
빈둥빈둥 탱자탱자
개코쥐코 쏼라쏼라

만백성은 까라지고
숫백성은 천창만공(千瘡萬孔)
용와대는 나몰라라
빈들빈들 건들건들

까들까들 야살쟁이
좆도모른 쥐알봉수
인두겁쓴 개망나니
사바사바 아수라장

 

MBC 뉴스 갈무리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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