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운황(羅文凰)의 가슴에서 잉태한 한지 민속화

김종선 주주통신원l승인2017.07.19l수정2017.08.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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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민속화가 나문황(羅文凰)은 대만 중남부 도시 가의(嘉義)시의 형제가 많은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만의 전통과 문화를 잘 간직한 가의시는 민족성이 강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매우 큰 도시로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 늘 앞장서는 곳이다.

나작가는 집안이 어려웠던 관계로 일찍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만의 중부 지역에 있는 타이중(臺中)시의 용총 종합병원에서 근무하였다. 병원 건너편에는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정과 자유스러운 교풍으로 유명한 동해대학(東海大學)이 자리 잡고 있다.

동해대학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토요일 오후에는 학교에서 사교모임이나 댄스파티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문에 들어서면 포인세치아(성탄화)가 아름답게 맞이하며 교정 남쪽에는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목장도 있다. 문리대학은 중국 전통의 서원양식을 취하여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지금 남편인 이은모씨가 마침 이곳에 유학을 와서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아름다운 교정에서 사랑을 나누다 1989년에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대만 사람들은 한국이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여서 외국인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였다. 작가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까지 모두 결혼에 반대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남편이 대학원을 졸업하자 두 사람은 곧 한국의 시가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신혼 첫날부터 어려움은 시작되었다. 남편은 대기업의 사원으로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시부모님이나 가족과 함께 지낼 때는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 종일 벙어리로 지내야 하였으며, 음식은 맵고 짜며 그것도 모두 채소 위주여서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대만은 거의 모든 음식을 육류나 어류를 넣어 삶고 찌고 볶으며 기름지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남편의 사랑에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중, 대만에 계신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힘들어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나작가는 2004년 9월에 대만으로 귀향하여 어머니를 돌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부부가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낼 수도 없어서 2008년 4월 서울로 돌아왔으나 병든 어머니와 치료를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한지 민속화를 보게 되었다. 한지 민속화는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던 나작가는 무엇인가에 전념하면 고통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한지예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한지 민속화를 배우면 배울수록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고 한지와 한지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매력에도 빠져들 수 있었다.

나작가는 한지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에서 열린 여러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2012년도에는 <모귀暮歸>라는 작품으로 서울세계평화미술대전에서 특선에 입선하였다. 2016년도에는 <쌍작보희雙鹊報喜>라는 작품으로 원주 한지문화제에서 특선을 수상하였다. 2015년도에 대만 루깡(鹿港)과 타이중(臺中)시에서 열었던 개인 전시회에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한국의 한지예술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대만에는 없던 한지예술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대만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한지 민속화를 자신의 분신같이 여기는 나작가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작품에 대한 열망이 가득차야 작품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작품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작품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 부어 완성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곧 그의 영혼이어서 작가와 작품과 그 작품에 들어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다음은 나작가와 나누었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처음에 어떤 상황에서 한지 민속화를 만나게 되었나요?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뇌가 위축되고 사지를 움직일 수 없어서 대만 고향집에 돌아가 어머니 병간호를 3년 정도 했어요. 서울에 돌아온 후, 어머니의 병과 가족들이 간호하면서 겪을 고통에 대해서 마음놓지 못하고 날마다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지만 돌아가서 어머니를 계속 간호할 수 있는 형편은 못되었죠.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을 때, 한지로 만든 민속화를 보게 되었어요. 원래 그림에 흥미가 있던 저는 완전히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굴레를 조금은 벗을 수도 있었고 복잡한 인간세상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어요.

―한지 민속화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한지로 만드는 민속화는 일반적인 그림과 달리 반 입체적이어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훨신 잘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전통 건축물이나 한복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미를 살리고 싶을 때 가장 적합한 재료이기도 하죠. 저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스토리가 있어요. 먼저 내면에 스토리가 떠오르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형제나 고향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겠죠. 그림은 나와 나의 영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설령 기술이나 기교가 부족하더라도 그것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친정에 가는 작품은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이 나의 가슴 깊은 곳에 잠겨 있다가 어느날 문득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그리움으로 내면에서 올라와서 만든 작품이예요. 아마 내 작품에서 나의 내면을 엿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더욱 좋아하리라 생각해요.

한지 예술은 이러한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최고의 재료입니다. 따뜻하고 온화하며 기품있고 표현되어지는 감동이 보는 사람 가슴에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죠.

예전, 대만의 전시회에서 어떤 분이 작품을 사고자 하여 엉겁결에 작품을 팔았어요. 그 작품은 강아지였는데 늘 나의 식탁 주위에 걸어둔 작품이었죠. 친구가 페이스 북을 통하여 어떻게 너와 늘 함께 하던 강아지를 팔 수가 있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제 마음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구매자에게 사정하여 다시 돌려받은 적이 있었어요.

또 8형제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 있었어요. 8형제가 모두 건강하게 함께 있기를 진정으로 염원하여 만든 작품인데, 역시 어떤 구매자가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100세이시고 8형제가 있는데 어머니 방에 걸어두면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실 거라고 해서 판매한 적이 있었어요. 그 후 일본에 있던 셋째 언니가 병이 있어 수술을 준비하던 중 그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것을 알고 서운해 하기에 다시 환매한 경우도 있었어요.

총 13작품이 판매되었는데 모두 환수할 수가 없어서 작품의 판매금액을 파킨스병 기금회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한지 민속화를 하면서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무엇이죠?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예술활동을 하지는 않아요. 작품은 고향이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을 수 있어서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앞으로 마음이 평안해지면 다시 작품을 만들어 한국과 대만의 아름다운 전통과 정신세계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요.

―대만에서 연 개인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하더군요. 대만인들이 한지 민속화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한지 민속화는 대만에 없어서 그들이 특별히 여기지만 작품을 "왜' 좋아하느냐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개인들이 각각 좋아하는 입장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당신은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대만의 민주화 운동 과정은 완전히 같은 형태입니다. 저는 20세 때부터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서적을 몰래 읽으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대만도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토론하거나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촛불집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백 만이 넘는 시민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집회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근혜씨 탄핵이 인용되기 일주일 전, 대만 친구들과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였어요. 역사적인 현장이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죠. 한 국가 안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여 평화적으로 항거하고 자신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민주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성숙한 국가라 생각합니다.

나작가는 우리의 옛 며느리들이 늦은 밤까지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던 심정으로 한지 민속화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이국 땅과 문화에서 겪었던 많은 고통과 이질감,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련함과 애틋함 등을 작품에 투영하면서 한과 그리움을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밝은 빛 아래에서는 따사로우면서도 우아한 멋이 풍기고 어둠 속에서는 한과 서러움이 한지 밖으로 조용히 스며나오는 느낌이다.

나작가의 한지 민속 그림은 현재 <문화공간 온>에서 전시중이다.

일시 : 2017년 7월 3일 - 2017년 8월 21일 

장소 : 문화공간 온 (서울시 종로구 종로 11길 6) / 02-730-3370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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