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쓰고 도리질하지 마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친절하게도 전화벨 소리와 함께 ‘스팸 처리된 전화’라고 알려준다. ‘여론조사 전화 차단 방법’도 곳곳에서 알려준다. 그렇고 그러려니 하다 보니, 이젠 아예 받질 않지만, 거북한 건 매한가지다. 하고 말고를 따질 계제도 아니다. 총선 즈음하여 하릴없이 다반사로 겪는 일이지만, 얻다 대고 하소연할 데도 없다.

쓰잘데없는 전화보다 나를 더 째리게 하는 것이 있다. 문자다! 인사치레치고는 참 요란하다. 특히 연말연시와 설날 전후로 중구난방이더니 요즘은 글쎄, 하루가 멀다고 사방에서 들이댄다. 걸신들린 잡귀처럼 요란스럽게.

‘새해 복 많이 받고 만사형통하시라.’
‘북 콘서트에 초대하니 성원해 달라.’
‘본선 필승 카드 선택! 준비된 ◯◯◯’
‘오직 경제를 살리려는, 일머리 아는 ◯◯◯,’
‘민생지킴이 ◯◯◯, 오직 민생을 지키겠노라.’
‘02, 070 전화 꼭 받으시고 힘 있는 ◯◯◯ 선택해 달라.’

변호사, 상공회의소 회장, △△대학교 객원교수, 국회의원, ◯◯◯ 의원 보좌관, 당대표 특별보좌역, 전 시장•군수•의원•최고위원 등등 하나같이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이들이다. 일면식은커녕 눈인사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두 번도 아니다.
요즘은 하루에 세 번이나 문자를 보내는 이도 있다.

달밤에 삿갓 쓰고 나온다더니 누굴 닮았나? 어쩌자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나 같은 필부에게 잔주접을 부릴까? 더구나 연고지인 고양시와 거리가 먼 강원도 고성에서까지 다문다문 오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서울 양천과 경기도 부천에서는 걸핏하면 문자를 보낸다.

오늘도 누군가가 문자를 보냈다.

“바쁘신 중에도 출판기념회 왕림하셔서 격려하고 성원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불현듯 자칭 칼럼니스트라고 했던 심연섭 선생이 떠오른다. 문고판이었다. 하도 오래돼서 제목도 출판사도 잊었다. 어느 고관대작으로부터 혼례식 청첩장을 받고 ‘굳이 내가….’ 하면서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와 주어서 고맙다.’는 감사 편지를 받고 허탈한 맘을 옮긴 글이었다.

감히 국주(國酒) 선생에 견줄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고 초대했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가지도 않은 나한테 와 줘서 고맙다니, 놀림을 당한 기분이다. 나는 가만있는데 나도 모르게,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씁쓸하다.

그렇지 않아도 잘난 인맥 동원해서 종편, 지방신문, 동네 방송, 타지역 인터넷 신문방송, 그리고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두루 망라하여 동네방네 떠벌리고, 이를 또 여기저기 퍼 나를 거면서 왜, 왜왜? 참말로 꼴값들 떤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실에서 불교계 인사들에게 보낸 설 선물 포장지에 교회·성당·묵주 든 여인이 그려져 있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카드를 동봉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법보신문, 2024.2.1.).

 

MBC뉴스(2024.2.1.) 갈무리
MBC뉴스(2024.2.1.) 갈무리

 

가만있자, 속세에 파묻혀 사는 범물(凡物)도 아니고, 속세를 떠나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까지 노염을 감추지 못하나 보다.

일찍이 손바닥에 쓴 ‘왕(王)’ 자와 ‘천공 스승’, 그리고 윤석열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이 상주한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윤석열 후보, 무속인과 법사도 구분 못하나”라고(법보신문, 2022.1.21.) 죽비로 내리치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설을 앞두고 팔도의 진품을 고루고루 보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백일주와 육포를 대신해서 남달리 아카시아꿀, 유자청, 잣, 표고채 등을 동봉했으니, 사부대중의 면을 세워주려는 ‘나랏님’의 배려심이 얼마나 황감한가?

물론 “제복 영웅 유가족 및 나눔 실천 대상자 등 사회 각계각층”에만 보내는 선물이다.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남부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를 두고 「불교계에 ‘십자가’ 보낸 윤석열 정부」(불교닷컴, 2024.2.1.)라고 성토하고, 부아풀이 하듯 발끈하다니 참으로 안쓰럽다.

자손만대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이나, 만물의 주권자인 사랑의 하느님이나 다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 아닌가? 부디 삿된 음식이라고 타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야 뭐, 벼룩의 뜸자리만도 못한 위인 취급받아 그렇다고 치자. 그렇지만 생사로부터 해탈한 부처님께 귀의하겠다는 분들마저….

아무튼 재밌다.
나만 개털이 아니었음에 안도한다.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은 법, 맺기 전에 좁은 속내 감추지 않고 한마디만 하자.

아서라, 당신이 누구든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지 마라.
당신이 바늘구멍으로 보는 하늘은 하늘이 아니다. 세상에나, 쫌생이 같은 ‘최고 존엄’ 나부랭이 흉내 내면서, 당신의 하늘이라 농단하지 마라. 티 없이 샛말간 망자들이 노니는 텅 빈 공간이거늘, 억조창생이 떠받들기에도 버거운 천궁(天宮)이거늘…….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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