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숲과문화연구회에서 5월 숲 탐방지는 계족산성으로 정했다. 5월 19일 계족산성 탐방 안내자는 임주훈(해밀 산림생태 입지연구소장)박사다. 지난 아미산 탐방 안내자 국민대 김기원 교수와 마찬가지로 A4 용지 12쪽에 달하는 안내서를 준비했다. 기필코 우리를 공부시키고야 말겠다는 두 분의 지극 정성에 감복하여 열심히 안내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계족산성 탐방 후 남간정사와 동춘당도 구경했다.
대전 하면 생각나는 산은 계룡산(鷄龍山)이다. 계룡산은 대전 서쪽에 있는 산으로 줄지어 이어진 봉우리가 닭 볏을 쓴 용과 닮아 계룡산이라 부른다. 계족산(鷄足山)은 대전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닭발을 닮아 계족산이라 부른다. 대전을 감싸고 있는 두 산 중 하나는 용산이요, 하나는 닭발산이라니... 계족산이 좀 섭섭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래 지도를 보니 산세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 작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전에는 동북쪽 계족산과 동남쪽 식장산을 잇는 능선을 따라 약 30여개 산성이 있다. 그 중 계족산성이 가장 큰 산성이다. 대전에 산성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대전이 백제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요충지였기 때문이란다.
계족산성으로 오르는 두 길 중 일부는 황톳길을 택했고 대부분은 능선 길을 택했다. 이 능선 길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다. 음지는 아니지만 우거진 나무로 인해 그늘이 많고 좀 습한 느낌이 든다. 사람 하나가 지나갈만한 좁은 능선길이라 바로 옆에 식물들을 가까이 구경할 수 있다.
숲해설가 김강숙 선생과 이희옥 선생을 따라가면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이번에도 졸졸 따라갔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싹이 잘 튼다고 하며 막 싹을 내고 있는 새싹들을 알려준다. 덕분에 땅에 고개를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일만한 새싹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의 백미는 막 발아를 마친 아기 소나무.
능선 길로 들어서기 전 국민대 김기원 교수는 오늘은 숲향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날이 될 거라 했다. 이 길은 때죽나무길이라고 부를 정도로 때죽나무 천지다. 때죽나무는 5월 어느 화창한 열흘동안 있는 힘을 다해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진다. 그래서 그 열흘 동안 때죽나무가 있는 곳은 향기가 산을 덮는다. 그 향에 새들도 기분이 좋은지 여기저기서 초랑초랑한 소리를 뽐낸다.
때죽나무는 열매에 어독(魚毒)이 있어 찧어 시냇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 올라온다 하여 떼죽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 쪽동백나무와 꽃 모양도 비슷하고 꽃이 통째로 지는 것도 비슷하다. 둘 다 향도 좋다. 두 열매 모두 기름 성분이 많아 동백기름 대용 기름을 짠다. 다른 점은 잎 모양과 꽃 피는 모습이다. 때죽나무는 가지에서 나온 꽃대에 2-5 송이 꽃이 아래로 늘어져 피고, 쪽동백나무는 금낭화같이 긴 꽃대에 20~30 송이 흰 꽃이 일 열로 주렁주렁 달린다.
한참 가다가 백선(白鮮)도 만났다. 수십 그루가 모여 피었다. 백선의 향도 그만이다.
한 회원은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했다. 白鮮은 ‘희고 선명하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본 백선은 흰 바탕에 자색 선이 아주 선명하다. 보기 쉽지 않은 만큼 쓰임새도 귀하다. 백선의 뿌리는 한약계에서 산삼에 버금간다고 한 정도로 약효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약효 때문에 계족산 백선군락이 통째로 뽑혀나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계족산성에 올랐다. 산성에 오르자 눈에 띄는 꽃이 있다. 개양귀비로 색이 참 강렬하다. 임주훈 박사는 유럽에 널리 피는 개양귀비가 한국에도 식목된 것으로 본다며 그 강렬하고 화려한 색으로 유행을 타 널리 퍼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계족산성은 그 일대에서 가장 큰 산성이므로 조망이 뛰어나다 특히 남문으로 가면 멀리 대청호까지 보인다. 탁 트인 경관에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산성 위에는 수백 년 된 느릅나무와 느티나무 예닐곱 그루가 살고 있다(주). 느티나무 사이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저기 누워 낮술 한잔하고 낮잠 한숨 자다 가고 싶다.
