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숲과문화연구회에서 5월 숲 탐방지는 계족산성으로 정했다. 5월 19일 계족산성 탐방 안내자는 임주훈(해밀 산림생태 입지연구소장)박사다. 지난 아미산 탐방 안내자 국민대 김기원 교수와 마찬가지로 A4 용지 12쪽에 달하는 안내서를 준비했다. 기필코 우리를 공부시키고야 말겠다는 두 분의 지극 정성에 감복하여 열심히 안내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계족산성 탐방 후 남간정사와 동춘당도 구경했다.

대전 하면 생각나는 산은 계룡산(鷄龍山)이다. 계룡산은 대전 서쪽에 있는 산으로 줄지어 이어진 봉우리가 닭 볏을 쓴 용과 닮아 계룡산이라 부른다. 계족산(鷄足山)은 대전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닭발을 닮아 계족산이라 부른다. 대전을 감싸고 있는 두 산 중 하나는 용산이요, 하나는 닭발산이라니... 계족산이 좀 섭섭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래 지도를 보니 산세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 작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 계룡산과 계족산, 식장산

대전에는 동북쪽 계족산과 동남쪽 식장산을 잇는 능선을 따라 약 30여개 산성이 있다. 그 중 계족산성이 가장 큰 산성이다. 대전에 산성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대전이 백제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요충지였기 때문이란다.

계족산성으로 오르는 두 길 중 일부는 황톳길을 택했고 대부분은 능선 길을 택했다. 이 능선 길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다. 음지는 아니지만 우거진 나무로 인해 그늘이 많고 좀 습한 느낌이 든다. 사람 하나가 지나갈만한 좁은 능선길이라 바로 옆에 식물들을 가까이 구경할 수 있다.

▲ 계족산성으로 올라가는 능선길

숲해설가 김강숙 선생과 이희옥 선생을 따라가면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이번에도 졸졸 따라갔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싹이 잘 튼다고 하며 막 싹을 내고 있는 새싹들을 알려준다. 덕분에 땅에 고개를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일만한 새싹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의 백미는 막 발아를 마친 아기 소나무.

▲ 솔씨 달린 아기 소나무와 그 아래는 일본 잎갈나무, 오른족은 유아 노간주나무(주)

능선 길로 들어서기 전 국민대 김기원 교수는 오늘은 숲향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날이 될 거라 했다. 이 길은 때죽나무길이라고 부를 정도로 때죽나무 천지다. 때죽나무는 5월 어느 화창한 열흘동안 있는 힘을 다해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진다. 그래서 그 열흘 동안 때죽나무가 있는 곳은 향기가 산을 덮는다. 그 향에 새들도 기분이 좋은지 여기저기서 초랑초랑한 소리를 뽐낸다.

▲ 때죽나무와 쪽동백나무

때죽나무는 열매에 어독(魚毒)이 있어 찧어 시냇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 올라온다 하여 떼죽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 쪽동백나무와 꽃 모양도 비슷하고 꽃이 통째로 지는 것도 비슷하다. 둘 다 향도 좋다. 두 열매 모두 기름 성분이 많아 동백기름 대용 기름을 짠다. 다른 점은 잎 모양과 꽃 피는 모습이다. 때죽나무는 가지에서 나온 꽃대에 2-5 송이 꽃이 아래로 늘어져 피고, 쪽동백나무는 금낭화같이 긴 꽃대에 20~30 송이 흰 꽃이 일 열로 주렁주렁 달린다. 

한참 가다가 백선(白鮮)도 만났다. 수십 그루가 모여 피었다. 백선의 향도 그만이다. 

▲ 백선 군락

한 회원은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했다. 白鮮은 ‘희고 선명하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본 백선은 흰 바탕에 자색 선이 아주 선명하다. 보기 쉽지 않은 만큼 쓰임새도 귀하다. 백선의 뿌리는 한약계에서 산삼에 버금간다고 한 정도로 약효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약효 때문에 계족산 백선군락이 통째로 뽑혀나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계족산성에 올랐다. 산성에 오르자 눈에 띄는 꽃이 있다. 개양귀비로 색이 참 강렬하다. 임주훈 박사는 유럽에 널리 피는 개양귀비가 한국에도 식목된 것으로 본다며 그 강렬하고 화려한 색으로 유행을 타 널리 퍼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 개양귀비

계족산성은 그 일대에서 가장 큰 산성이므로 조망이 뛰어나다 특히 남문으로 가면 멀리 대청호까지 보인다. 탁 트인 경관에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 남문에서 보는 전경

산성 위에는 수백 년 된 느릅나무와 느티나무 예닐곱 그루가 살고 있다(주). 느티나무 사이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저기 누워 낮술 한잔하고 낮잠 한숨 자다 가고 싶다.

