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던 순둥이가 몸짱 되다니 ‘수렁에서 건진 아들’ 맞구나”

202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 아름다운 육체미 부분에서 우승한 아들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202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 아름다운 육체미 부분에서 우승한 아들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욱아. 얼마 전 동창 딸의 결혼식에 갔었어. 신랑이 헬스 트레이너라 하더라. “내 아들도 그거 하는데…” 했더니 친구들이 의아한 눈으로 엄마를 봤어. “진짠데...” 하면서 너의 ‘몸짱대회’ 사진을 보여줬어. 다들 무척 놀라더라. 한 친구는 “미경씨 뱃속에서 이런 아이가 나왔다고?” 하며 믿을 수 없대. 하긴 ‘멸치’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고등어’ 같이 탱탱한 아이라니 믿기 어렵겠지.

2005년 13살 때 성묘 갔다가 힘들어하는 사촌동생을 업고 내려오던 아들
2005년 13살 때 성묘 갔다가 힘들어하는 사촌동생을 업고 내려오던 아들

엄마도 가끔 ”야가 내 아들 맞나 ?” 하고 생각해. 너 어릴 때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더 들지. 어려서는 눈물 많고 무서움 많은 순둥이. 초 · 중 때는 험한 소리 한 번 못하고, 친구들 말은 싫어도 다 들어주던 삐쩍 마른 투덜이. 아이들이 너를 만만하게 대하는 걸 괴로워했고, 학교를 싫어했고, 공부도 싫어했지. 대안중학교에 가고 싶어했지만 아빠 반대로 이루지 못한 너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중학교를 다녔지. 하지만 고등학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어. 네가 중학교 3학년 1학기 마치고 유학이라는 탈출구를 택했을 때, 1년만 바람 쐬고 오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 엄마 마음은 무척 아팠단다 .

중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유학 간 아들. 이렇게 밝게 웃는 게 아주 오랜 만이다. 
중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유학 간 아들. 이렇게 밝게 웃는 게 아주 오랜 만이다. 

뉴질랜드를 거쳐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너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 기억나니 ? 큰 덩치의 근육질 청년이 멀리서 오는데 “ 어 ~, 쟈 내 아들 같은데… 왜 아닌 것도 같지 ?” 너는 모른 척 지나쳤다가 돌아오면서 “ 아들도 못 알아봐 ” 라고 엄마를 구박했지 . 한바탕 웃었지만 놀랍도록 덩치를 키운 이유가 캐나다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는 또 한번 마음이 아팠지 .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군대 갔을 때도 엄마는 또 놀랐어. '공군 헌병 대테러 진압반인 특수임무반에 가겠다고?  그 훈련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하고, 담력이 세야 하는데... 겁둥이 내 아들이 저걸 한다고 ?’ 하며 반대했지. 체력에 자신감이 붙은 너는 결국 특수임무반을 지원해 무사히 마쳤어. 네가 입대하면서 했던 말 기억나니?  “엄마 ,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서 돌아올게요” 곱고 여린 마음을 가진 너에게 ‘남자다워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아마 너는 그걸 원했었나 봐. 더 몸짱이 되어 나타난 걸 보면... 독학으로 터득한 근육 만들기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며 키네시올로지(신체운동학)를 전공하고 싶다고 한 걸 보면 말이야 .

공부를 그렇게도 싫어하던 네가 “ 엄마 , 여기 공부는 할 만해, 내가 좋아하는 과목 위주로 들어서인지 학점도 잘 나와 “라고 했을 때 이게 꿈인가 생신가 했어 . 대학을 졸업했을 땐 ‘ 이제 엄마 걱정도 끝이 나는구나’  했는데… 웬걸 ? 코로나19 유행이 터지고 네가 일할 만한 곳은 문을 닫고 거의 2년을 집에서만 보내야 했어. 실업자를 위한 캐나다 정부의 생계보조금으로 어찌어찌 산다지만 한창 일할 젊은이가 집에만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했지 . 한국에 오면 좋겠다 했지만 너는 캐나다에서 살아남겠다고 단칼에 거절했어 .

202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 육체미 부분에서 우승한 아들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202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 육체미 부분에서 우승한 아들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그 와중에도 넌 홈트레이닝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었더구나 . 지난해 11월 토론토에서 열린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KKNC)의 ‘아름다운 육체’ 부문에 첫 출전해 우승까지 차지했다니 말이야. 탄수화물과 수분 섭취도 조절하는 다이어트로 뼈에 근육만 달라붙어 안쓰럽지만 유전적으로 어깨가 좁고 가는 뼈를 가진 깡마른 체구의 네가 혼자 힘으로 저런 몸을 만들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면 자랑스럽기도 하네 .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아들 뒷태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2021 킹콩 내추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아들 뒷태 (사진 : 킹콩  클래식 홈페이지에서)

캐나다가 코로나를 벗어나면서 올해 초 너도 직장을 잡았지 . 그런데 축하할 일이 더 생겼다지? ‘운동요법 전문가’(kinesiologist ) 자격증도 땄다니 말이야 . 서른살, 대학 졸업하고 , 경연대회 우승하고 , 취직 , 공인자격증까지 땄으니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날개를 차근차근 달게 되는구나 .

너의 진짜 날개는 뭘까 ? 캐나다 영주권 따기 ? 엄마는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 . 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이동 비용이 너무 세다 싶어 못 갔고, 코로나로 대학 졸업식은 안했으니, 네 대학원 졸업식에는 너와 팔짱끼고 사진 찍고 싶어 대학원 진학하라고 하면 엄마가 욕심쟁이일까 ? 고등학교 때 네가 편지에 ‘ 수렁에서 건진 아들 ’이라고 써주었는데…, 수렁에서 건졌으면 됐지 대학원까지 가라니.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 “ 엄마 ,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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