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은 우리나라 제일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완도군의 섬은 265개(유인 55, 무인 210)라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 보길도라고 한다. 오죽하면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살러 가려다 풍랑을 만나 잠시 피하려고 들어온 보길도 부용동에 반해 평생을 살았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보길도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완도 노화도항에 9시 50분 배를 탈 생각에 30분 일찍 갔는데 아뿔싸... 승선 차량이 많아 10시 50분 배를 타야한단다. 차를 포기하고 갈 수는 없는 일. 할 수 없이 차안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 배를 탔다. 역시 귀한 것을 얻는 길은 쉽지 않다. 

제일 처음으로 간 곳은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한 세연정(洗然亭)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세연정은 딱 한 가지만 빼고 기대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명승 제34호인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연회를 즐기던 정자다. 고산은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우리글로 4계절 40수 연시조 형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연정은 영양의 서석지,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뽑힌 곳이라 그런지 매우 세련되고 정갈한 정자였다. 세연정에서 세연(洗然)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조용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정자이지만, 어떤 자료에서는 고산 윤선도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노비들에게 술과 안주를 마차에 가득 싣게 하고 기생들을 거느리고 나와 술을 한 잔 걸치고는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했던 곳이라고도 하니, 그 고운 모습의 세연정에도 힘없는 자들의 서러운 피와 땀이 서려있을 수 있겠다 싶다.

 

세연정은 계곡물을 옆으로 끌어들여 만든 연못 회수담(回水潭)으로 사면이 둘러싸여있다. 연못에는 잘생긴 바위 7개를 갖다 놓았는데 이를 七岩(칠암)이라고 한다.

▲ 칠암

세연정 안에서 보는 정원의 모습이다.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게 뭐지? 세연정 현판 바로 밑에서 정면을 향하면 임시건축물 같은 하얀 건물이 보인다. 바로 옆에 있는 학교 부속건물인 듯하다. 그 옛날, 고산 시절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 순간적으로 깬다. 옥에 티다. 번쩍 들어다 멀리 옮겨 놓고 싶다. 

▲ 하얀 학교 보조건물

세연정에 도착했을 때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 빼고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비록 맛있는 음식과 띵꺼덩하는 음악소리는 없었지만, 솔솔 부는 바람과 나무들이 사각대는 소리, 별 말 안해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그 흐뭇함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연정에 누워 높게 오른 창문 사이로 하늘을 보면서... 그냥 하루 종일 뒹굴뒹굴 노래나 한 곡조 뽑고 싶었다. 세연정의 정취에 취했다고나 할까? 고산 윤선도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일어나기 싫었지만 동천석실이 우릴 기다린다고 하니..

멀리 산 중턱에 동천석실과 침실이 보인다.

동천석실로 올라가는 길은 음습하다. 질척질척하고 나무로 가려진 어두컴컴한 길을 가다보면 갑자기 탁 트인 산등성이가 나온다. 바로 동천석실 아래, 고산이 가끔 잠도 자고 갔다는 침실이 보인다. 밧줄을 타고 좀 더 올라가면 동천석실이 나온다. 침실이나 동천석실에 앉아 펼쳐진 산세를 보면 그 이름과 걸맞게 연꽃 속에 동네가 폭 잠겨있다. 마치 연꽃 봉우리가 터져 나오는 듯한 지형을 가졌다 해서 芙蓉(부용)이란 말을 얻었다고 한다. 

▲ 동천석실
▲ 동천석실에서 바라본 침실
▲ 동천석실에서 바라본 부용동
▲ 침실과 부용동,  

침실에 창턱에 앉아 시간이 가는 것을 세는 건지.. 시간이 가는 것을 잊은 건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부용동의 모습에 빠져 하염없이 앉아 있는 아들.

 

그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딸까지 옆에 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두 아이의 모습이 부용동의 모습과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그 높은 동천석실 바로 왼쪽 아래 있는 돌 연못이다. 암벽사이로 솟아나는 석간수를 받아 모은 연못이라고 한다. 연못을 만들기 위해 돌을 직접 깎아 파냈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가 차를 마시던 차바위다. 신선 노름이 따로 없겠다 싶다. 시 한수도 절로 나올 듯....

그 다음 행선지는 망끝 전망대를 지나 뾰족산을 지나 공룡알 해변이다. 해변 자갈이 공룡알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해변 뒤로는 동백숲이 있다. 이 동백숲에서부터 뾰쪽산까지 등산코스가 그리 좋다 하는데... 예송리 갯돌 해변에서 잠시나마 놀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 망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뾰쪽산
▲ 공룡알 자갈
▲ 공룡알 해변과 동백숲

예송리 갯돌해변은 작고 검은 자갈이 가득한 해변이다. 시기가 일러서 그런지 바다에서 노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래도 놀겠다는 아이들.. 글씐바위 보고 싶었는데 검은 자갈 물에 몸이나 적셔보겠다고 하니..

▲ 예송리 해수욕장의 검은 자갈

그렇게 예송리 해변을 끝으로 5시간의 보길도 여행은 마감했다.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글씐바위에 들렀다 가도 되련만.. 마지막 배는 가끔 차량이 많아 차가 다 못 탈 수도 있다고 해서 서둘러 동천 선착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제한된 여행은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세연정과 동천석실, 두 곳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한 보길도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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