균류(곰팡이)와 조류(녹조, 남조)의 공생체인 지의류도 만났다. 지의류는 이끼류와는 다르다고 김강숙 숲해설가가 설명해준다. 조류는 물에 살아 뿌리가 없고 균류는 엽록소가 없어 땅에서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균류는 조류에게 수분과 무기질을 공급하고, 조류는 이 물질로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균류에 준다고 한다. 둘이 만나 서로 먹고 먹히지 않고 아름답게 사는 만큼 그 색도 곱다.
산딸기와 멍석딸기도 보았다. 왜 멍석딸기일까? 멍석딸기 줄기는 조금 서다가 멍석처럼 땅 위로 눕듯이 퍼져 자라 멍석이란 말이 붙었다 한다(주).
하산 길은 황톳길을 택했다. 숲속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은 14km에 달한다. 계족산성에 정신이 팔려 늦게 내려와서 일부만 걸었다. 발가락 사이로 꼬물대는 진흙의 감촉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려서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달려 나가 맨발로 질척한 땅을 막 밟고 다녔다. 그 때 그 동심으로 돌아가 그 때 그 즐거움을 짧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음 찾은 곳은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다.
남간정사는 조선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이 학문을 닦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다. 정면 4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는 작은 산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4칸 중 중앙 2칸 아래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흘러가도록 넓은 마루를 놓았다. 그 물이 흘러 연못으로 가게 했다.
연못이 참 아름답다. 연못 주변에는 목련, 배롱나무, 철쭉류, 벚나무, 꽃창포 등이 살고 있다. 왕버들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연못 한가운데, 다른 하나는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다. 오른쪽 왕버들은 연못 가운데 왕버들과 한 몸이 되고 싶어서인지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마치 억지로 갈라놓은 님에게 가려는 듯... 그리 생각해보니 연못 한가운데 왕버들이 아름답긴 무척 아름답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개구리밥이 온 연못을 덮고 있었다. 관리를 안 하는 건지.. 제거하기 어려운 건지.. 연못 속 생물들은 어찌 하늘을 볼꼬...
이번 숲탐방에는 한옥전문가 백경기 선생이 함께 했다. 한옥의 구조와 특징을 열심히 설명해주고 질문도 다 받아주었다. 한결 한옥과 친근해진 기분이다.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남간정사 옆 말채나무 껍질을 열심히 찍는다. 그 무늬에서 화가 김환기 작품이 생각난다고 한다. 김환기는 뉴욕에 머물던 시기에 추상 점화(點畵)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 하나하나를 찍으며 고향의 정든 모습, 그리운 얼굴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 점들이 우주의 별같이 화폭에서 살아나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점 하나하나가 무수한 인연으로 새겨진 기억의 점멸이라면, 나무껍질 무늬 또한 무수한 호흡으로 새겨진 시간의 점멸을 말해주는 듯하다.
능선 길에서 수줍게 인사하는 두 꽃을 마지막으로 올리면서... 늘 기대 이상 기쁨을 주는 (사)숲과문화연구회의 탐방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다음 탐방도 기다려진다. 6월말에는 해외 숲탐방(베트남)이 있고, 국내 숲탐방은 8월 18일 재개한다. 대관령으로 간다고 하는데... 헉~~ 석달이나 기다려야 하네...
* (주) (사)숲과문화연구회의 임주훈 소장과 숲해설사 김강숙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전체 내용에서도 점검을 해주셨다. 매번 감사할 뿐이다. 때죽나무 사진은 박효삼 편집위원이 제공했다.
* 참고기사 : 관악산 때죽나무 쪽동백나무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91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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