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오딧세이아7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八年戊戌      영락8년(398년) 무성[戊]한 중화의 개[戌 선비]들이

    敎遣偏師      편견[偏]의 깃털[師]을 교사[敎]하고 퇴출[遣]하며

    觀肅愼土谷    숙신肅愼에 오행의 욕망[土谷]을 투사[觀]하매,

    因偏抄        (왕은)각자의 선택[偏抄]을 따르되 각자의 역할[偏抄]을 결합[因]하여

    得莫斯羅城    그물질을 제거[莫羅]하며 그물질을 분리[斯羅]하는 성城과

    加太羅谷      그물질을 비방[加羅]하며 그물질을 부활[太羅]하는 계곡[谷]의

    男女三百餘人  남녀 3백여인을 치유[得]하였으니.

    自此來朝貢    (숙신은)자아[此]와 변혁[來]에 말미암아 조공하며

    論事          윤리[侖]의 섬김[事]을 비판[言]하였다.

 

광개토왕비의 취지가 선뜻 손에 잡히지 않을 독자들을 위하여 다시 서구의 역사로 우회한다.

"우리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 덕택이 아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1776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실린 역설적 선언이다. 당시 영국사회가 거대자본을 앞세워 제조업으로 진출하려는 상업자본가들과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는 길드의 장인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아담 스미스가 자본의 손을 들어줬다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스미스가 선언한 욕망해방은 곧 중세의 암흑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이었으니, 그로부터 170년 전인 1600년 전후 네델란드와 영국에서 동인도회사가 설립될 때 역사는 이미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선언이 길드에서 공장생산으로의 전환을 촉진하였다면, 그 이전에 동인도회사를 필두로 한 거대상업자본을 응원한 것은 누구일까?

'베니스의 상인' 4막 재판장면이다. 안토니오는 유대인에게 빌린 3천 더거트의 돈을 기일 내에 갚지 못하였으니, 계약에 따라 1파운드의 살을 뜯기는 형벌을 면할 수 없으리라. 판사(포르티아)가 계약내용을 확인하고 샤일록의 주장을 받아들이자 샤일록은 시퍼런 칼을 들고 안토니오에게 다가간다. 칼날처럼 번뜩이는 샤일록의 눈, 눈을 지그시 감은 안토니오, 무대 위의 주인공들과 관객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안토니오의 가슴에 칼날이 꽃이려는 절정의 순간, 판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법정의 팽팽한 공기를 가른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유대인은 들으시오. 이 차용증서에는 피는 단 한 방울도 준다는 말이 없소. 문구는 단지 '살 1파운드'라고만 적혀 있소. 그러니 계약에 따라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가시오. 그러나 살을 도려낼 때 단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린다면, 그대의 목숨은 없는 것이며 그대의 전 재산은 베니스공화국에 몰수될 것이오."

역사적인 포르티아의 명판결이다. 그러나 곰곰이 새겨보면 명백한 궤변이 아닌가.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는 계약은, 살을 도려낼 때 필연적으로 흘리게 될 '피'까지도 감수한다는 묵시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구원의 여신 포르티아는 논리적 트릭으로 상인 안토니오를 구원한 것이다. 그러니 포르티아가 안토니오를 구원하였다지만, 셰익스피어는 '트릭'으로 은밀하게 샤일록의 정당성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베니스의 상인'의 취지는 무엇일까?

1. 이자의 정당성: 샤일록(유대인)이 대금업으로 벌어들이는 이자는 정당하다.

2. 유한책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받은 상인(안토니오)의 배(주식회사)가 침몰하여 파산하였을 때, 상인(주식회사)은 회사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

셰익스피어가 이 두 가지 원칙-근대의 원리-을 선언하였으니, 엘리자베스여왕(포르티아)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부여받은 상선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아담 스미스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이기적인 욕망'이 있기에 우리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는다고 선언하였지만, 그것은 '샤일록의 이기적인 욕망이 있기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는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선언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의 언어로 우리의 착각을 일깨웠으니, 이기적인 욕망이 곧 희망이고 꿈이며 도전과 모험의 원천이라는 점을 환기하며 다시 광개토왕비를 되새겨보자.

