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마한1 한반도로 울려퍼지는 보헤미안 랩소디

빅토리아시대 교육의 위대한 지적 시도는 '분리와 정복'이었다.

분리되어야 할 것은 문화였고, 그래서 문화는 고급한 것과 저급한 것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졌다.

정복되어야 할 것은 새로이 발흥하여 인간문화의 구석구석에 비속함을 실어나르는 폭민-귀족의 경계를 위협하는 도발적인 대중-이었다.(중간생략: '대중mob'과 '소비consumption'의 어원)

분리와 정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교육이었는데, 그것도 강제적인 교육이었다. 학교는 통속소설과 고급문학의 차이를 가르쳤다. 고전음악이 댄스뮤직보다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곳도 학교였다. 나아가 '예술감상'을 배우는 곳도 학교였다. 학생들은 "인간의 사상과 언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배웠다. 그것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아는 것이 그들을 난폭하고 불결한 사람들(대중)과 구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물질의 몸(예수의 몸을 조롱하는 표현), 즉 정전正典은 분리추출되고 교육받은 엘리트들을 위한 특별구역이 만들어졌으니, 그들은 새로운 예배당-미술관 교향악연주장 대학교-에서 그 정전들을 접하였다.

인정된 가치를 그러모으고 있던 정전들은 바야흐로 수확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광고인들에게는 이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아이러니인가. 만일 어떤 업자가, 대량생산한 그래서 저속한 상품을 '예술'이라는 특권적 범주에 속한 것들과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그는 경쟁에서 승리하리라. 쓰레기와 보물의 차이는 단지 그것이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달려있을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 현상을 광고업계에서는 '결합가치'라고 부른다. 캐딜락자동차를 고급골프채와 함께 광고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싼 티셔츠에 폴로 경기용 조랑말을 그려넣는 이유도 그것이고, 캐비어가 다른 물고기 알보다 비싼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저 시스티나성당의 벽화가 교황의 짤막한 서신을 받아든 성직자들의 주문에 따라 성경을 광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오, 결합광고의 위대함이여!

-제임스 트위첼의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에서-

 

제임스 트위첼은 광고(광고와 예술의 결합)의 역사를 19세기 대중교육, 15세기 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독자들은 수천년 전부터 '忠-孝-烈'의 결합으로 창조되고, 문화예술과 결합함으로써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온 '절개'라는 이름의 가치를 기억하리라. 또한 '분리하여 정복하는' 자들의 결합광고가 있다면, 그들에 맞서서 '결합하여 해방하는' 자들의 결합마케팅이 있음을 생각하리라.

▲ 음악계의 프로메테우스 프레디 머큐리가 이끄는 그룹 퀸Queen의 앨범

제29화에서 한국의 록을 개척한 신중현의 이름을 거론하였지만, 삼국유사 '마한'편은 록이라는 대중음악에 교향악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노골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자처했던 그룹 퀸Queen을 호출한다. 록과 오페라 헤비메탈이 이루는 7분간의 광란의 축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현실세계와 자아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은은한 아카펠라의 1악장. 어머니에게 범죄를 고백하는 애잔한 발라드의 2악장.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하는 장엄한 합창으로 '심판자의 호통 vs 심판받는 자의 절규'를 대비시킨 3악장. 하드록의 강렬한 사운드를 배경 삼아 모순의 구조를 폭로하는 4악장. 그 중에서 제2악장 제3악장의 서사Rhapsody를 들어보자.

 

제2악장.

엄마mama, 방금 어떤 사람(a man)을 죽였어요.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지요.

엄마, 인생은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난 모든 것을 팽개쳐버렸군요.

엄마, 오! 당신을 울리려고 한건 아니었어요.

만일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가세요.

 

제3악장.

저기 어떤 사람(a man)의 그림자가 있군요.

어릿광대야, 어릿광대야, 판당고 춤이나 추어다오.

천둥 번개가 너무너무 무섭구나.

Galileo Galileo, Galileo… figaro, Magnifico.

난 비천한 집안의 가련한 아이일 뿐이야.

이 아이를 기구한 운명에서 구해주세요.

덧없이 왔다가는 저를 풀어주세요.

알라의 이름으로, 우린 너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

알라의 이름으로, 우린 그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

그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그를 풀어줘.

