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면 됐지
이름 알아 무엇하랴
봄엔 봄꽃 여름엔 여름꽃
가을엔 가을꽃 겨울에는 겨울꽃
시덥잖은 낯꽃으로 꽃숭어리만 찾지 마라.

꽃이면 됐지
이름 몰라 푸념하랴?
들엔 들꽃 산엔 산꽃
풀엔 풀꽃 나무에는 나무꽃
낫값도 못하는 주제에 저승꽃이라 괘념 마라.

별꽃 달꽃 해꽃
어디 값을 달라 하고
물꽃 불꽃 바람꽃
언제 꽃이라고 유세하더냐?
아서라, 가시내 살꽃 찢어지는 우음소리나 여겨들으라.

꽃이라고 다 꽃이랴 허투루 재지 마라
두릿두릿 빗뜨지 말고 되작되작 들추지 마라
꽃이 없는 민꽃 있고 열매 없는 헛꽃 있고
썩은 갱목 동발꽃도 쓰임새가 요긴하다만
이글거리는 숫보기들 벌건 열꽃 어이하랴

잡꽃천지 용와대가 천룡(天龍)일색 뻥치더니
알고보니 미상(微常) 천룡(泉龍) 용빼느라 피똥싸고
검새짭새 칼춤 추니 날백정은 용춤 춘다
광란성파(狂瀾盛波) 조선팔도 무당꽃만 굼실굼실
천생만민(天生萬民) 가심에피 어따 대고 싸지를까

▲ 상고대(2011년 1월, 충주호에서) ⓒ 정현숙 (출처 : 기상청 ,기상사진전)
▲ 상고대(2011년 1월, 충주호에서) ⓒ 정현숙 (출처 : 기상청 ,기상사진전)

☛정월이면 혹한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몇 날 몇 밤을 얼마나 뒤척였을까? 연민에 호소해도 부족할 텐데 순간 몽환에 빠져든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서리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나무와 풀은 어떤 시련도 운명으로 받아들일 뿐 결코 맞서지 않는다. 피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초연한가? 차디찬 물속에서도 몸가짐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한없이 고고하다.

누가 백미(白眉)라고 했는가?
도드라진 흰 눈썹이 못마땅하다. 주뼛주뼛 날름대는 허연 콧털이랑 귀밑머리 서리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는 왜 나무와 풀을 닮지 못하고 어쩌면 저리도 궁상맞은가. 매사 순응하지 못하고 꺼드럭거리며 대들었기 때문일까. 온몸 구석구석 더께만 쌓여 있다. 마디에 옹이라, 눈주름과 목주름은 물주름처럼 굽이굽이 흐르고, 손등에 난 저승꽃이 머릿속까지 번져 간다.

 

<뜻풀이>

•낯꽃 : 감정의 변화에 따라 얼굴에 드러나는 표시. 안색.
•저승꽃 : ‘검버섯’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달꽃 : 달무리
•해꽃 : 햇무리, 햇살
•물꽃 :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물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람꽃 : 큰 바람이 일어나려고 할 때 먼 산에 구름같이 끼는 뽀얀 기운.
•살꽃 : 웃음과 몸을 파는 계집의 몸뚱이.
•우음(憂音) : 근심 때문에 내는 소리.
•민꽃 : 꽃이 없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
•헛꽃 :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
•동발꽃 : 썩은 갱목에 꽃 모양으로 핀 곰팡이나 버섯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숫보기 : 순진하고 어수룩한 사람.
•무당꽃 : ‘백정의 칼’을 이르는 말.
•가심에피 : ‘가슴앓이’의 방언(전남)
•백미 : 흰 눈썹.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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