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음을 기억하라

옥외광고물법 시행령(대통령령 제34127호, 2024.1.12.)에 따르면, 도로표지·교통안전표지·교통신호기 및 보도 분리대, 전봇대, 가로등 기둥, 가로수 등은 광고물 등의 표시가 금지되는 물건이다. 하다못해 현수막의 규격, 기간 및 표시ㆍ설치 방법까지 망라하여 규정하고 있다.

또,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소방시설 주변 등 사고 취약 지역과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현수막 끈의 길이를 제한하고. 다리ㆍ축대ㆍ육교ㆍ터널ㆍ고가도로는 광고물 등의 표시를 금지하는 곳으로 되어 있다.

이렇듯 현수막 관련 규정은 법과 시행령, 그리고 무슨 조례나 지침 따위로 미주알고주알 밝혀 놓았다. 옥외광고물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법을 어긴 자들은 설자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자체마다 ‘현수막 게시대’를 눈에 띄는 곳에 세워 놓았다. 생김새부터 매끄럽고 가지런하다. 확 트인 곳에 번듯이 서 있으니 뭣 하나 거치적거릴 게 없다. 깔끔하고 다소곳하다. 손볼 데가 거의 없어 보인다.

노끈이 없으니 애써 묶을 필요가 없다. 보행자든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이든 줄에 걸려서 넘어질 염려도 없다. 각목이 무용하니 낙상 사고 난다고 흘긋거릴 이유도 없다. 어지간한 큰비나 왕바람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옹골차다. 요즘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방향(각도)까지 조절한다니 참으로 가상하다.

모든 현수막은 이 게시대를 이용하여야 한다. 이를 어기면 일단 불법 현수막이다. 굳이 지정 게시대를 마다할 이가 있을까 싶지만, 예외가 있다. ‘정당 현수막’이다. 미리 말하지만, 사용자가 금수저이기 때문일까? 이는 종자가 다르다.

특혜, 특혜, 특혜!  뒷배가 짱짱한 막강 현수막

관련법과 시행령이 있지만, 2022년 12월 15일 행정안전부에서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고시함으로써 특별한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즉, “국민의 쾌적한 생활 환경 및 보행 안전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했다고 하지만, 실은 일반 현수막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각종 특혜를 줌으로써 뒷배가 짱짱한 막강 현수막으로 둔갑한 것이다.

한길가, 길모퉁이, 골목길을 가리지 않는다. 교통안전표지판, 전봇대, 가로등, 신호등을 냅두지 않는다. 가로수라고 가만둘까? 밑줄기는 물론 굳이 잔가지까지 욱조이기도 한다.

일반 현수막과 달리 과태료도 없다. 사전 신고 없이 아무데나 걸어도 무방하다. 자진 철거하지 않은 한 수거 비용은 고스란히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그나마 이를 치우려면 각종 절차가 까다롭다. 알량꼴량하기 그지없다. 결국 법을 꿰차는 저들이 한 일은 철저히 자기기만이다. 혈세를 탕진하면서 자기네 뱃속만 다진다. 물론 법의 이름으로. 그래서 더 가증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은 이미 2005년에 선거사무소의 간판ㆍ현판ㆍ현수막 규격 제한을 없애고, 2010년에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간판ㆍ현판ㆍ현수막의 수량을 제한하는 내용을 삭제했다. 2018년에는 현수막 사용량을 2배로 늘리는 공직선거법을 개악함으로써 선거 현수막 쓰레기는 2배로 늘어났다(녹색연합 ‘보도자료’, 『기후위기시대, 의정활동 보고를 위한 현수막 사용은 중단되어야 한다』 2021.11.18.).

사용자가 별종(別種)이라서 그런다 싶지만, 무슨 고상한 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정당의 정책이나 지역 현안을 밝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그나마 헛공약을 남발하고 상대방의 치적을 자기네 것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그저 문안 인사치레로 이름이나 알리는 게 다반사다. 어떻든지 환심을 사려는 요량으로 발버둥치듯이 아무 말 대잔치나 늘어놓기 일쑤다. 상대방을 헐뜯고 비아냥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속말로 ‘유치 뽕짝’일 때가 너무 많다. 잃어버릴 것도 없는 품위라지만, 품위 유지가 절실하다.

그런데, 이를 감시하고 규제하여야 할 지자체장까지 덩달아 위세가 당당하다. 속곳도 없는 얼빠진 여편네가 육교 위에 걸터앉아 치맛자락 너덜거리며 간살웃음 짓고 있다. 비유가 좀 그런가? 오늘도 내로라하듯 버젓이 육교 위에서 나불대고, 정류장 근처 지면에 닿도록 현수막을 설치함으로써,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육교 위의 현수막(2024.2.12. 고양시 중산동) ⓒ 박춘근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현수막 (2024.2.12. 고양시 백석동) ⓒ 박춘근


한편, 현수막에는 정당의 명칭, 정당의 연락처, 설치업체의 연락처, 표시 기간의 시작일과 종료일 등을 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출처가 모호한 괴현수막을 버젓이 내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걸었다가 떼기를 되풀이한다. 이런 불법 ‘게릴라 현수막’은 지난 대선 당일까지 이어졌다.
 