너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나를 풀어줘.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Mama mia, mama mia, mama mia, let me go.

마왕의 하수인인 악마가 날 붙잡네, 나를, 나를.

 

어떤 사람(a man)은 神papa의 이름으로 억압의 말씀을 가르치는 거짓청지기들이 아니겠는가. 작곡자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분명 <햄릿>의 오마주로서 '가치'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인 가련한 여인mama들에게 바치는 반항아의 선물이리라.

갈릴레오여, 당신은 왜 청지기들의 법에 굴복하였는가! 피가로여, 당신은 왜 소중한 연인을 엉큼한 백작(Magnifico)으로부터 지키지 못하였는가! 록음악의 저항성을 대표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절규를 되새기며, 이제 '위만조선'이라는 충격파를 고스란히 한반도로 실어나르며 韓이라는 나라를 세운 '돌아온 프로메테우스들'의 신화를 보자.

 

삼국유사 '馬韓(韓)'편

魏志云            ‘위지魏志’는 이렇게 말하였다.

魏滿擊朝鮮         위만魏滿이 조선朝鮮을 공격하자

朝鮮王準率宮人左右 조선왕 ‘준準’은 궁인들을 거느리고 (漢의)우상[右]을 비판[左]하며

越海而南至韓地     바다를 넘어[越海] 풍류를 훔쳐와[而南] 韓의 섬김[地]을 우상화하여

開國號馬韓         나라를 열었으니 마한馬韓이라 불렀다.

甄萱上太祖書云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太祖에게 올린 글에서 말하였다.

昔馬韓先起         옛날 마한馬韓이 기용起用을 우대[先]하매

赫世勃興           혁거세赫居世(죽음의 세상을 꾸짖는)가 발흥하고

於是百濟開國於金馬山 ‘시是’를 거부[於]하는 백제百濟가 금마산에서 나라를 열었다.

 

우리가 삼국시대 이전의 세 나라라고 알고 있는 삼한의 실체는 무엇일까?

첫번째 이슈는 제목에 있다. 일연은 '馬韓(韓)'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세 개의 나라가 각각 존재하였다는 통설을 거부한 것이다.

두번째는 정체성이다. '馬韓(韓)'의 건국자들은 漢(중화)의 우상을 비판하며 韓의 섬김을 우상화하였다.(중화를 漢으로 특정한 것은, 韓의 건국을 '漢 vs 韓'의 대결이라는 틀에서 장황한 이야기들을 열거한 여러 중국사서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 두가지는 우리가 배운 역사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지만, '잘못된 역사학'에도 이미 단서는 숨어있었으니, 제1화 제4화를 환기하시라. 고조선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키워드는 '팔조법금'이었다. 단군조선의 법은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배상하고 물건을 훔치면 노비로 만드는 8조의 형법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와서 예禮와 의義를 가르치며 삼강오륜과 같은 법도(禁八條)의 나라로 만들어버렸으니, 중국의 역사책들은 '형법의 나라냐 법도의 나라냐'라는 질문으로 고조선의 정체를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韓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소도蘇塗'가 그것이다. 소도는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마을이라고 한다. 또한 소도는 신성불가침 구역이어서 죄인이 그곳으로 도망치면 처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삼한은 왜 죄인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였을까? <햄릿>과 <보헤미안랩소디>를 생각하라. 죄인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법'을 심판해야 할 것이니, 마한이 세워지기 이전에 중화주의라는 모순의 구조에서 범죄의 길로 내몰린 죄인이라면 해원상생의 차원에서 관대하게 사면하자는 것이 '소도蘇塗'라는 제도의 취지이리라.

'소도蘇塗'가 잘못된 구조(대전제)하에서 벌어진 죄인(소전제)을 구제하는 제도라면, 일연이 <위지魏志>를 인용하여 말하는 것은 구조(대전제)를 변혁하는 작업이다. 마한(韓)의 건설자들은 "漢(중화)의 우상을 비판하며 韓의 섬김(이념, 목적, 영혼)을 우상화"하였다. 어떻게? 신전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귀족들의 교향악을 민중의 록음악에 접목하여 광란의 노래를 부른 프레디 머큐리처럼 漢(중화)의 풍류[南 문화]를 민중에게 훔쳐다 줌[而]으로써.

