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아들 세상 살아남기 39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09.14l수정2017.10.0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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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려했건만 결국 다쳤다. 특수임무반 전국경연대회 훈련을 하다 어깨를 다친 것이다. 본인은 탈골되었다 느꼈다는데 엑스레이 상에서는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엑스레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훈련을 빠질 수 없어 아프면서도 훈련에 임했다. 경연대회가 끝나고 MRA를 찍어보니 다친 부위는 나왔지만 심한 손상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외과적 치료는 없었다. 처음엔 금방 낫겠지 생각했다. 침도 맞고 이런 저런 물리치료를 하며 기다렸지만 제대할 때까지 어깨 근육은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다치기 전까지 군에서 근육운동을 즐겨하고 군선임, 동료들 운동 트레이닝을 도와주던 아들은 장래 직업을 찾았다며 좋아했다. 자신이 독학으로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하면서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학문이 바로 Kinesiology(인체운동역학)라 했다. 한국에서 Kinesiology는 체육학과에서 한 학기 과목으로 배우지만, 캐나다, 미국, 독일 등에서는 단독 전공 학문이다. 결국 한국에선 배울 수 없고 다시 외국으로 나가야 했다. 한국 대학 적응에 자신이 없는지 아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10대 유망 학문 및 직업군에 속한다는 자료를 보여주며 Kinesiology를 전공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우리는 다시 들어갈 유학비용이 걱정되면서도 ‘저만 좋다면야...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돌고 돌아 돈인데 뭐...’ 라고 위로하며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신이 나서 자신의 전공을 찾고 허락까지 받았는데 그만 어깨를 다치고 만 것이다. Kinesiology는 생리학, 해부학 등 이론 공부도 하지만 운동실습 과목도 매 학기 마다 1-2개씩 있다. 운동과목은 실습수행 과정과 결과를 기계적 점수로 평가한다고 했다. 어깨 근육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면 운동실습 학점을 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처음에 자신에게 꼭 맞는 학문이라고 자신했던 아들은 어깨를 다치자 의기소침해졌다. 

예전에 아들이 항공정비를 전공한다고 할 때 적극 찬성했던 이유는 기계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아들에게 인간을 대하는 직업보다는 기계를 다루는 직업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기계는 속일 줄 모르고 정성을 들이면 얼마나 정직하게 응답하는 존재인가? 어려서 차 앞모습만 봐도 차 이름을 줄줄 꿰었던 능력이 잠시 잠자고 있을 뿐이지 때를 만나면 다시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물건이나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금방 찾아내는 재주는 수만 가지 부품을 다루는 항공정비에서 얼마나 잘 써먹을 수 있겠는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아들도 자신의 특성을 잘 아는 지 항공정비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5년제 컬리지에 지원해서 합격도 했었다. 다시 지원 해도 무리 없이 합격할 것도 같아 그리 가자고도 권했다. 하지만 Kinesiology에 마음을 빼앗긴 아들은 다른 전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Kinesiology를 전공하면 인생에서 새로운 날개를 단다고 생각했는데, 제대 때까지 낫지 않는 어깨는 날개는커녕 근심덩어리가 되었다.

제대 후에도 어깨 이야기만 나오면 짜증을 내곤 했다. 군대에 괜히 갔다고까지 했다. 서울대병원 재활치료학과에서는 스스로 하는 회복 운동을 알려주고, 30세 넘으면 저절로 좋아지니까 기다리면 낫는다고 했다. 일상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환자라 생각하지 않아 그리 말했겠지만, Kinesiology를 전공하려는 아들에게 30세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속 터지는 말이었다. 

운동에 필요한 어깨 근육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들은 결국 Kinesiology를 택했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누나 친구 J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Kinesiology를 부전공 했던 J도 운동시합 준비를 하다 어깨를 다쳤다. 이런 상태를 교수님께 설명했고 교수님은 이를 충분히 감안해주어 학점 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이야기 해준 것이다. 아들은 희망을 갖고 1학년만이라도 도전해본다며 컬리지 Kinesiology과에 입학원서를 냈고 합격해서 캐나다로 떠났다.

▲ 학교 대항 운동경기에서 기사 마스코트를 쓰고 분위기를 돋우는 알바를 했다. 하도 웃기게 놀아서 꼭 다시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아들은 저 옷 안에서 쪄죽을 뻔 했다고... 다신 안한단다.

1학년을 마치고 아들은 의기양양해서 돌아왔다. 어깨 근육이 다 낫지 않았지만 학점 이수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고등학교 성적도 시원치 않았고 군대를 다녀오느라 공부를 손에서 놓았던 아들은 어떻게 학업을 따라갔을까?

아들이 캐나다로 가기 전, 대학 진학에 유리한 토플점수도 얻고. 영어수업 적응에도 필요해서 토플학원에 몇 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새벽 3시까지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를 보았다. 처음이었다. 나는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공부해라' 소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딸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하는 형이지만 아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스스로 했다. 대학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공부만 하니 성적이 조금씩 오르면서 '하면 되는구나' 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공부만 했으니 방학 넉 달 동안, 공부는 한 자도 하지 않을 거라 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알바는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에 막 힘을 쓰는 영어사용 서비스직이었다. 일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열이 펄펄 났다. 메르스가 한참 유행할 때였다. 알바 중 너무 열이 나서 재어보니 39.8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다음 날 해열제를 먹고 회사에 갔으나 다시 열이 펄펄 났다. 회사에서는 내일은 병원에 가고, 집에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열에 후끈거리는 아들이 10시 넘어 퇴근해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왜?”
“사랑해..”

어려서 ‘엄마 좋아’를 입에 달고 살았던 아들은, 마마보이 결벽증이 생겨 커가면서 애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말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말인데 아들이 왜 저 말을 느닷없이 했는지 금방 알았다. “미친 넘!!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마음에도 없는 대꾸가 불쑥 나왔다. 아들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고 살았는데 비상사태를 생각한 심각한 고백 같은 말이 싫었다.

다행히 메르스가 아닌 전염성 없는 바이러스 감염이라 했다. 고열을 잡지 못하고 간 수치까지 급등해서 열흘 입원도 했다.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 것’을 전제로 퇴원한 아들. 얼마나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놀고 싶었을까?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지 못하고 참한 강아지로 1학년 여름 방학을 억울하게 마친 아들은 다시 캐나다로 갔다.


* 키네시올로지(Kinesiology) : 인체운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원래는 독일에서 정형외과학을 위해 개발된 영역으로 인체 뼈와 근육을 중심으로 한 역학적 연구가 목적이었다. 현재는 스포츠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의 기록향상, 기술분석, 인간공학 등에 활용된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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