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휴대폰으로 카드가 온다. 작년과 다르게 천주교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종님이 들어간 카드를 많이 보내준다. 올해 교종님이 한국을 다녀가신 후 천주교 신자들이 교종님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마치 유행처럼… 너도 나도…

그렇다. 교종님은 우리에게 참 신선했다. 교종님은 <복음의 기쁨>이나 각종 담화문을 통해 그동안 어떤 교종도 하지 않았던 말씀을 했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
“국가는 가난한 자와 부자의 격차를 좁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보이지 않지만, 경제와 금융 영역에서도 생명과 가족을 파괴하는 전쟁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화는 우리를 이웃으로 만들었지만 형제가 되게 한 것은 아니다. 불평등과 가난이 형제애와 연대의식을 없앴다”,

미국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언급할 만큼, 한국에서는 좌빨로 매도될 만큼 놀라운 말씀이다.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와 자본불평등에 대한 지속적인 지적은 노동자가 자본의 노예로 전락되어 울고 있는 한국사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또 방한에서 보여준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까지 더해 천주교 신자들에게 엄청난 자부심도 갖게 해주었다.

방한에서 그분은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늘 힘없고 서러운 이들을 마음에 두고 움직였다. 명동성당 미사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 밀양어르신, 용산참사 유가족, 쌍차해고자, 그리고 강정주민을 특별히 지정해서 미사에 초대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마치 자신이 떠나고 난 후 한국 천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준 것처럼, 어떤 메시지를 남겨주듯이 분명하게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큰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 이젠 천주교인들이 그들과 함께 할 거야. 적어도 이들을 위한 미사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몰려올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방한 이벤트로만 끝났을까?

먼저 염수정추기경님이 찬물을 끼얹었다. 교종님이 가시고 난 후 세월호 유가족을 방문한 후 “가족들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다 이뤄지면 좋겠지만 어느 선에서는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천주교인들까지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 특유의 두루 뭉실 중립적인 말씀은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신 교종님의 마음과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게 한다.

교종님이 방문하셨던 기간인 2014년 7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기도회와 저녁 미사를 진행했다. 7월 25일 경인가 강우일(당시 주교회의 의장)주교님은 참석했지만 염추기경님은 이 미사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교종님 방한 시 통역으로 늘 함께 했던 정제천 신부님은 작년 9월 1일 예수회 관구장으로 취임 후 바로 그 다음 날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 참석했다. 염추기경님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얼마 전에 본 기사가 생각난다. 교종께서 "교황청 관료들 영적 치매 걸렸다" “슬퍼하는 이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이와 함께 웃어야 하는 우리로선 인간의 감성을 잃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 기사 들 중에 나온 댓글 중에 한국 추기경 두 분도 영적 치매에 걸렸다고 하는 댓글이 있었다. 염추기경님은 이런 말들을 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작년 9월 2일 화요일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정제천 신부님 사진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http://blog.daum.net/sajedan21/2402

천주교 신자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저녁 7시에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진행하는 쌍용해고자를 위한 미사는? 큰 변화가 없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진행하는 용산참사미사는?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에서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304명을 기억하는 미사>를 304일 동안 매일 하고 있다. 특히 매주 수요일은 광화문 세월호 천막 앞에서 저녁 7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매번 200명-300명 정도 참석하고 있다. 한 2000명-3000명 정도는 참석할 줄 알았는데….

시복식 때 그렇게 환호하던 천주교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 분의 새로운 말씀에 놀라면서도 옳은 말씀이라고 박수쳤던 천주교인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저 성당에 가서 여전히 우리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교종님이 들어간 신년카드를 보내면서 “예수님 사랑해요. 교종님 존경해요.” 하고 있을까?

담 주 월요일 제236번째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가 열린다. 그런데 평소 장소인 프란치스코 회관이 아닌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뚝농성장 앞에서 열린다. 이창근, 김정욱 씨가 목숨을 건 굴뚝농성 중이여서 미사 장소를 바꿔 진행한다.

12일 오후 4시30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굴뚝 버스’가 출발한다. 참여 신청(문자나 전화 010-2449-3470)은 9일 오후 6시까지 120명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비용(차비+저녁식사비용)은 1만원이다. 부디 교종님의 말씀에 눈 뜬 천주교인들이 많이 참석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참… 광주대교구에서 팽목항 전담 사제(최민석 신부)를 발령 냈다고 한다. 최 신부는 1년 동안 팽목항에 머물면서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목 활동을 한다고 한다.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신부를 발령 낸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현 주교회의 의장)는 교종님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

“책임자 처벌은 둘째 문제입니다. 고통 그 자체에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세월호 유가족의 큰 고통이므로 진상규명을 위해 천주교가 함께하겠습니다.”

‘양보’ 발언의 염추기경님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비록 천주교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진 않는 것 같아도 천주교 최고 집회, 주교회의가 방향은 제대로 잡고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진행속도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확산되어 서울대교구에도 퍼지고 내 주변의 교우들에게도 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는 그 변화의 물결이 광화문에, 평택에, 용산에, 밀양에, 강정에 그리고 서러운 이들이 있는 모든 곳에 흘러넘쳤으면… 하고 바래본다.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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