<위지魏志>가 이념적 지평에서 韓의 정체를 밝힌다면, 견훤의 이야기는 형식적 지평에서 '나라'를 질문한다. 두 개의 '개국開國'을 응시하라. 기자조선이 멸망하자 그 후예들이 '마한'이라는 나라를 열고, 백제가 금마산에 나라를 열었다. 그런데 견훤은 마한과 백제의 인과관계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은가. 마한(韓)은 원인이고 백제신라는 결과다. 무슨 말인가? 제4화 ‘우리는 왜 한민족인가?’에서 본 「삼국지」위서魏書 동이전을 환기하라.

......위만[滿]과 준準왕의 싸움 생략..... 장차 그 좌우궁인들이 바다[海]로 도주하여 획일의 물[海=每水]을 매몰[入]하고 한韓 땅에 거주하며 스스로 韓王이라 칭하였으니[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위략에 이르기를, 그 아들들은 자기 조상[親]이 나라[國=韓]에 미쳤다[留]는 점을 각성[及]하여 성姓을 일으켜 '한씨韓氏'라 모칭[冒]하였다. 표준[準]이 지배[王]하던 바다의 중국(한반도)은 조선(위만조선)과 대적[與]하지 않고 왕래를 숙원[相]하였다.[魏略曰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그 후손[後]이 절멸하였으나 지금도 한인韓人들은 풍요[有]를 지향[猶]하며 그 제사하는 자를 받들고 있다.[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위서魏書’(=魏志)에서 "그 후손이 절멸하였"다는 말은 '마한(韓)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한인들은 ...... 그 제사하는 자를 받들고 있다"하였으니, 다름 아닌 백제신라가 '소멸한 마한(韓)'을 섬긴다는 말이다. 백제신라가 건국되었을 때 마한(韓)의 존재이유는 거의 사라졌으리라. 그러나 청주한씨의 족보 등을 보면 마한(韓)은 5~6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해온다. 나라[國]는 사라졌어도 아직 어떤 의미에서의 나라[國]는 살아있었다면, 그것은 '왕의 나라'와 '제사장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 두 종류의 나라는 제29화의 '위만조선'편 마지막 구절에서도 암시되었으니, "천자가 공손수로 하여금 '조선'을 평정하게 하고 '조선'으로 하여금 진번 임둔 낙랑 현도 4군을 모방하게 하였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결국 마한은 '제사장의 나라'로서 漢(중화)의 문화[南]를 이용하여 漢(중화)의 우상을 비판하며 韓의 섬김(이념, 목적, 영혼)을 우상화"하는 종교 내지 교육기관이다. 백성들에게 韓의 이념(단군의 영혼, 한비자와 노자의 철학)을 교육하면 중화를 표방하는 제왕들은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그래서 “마한馬韓이 기용起用을 우대[先]하매 죽음의 세상(중화세계)을 꾸짖는 혁거세赫居世가 발흥하고 ‘시是’를 거부[於]하는 백제百濟가 나라를 열었던" 것이다.

다시 마한의 존재이유를 생각하라. 제29화에서 銀馬란 '고매한silver 수컷stallion'이라고 하였다. '낙랑군樂浪郡'이 풍류[樂]의 물[氵]에서 서방질[良]하는 군자[君]들의 마을[阝]이라면 '마한馬韓'은 韓을 서방질[馬=良]한다는 뜻이다. '중화中華'가 낙랑질이라는 서방질oracle로 위대한 오랑캐족을 중화화하려 할 때, '유화柳花'문명인들은 마한질이라는 서방질oracle로 남쪽의 동포들과 북쪽의 여러 오랑캐들을 아우르며 중화의 확장을 저지하였던 것이다.

마한(韓)에 관한 주류사학의 인식은 비판할 나위도 없으리라. 이른 바 '유사사학계'는 마한과 백제의 강토가 중원 깊숙히 뻗어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유효한 사료에 근거한 주장이라면, 그 사료는 중원 땅에서의 '마한질이라는 서방질oracle'을 증언하고 있으리라.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렇더라도 중원을 우리 땅이었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중화가 조선 땅에서 낙랑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이 중국 땅일 수 없듯이 말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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