20대 대선 당시 걸린 게릴라 현수막(2022.03.09. 경의선 풍산역 2번 출구 네거리에서) ⓒ 박춘근

 

이렇듯이 정당 또는 지자체장의 현수막은 모든 이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때에 따라서는 낙상 사고나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게시 기간이 15일이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자구만 바꾸어서 교체한다. 그러니 목 좋은 곳은 힘센 자들의 전유 공간이 되고, 그렇고 그런 현수막이 연중무휴로 내걸리고 있다.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다 살다 이젠 현수막까지 사람 무시하는 세상으로 둔갑했다,

한문철 TV(대선 현수막 걸린 가로등이 꺾이며, 2022.3.2.) 갈무리
한문철 TV(현수막 뒤에서 뛰어나온 아이, 2020.4.6.) 갈무리

 

생태 위기를 앞당기는 정당 현수막

천하에 백해무익한 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이 양산하는가? 말이 좋아 재활용이지 폐현수막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이를 치우고 소각하려니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량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생태 위기를 앞당기는 원인을 제공한다.

아래 그림과 같이 21대 국회의원 선거(2020.4.15.)에서 발생한 현수막 30,580여 장(35.7톤)으로 인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192.2 톤 CO2e이다. 이는 30년 산 소나무 약 21,100그루가 한 해 동안 흡수해야 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해당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현수막의 온실가스 배출량 분석 자료’ (출처 : 녹색연합, 2021.11.18.)

 

지난해 3월,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두고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하여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라고 혹평했다. 이어서 “계획 기간·수립 기한도 다 어긴 불법·밀실 기본계획이자, 기후정의·탄소 예산도 모두 내팽개친 부정의한 기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린피스(GREENPEACE) 또한 “글로벌 흐름 역행하며 산업계 요구 받아준 산업 민원 해결 보고서”로 규정하면서, 후보 시절의 약속은 간데없고 “정책 추진할 돈도, 조달 방안도 없는 부실 계획”이라고 날을 세웠다.

저들의 치기는 예서 멈추지 않는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29일에 여의도 면적의 18.8배인 5471만 8424㎡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완화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6일, 충남 서산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39㎢(1억 3000만 평) 규모의 군사 보호구역을 해제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김종대(전 정의당 의원. 군사 안보 전문가)는 ‘참 큰일 낼 대통령’이라면서 ‘안보 거덜내며 만들어진 득표 전략’으로 진단했다(오마이뉴스, 24.3.1.).
 

기후 악당으로 추락한 대한민국

이미 2022년,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6억 1600만 톤으로 세계 10위이고, 1인당 11.9톤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5위다. 지난해 12월에는 1900개가 넘는 전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로부터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 prize)을 받으며 우리나라는 ‘기후 악당’이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단비뉴스, 「한국, COP28서 ‘기후 악당’ 등극하다」, 2023.12.18.).

‘자고 나니 후진국’이라더니 이젠 ‘기후 악당’이란다. 더 추락할 데도 없지 않은가? 어제오늘 할 것 없이 위와 같은 불편한 메시지가 세계적으로 회자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귀먹은 중 마 캐듯 딴청만 부리고 있다. 이를 웃음엣소리로 치부하는지 허구한 날 삼천리 구석구석 현수막이 팔랑거리고, 소각장으로 가는 폐현수막이 차고 넘친다.

차라리 오방색으로 제작하라. 오방색은 곧 우주의 중심을 뜻하는 황(黃),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청(靑), 결백과 순결을 뜻하는 백(白), 최강 벽사의 색인 적(赤), 인간의 지혜를 관장하는 흑(黑)이다. 폐현수막을 무당집 깃발로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리를 더럽히고 시야를 어지럽히고 사고를 유발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정당 현수막! 말끝마다 씹고 쪼고 찢고 찧고 비틀고 뭉개고 후벼파고 도려내고 탕탕탕탕 조사대는 신소리 잡소리 헌소리 뻘소리 허튼소리 …….

그러니, 영락없이 부아 돋는 날 의붓애비 오는 격이라고 할밖에. 오래된 악행이다. 법의 이름으로 갖은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 정당(政黨)은 사당(邪黨)으로 전락하고 위정자는 모리꾼으로 추락했다. 망국적인 거품 공약은 지네 당사 벽에나 걸어둘 일. 위정자의 됨됨이는 곧 민도를 능가할 수 없다. 현수막을 없애자는 현수막을 다는 건 어떤가.

바로 보자 날림 공약 다시 보자 먹튀 공약

정당 아닌 사당이다 현수막을 걸지 마라
 

지정 게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정당 현수막(2024.2.12. 고양시) ⓒ 박춘근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