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관광지 소요산 정미의병 추모비는 눈여겨 보아주는 이 없이 관광지 입구를 지키고 있어

때 : 2017년 9월22일 12시 ~ 12시20분

장소 :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 원효대

누가 : 한겨레온<한겨레주주 통신원 및 가족>

무엇 : 경기북부 동두천 원효대 정미의병 전적지 추모비

후원 : 경기북부보훈청, 한겨레:온, 민족문제연구소경기북부지부

▲ "친일파 척결!"을 외치는 기념사진

정문부 장군의 묘역에서 출발 하여서 소요산 입구의 [정미의병 전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를 달려갔다.

사실 서울 근교의 산으로 그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지만 일단 이 산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처음이라니 참으로 한심할 정도라 할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더구나 1991년 교감 승진을 하여서 첫번째 발령지가 양주군이었고, 이곳 동두천에 교육청이 있어서 뻔질나게 동두천을 오갔으면서 단 한 번도 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소요산을 등산하기 위해 들른 것이 아니니 소요산과는 인연이 없나보다.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입구에 있는 [정미의병 전적지]를 찾아 온 것이니까 소요산에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높이는 587m이고, 주봉(主峰)은 의상대(義湘臺)이다. 서울특별시에서 북쪽으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645년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개산(開山)하여 자재암(自在庵)을 세운 이후, 974년(고려 광종 25)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중대암(中臺庵)·소운암(小雲庵)·소요암(逍遙岩)·영원사(靈源寺) 등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자재암은 봉선사(奉先寺)의 말사(末寺)로서, 원효대사가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 천마상을 만들고

일단 산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10여 분이나 걸었을까? 즐비한 식당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보이는 기념탑이 있었다. 바로 우리가 오늘 탐방하고자 하는 [정미의병 전적지] 기념탑이었다. 더구나 우리가 점심을 먹을 식당이 바로 이 탑이 바라보이는 마지막 자리에 위치한 식당이었으니 여기에서는 별로 신경을 쓸 일이 없어 보였다.

[소요산에는 청량폭포(淸凉瀑布)와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 지대를 하백운대(下白雲臺, 500m)라고 한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元曉臺)가 솟아 있고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고 전하는 옥로봉(玉露峰)을 넘어 북동쪽으로 나한대(羅漢臺, 510m)·의상대·비룡폭포가 나온다. 또 원효대에서 약 30m쯤 되는 절벽 위를 상(上)백운대라고 하며, 그 밑으로 선녀탕(仙女湯)을 볼 수 있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유명하다. 산 입구에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의 추모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요산 [逍遙山]

▲ 추모비

이곳은 김연성 의병장이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 또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의병장 황순일의 권유를 받고 고향인 이담면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 양주군 주내 전투에서 총대장 이인영을 도와서 싸웠으며, 소요산 원효대 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 격퇴시켰다. 윤인순, 전목기, 유재만 등과 함께 양주, 연천, 적성, 포천, 가평, 평산 등지를 돌며 의병 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1909년 순국하였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이 헌화를 하고 묵념 올리고 하는 행사를 치르는 동안에 한 어린이가 기념비 옆에 있는 천마상을 올라타고 있어서 나는 아주 보기에 좋지 않아서 손짓으로 내려오기를 권했다. 그러나 부모가 이 모습을 못 본 것인지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조금은 섭섭하였다. 오늘의 행사의 뜻을 생각한다면 이러지는 말아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병활동의 기록들을 보면서 아직도 그 전적지들을 찾지 못하고 있는 김연성 의병장의 전적지들인 <양주군 주내 전투 전적지>, <추산리 헌병분견소전투 전적지>, <윤인순과 함께한 양주 북방 4개리 삭령수비대전투 전적지> 등을 찾아 분명하게 표지석이라도 세워서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주어야 할 책임은 현재의 우리들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제까지 친일파들의 정치세력 아래서 살아온 탓으로 친일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일의 역사는 잊고 싶은, 아니 들추기를 꺼리는 금기의 이야기이었던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방치가 되어 있는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서 있는 <정미의병 전적지 기념비>처럼 곳곳에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일행이 가는 곳마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구호를 한두 번씩 외치기로 하였다. 그 연호하는 우리들의 구호 중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구호가 “친일파 척결” 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다시는 이런 민족을 배반한 민족반역자들을 이번만은 꼭 씻어내고 정리를 할 때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고, 이번의 행사로 우리는 기어이 이런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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