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아지 아들의 소원성취

아들이 캐나다에서 2학년을 마치고 오자마자 자기 뒷목을 좀 봐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 뒷목 뼈가 튀어 나오지 않았냐는 거다.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계속 튀어 나왔을 거라고 우겼다. 그 이유인즉슨 하도 목을 구부리고 공부만 했기 때문에 뒷목 뼈가 튀어나왔을 거라는 거다. 우리는 낄낄 웃으며 결국 아주 조금 튀어나왔다고 동의를 해주었다.

아들이 뒷목 뼈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왔다는 말을 왜 했을까? 바로 실컷 놀기 위해서다. 그렇게 공부를 했으니 방학 동안은 공부는 잊어 먹고 지낼 거라고 했다. 친구도 많이 만나 인맥도 쌓고, 여자랑 데이트도 많이 하고, 여기 저기 놀러도 다니고, 알바로 돈도 벌고.. 바쁘게 지낼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래 그런지 아들은 저녁이면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퇴근하고 온 누나는 “엄마 강아지 또 기~나갔어?”라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동생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이었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찰떡 남매였는데... 동생에게 버림받았다고 섭섭해 했다. 이런 누나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아들은 꼭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이리저리 바쁘게 막 돌아다녔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미안했던지 나와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뭘 물어도 은근 대답을 피하기까지 했다. '애효.. 남자 녀석들은 크면 다 떨어져 나간다는데... 쟈도 그렇게 되는구나 '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에 잠을 깼는데 잠도 안자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부모의 통제와 자유, 가족에 대한 배려, 이성교제 등등의 문제를 놓고 3시간이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이후로 아들의 눈빛과 행동은 달라졌다. 가족에 대한 배려가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이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부모의 통제를 간섭이 아니라 애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같았다. 누나에게도 제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께 말하지 않는 전제조건이지만.. 이렇게 우리 집은 다시 예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되돌아 왔다. 그런던 중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할 말 있어”

“응? 뭔데?”

“아니야~~”

“에이.. 뭘 아니냐? 딱 보니 할 말 있구먼.. ”

“응..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서.. 그냥 말 말라고.,”

“에이~ 왜 그러셩.. 뭔지 말해봐.”

아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들의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살살 물고 늘어지면 아들은 못이기는 척 결국 술술 다 털어 놓는다.

자기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여자 친구라는 것을 확실히 못 박았다. 두 달 전에 생겼는데 확신을 갖지 못해서 말을 못했다며, 이젠 서로 확실히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말을 해준다고 했다. 궁금한 사항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니.. 아들은 “이것 봐.. 내가 이래서 말 안하려고 한 거야.” 라며 입을 다물려고 했다. 자제를 하고 사진이나 보여 달라고 하니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제야 카톡사진도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으로 바꿨다. 

내 기분은 어땠을까? 처음엔 그냥 무덤덤했다. 아마 ‘망아지’같이 저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여자 친구가 생겨서 그럴 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뭔가 한 단계 성장한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성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푹 빠져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겪는 것만큼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없을 거니까... 

아들은 사춘기를 캐나다에서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 전화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을 한 시간씩 털어놓으면서 사춘기를 이겨냈다. 그렇게 지내다 귀국할 때쯤이면 한 단계 부쩍 커서 돌아왔다.  그래 그런지 귀국하는 아들은 공항에서 만나면 좀 낯설기까지 했었다. 매일매일 성장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서 낯설었을 거다. 이번 연애과정은 옆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내일 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재미도 있어서 막 놀려 먹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엄마 마음은 걱정 마음이라더니 금방 또 걱정이 생겼다. 아들은 9월 초에 다시 캐나다로 갈 거다. 8개월 있다 오는데.. 그간 서로 맘이 변하면, 혹 여자 친구가 맘이 변하면 울 아들은 캐나다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아들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엄마. 내가 여자 친구에게 딱 한번 화를 냈는데 왜 그런지 알아? 걔는 내가 캐나다에서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길까봐 그걸 걱정해. 그래서 내가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냐고 큰소리쳤어. 근데 엄마도 그러네. 엄마 나는 그냥 지금 감정을 즐길 거야. 나중 일은 그 때 생각하면 되지 미리 걱정하지 않을 거야.”

한 방 먹었다. 이제 아들이 엄마보다 더 어른스럽다.  여하튼 여름방학에 여자 친구 만들고 싶다고 노랠 하더니, 아들이 소원 성취했다. 첫사랑에 푹 빠져 ‘귀여운 울 강아지’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로 바뀌었지만 울 아들...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 우도 바다를 뒤에 두고 한 녀석은 강아지, 한녀석은 망아지 같이 폴짝 뛰어오른 찰떡 남매
▲ 우도 바다를 뒤에 두고 한 녀석은 강아지, 한녀석은 망아지 같이 폴짝 뛰어오른 찰떡 남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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