▲ 계족산성 꼭대기에 살고 있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주)

균류(곰팡이)와 조류(녹조, 남조)의 공생체인 지의류도 만났다. 지의류는 이끼류와는 다르다고 김강숙 숲해설가가 설명해준다. 조류는 물에 살아 뿌리가 없고 균류는 엽록소가 없어 땅에서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균류는 조류에게 수분과 무기질을 공급하고, 조류는 이 물질로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균류에 준다고 한다. 둘이 만나 서로 먹고 먹히지 않고 아름답게 사는 만큼 그 색도 곱다.

▲ 계족산성에서 만난 지의류

산딸기와 멍석딸기도 보았다. 왜 멍석딸기일까? 멍석딸기 줄기는 조금 서다가 멍석처럼 땅 위로 눕듯이 퍼져 자라 멍석이란 말이 붙었다 한다(주).

▲ 산딸기와 멍석딸기

하산 길은 황톳길을 택했다. 숲속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은 14km에 달한다. 계족산성에 정신이 팔려 늦게 내려와서 일부만 걸었다. 발가락 사이로 꼬물대는 진흙의 감촉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려서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달려 나가 맨발로 질척한 땅을 막 밟고 다녔다. 그 때 그 동심으로 돌아가 그 때 그 즐거움을 짧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 황톳길

다음 찾은 곳은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다.

남간정사는 조선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이 학문을 닦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다. 정면 4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는 작은 산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4칸 중 중앙 2칸 아래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흘러가도록 넓은 마루를 놓았다. 그 물이 흘러 연못으로 가게 했다.

연못이 참 아름답다. 연못 주변에는 목련, 배롱나무, 철쭉류, 벚나무, 꽃창포 등이 살고 있다. 왕버들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연못 한가운데, 다른 하나는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다. 오른쪽 왕버들은 연못 가운데 왕버들과 한 몸이 되고 싶어서인지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마치 억지로 갈라놓은 님에게 가려는 듯... 그리 생각해보니 연못 한가운데 왕버들이 아름답긴 무척 아름답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개구리밥이 온 연못을 덮고 있었다. 관리를 안 하는 건지.. 제거하기 어려운 건지.. 연못 속 생물들은 어찌 하늘을 볼꼬...

이번 숲탐방에는 한옥전문가 백경기 선생이 함께 했다. 한옥의 구조와 특징을 열심히 설명해주고 질문도 다 받아주었다. 한결 한옥과 친근해진 기분이다. 

▲ 전통한옥 제작의 대가 백경기 선생의 남간정사와 기국정에 대한 설명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남간정사 옆 말채나무 껍질을 열심히 찍는다. 그 무늬에서 화가 김환기 작품이 생각난다고 한다. 김환기는 뉴욕에 머물던 시기에 추상 점화(點畵)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 하나하나를 찍으며 고향의 정든 모습, 그리운 얼굴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 점들이 우주의 별같이 화폭에서 살아나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점 하나하나가 무수한 인연으로 새겨진 기억의 점멸이라면, 나무껍질 무늬 또한 무수한 호흡으로 새겨진 시간의 점멸을 말해주는 듯하다.

▲ 남간정사 옆 말채나무 껍질과 김환기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라'

능선 길에서 수줍게 인사하는 두 꽃을 마지막으로 올리면서... 늘 기대 이상 기쁨을 주는 (사)숲과문화연구회의 탐방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다음 탐방도 기다려진다. 6월말에는 해외 숲탐방(베트남)이 있고, 국내 숲탐방은 8월 18일 재개한다. 대관령으로 간다고 하는데... 헉~~ 석달이나 기다려야 하네...

▲ 마지막으로 낙엽에 숨어 있다 인사하는 족두리풀과 은난초(주)

* (주) (사)숲과문화연구회의 임주훈 소장과 숲해설사 김강숙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전체 내용에서도 점검을 해주셨다. 매번 감사할 뿐이다. 때죽나무 사진은 박효삼 편집위원이 제공했다.

* 참고기사 : 관악산 때죽나무 쪽동백나무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91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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