 

   八年戊戌      영락8년(398년) 무성[戊]한 중화의 개[戌 선비]들이

    敎遣偏師      편견[偏]의 깃털[師]을 교사[敎]하고 퇴출[遣]하며

    觀肅愼土谷    숙신肅愼에 오행의 욕망[土谷]을 투사[觀]하매,

    因偏抄        (왕은)각자의 선택[偏抄]을 따르되 각자의 역할[偏抄]을 결합[因]하여

    得莫斯羅城    그물질을 제거[莫羅]하며 그물질을 분리[斯羅]하는 성城과

    加太羅谷      그물질을 비방[加羅]하며 그물질을 부활[太羅]하는 계곡[谷]의

    男女三百餘人  남녀 3백여인을 치유[得]하였으니.

    自此來朝貢    (숙신은)자아[此]와 변혁[來]에 말미암아 조공하며

    論事          윤리[侖]의 섬김[事]을 비판[言]하였다.

 

여기에 인용된 '주역'의 여러 문장들은 말미에 제시한다. 먼저 주체들을 응시하라. 1~3행의 주체는 '중화의 개들'이며, 4~7행의 주체는 광개토왕이며, 8~9행의 주체는 '숙신'이다.

'중화의 개들'은 편견의 공작새깃털을 출시(교사)하고 폐기(퇴출)한다. 음양으로 중화주의를 업그레이드하며 숙신을 포획한다는 말이다.

광개토왕은 다양성(욕망)을 존중하며 그 다양한 개성들을 결합한다. "그물질을 제거하며 그물질을 분리"는 바꾸어 말하면, 금욕의 쇼를 하며 욕망하는 중생을 분리한다는 말이다. "그물질을 비방하며 그물질을 부활"은 까마귀욕망을 비방하며 중화의 그물을 부활한다는 말이다. "남녀 300여인을 치유"는 주역 제6天水訟에 나오는 은나라 제을이 누이를 비판자(오랑캐였던 문왕)에게 시집보내어 백성들 사이에 중화문물을 유행시킴으로써 오랑캐나라를 포획한 이야기다. 반대로 광개토왕은 중화화되어가는 숙신에 '다양성과 결합'의 원리를 선전하여 '남녀 300여인'을 치유함으로써 숙신을 유화문명의 품으로 되돌린다.

숙신은 조공한다. '윤리[侖]의 섬김[事]'은 영락8년기의 키워드로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말한다. 주역 제63수화기제水火旣濟의 '윤리의 섬김'은 백성들에게 주입된 삼강오륜 따위의 윤리가 성인군자들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제공한다는 말이니, 광개토왕의 철학을 깨달은 숙신은 그것을 비판하며 '우리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리라.

 

주역 제7지수사地水師

初六 師出以律     사師는 낳음[出]과 떨어뜨림[出]으로써 규율[律]하니

     否臧凶       허물하지 않고[不口] 퇴출하지 않으면[不臧] 흉凶하다.

六三 師或輿尸     깃털[師]이 기한[或]을 넘어 상여[輿]가 시체[尸]이니

     凶           흉凶하도다.

 

주역 제11지천태地天泰
六四 翩翩         편견[扁]의 깃털[羽]을 거듭 휘날려라[翩翩].
     不富以其鄰   부富를 추구하지 않으면 키[其]가 보상[鄰]하리니
     不戒以孚     계율[戒]하지 않아도 공작새는 편견의 깃털을 거듭나리라[孚].

 

주역 제6천수송天水訟 九二

不克訟            비판자[訟]을 죽이지 말라.

歸而逋其邑人三百戶 비판자에게 (누이를)시집보내어[歸] 그 읍인 300호를 포획[逋]하면

无眚              무无가 선악을 분별[眚]하리라.

 

주역 제63수화기제水火旣濟

初九 曳其輪        키의 수레[其車]를 끌면[曳] 윤리[侖]가

     濡其尾 无咎   교미할 수 있는 특권[其尾]을 부여[濡]하니 불평불만이 없도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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