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59] 정복자 칭기즈칸

영웅인가 학살자인가?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07.24l수정2018.07.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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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칭기즈칸. 가장 잔혹한 정복자. 파괴와 학살의 사신. 절대적인 무력으로 이긴 전쟁, 감히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게 하여 이룬 대제국의 평화. 이집트를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전 이슬람세계를 정복하고 동으로는 고려를 복속시킨 원나라.

청나라 강희제에 의해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가 됩니다. 청나라가 쇠약해지자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고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국호를 정합니다.

몽골리아(약칭 몽골)는 1992년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였고, 현재는 3백여 만의 인구가 사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몽골의 침략으로 지배를 당한 중국인들이 어둡다, 무지하다는 의미가 있는 글자 몽(蒙)을 사용하여 굳어진 이름입니다.

칭기즈칸은 1162년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불화를 겪던 다른 부족에게 아버지가 독살을 당하면서 9살 어린 나이부터 극심한 가난을 경험합니다. 유년시절의 고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과 힘이 곧 정의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한 듯합니다. 정적은 확실하게 제거를 하였고, 배후에 반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종족을 말살하기도 합니다. 유목민을 통합하고 황제에 오른 1206년 세계정복의 길에 나섭니다. 그와 후손이 정복한 땅은 중앙아시아, 이란, 이라크, 인도북부에서 러시아, 중국과 고려를 포함하지요. 지금 중국의 3배에 이릅니다.

▲ 전성기의 몽골제국 영토               사진 : 위키피디아

당시 몽골의 인구는 백만, 주력 기마부대는 20만입니다. 즉 20만의 기마부대로 약 1억의 인구를 지배하였습니다. 100만의 군대와 100만의 보급부대를 이끌고 수양제가 고구려를 쳤지만 요동성을 넘지 못했음을 보면 믿기 힘든 역사입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역사를 만든 원인은 장점을 극대화하고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유목민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말을 탑니다. 걷기도 전에 말 잔등에서 놀며 자란 몽고 기병은 사람과 말이 조화를 이룬-한 몸으로 이루어진 최상의 병기였습니다. 따라서 몽골군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화한 최상의 기병으로만 조직된 군대였습니다. 이는 태생적으로 몽골 유목민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었지요. 따라서 몽골 기병만으로 편제된 20만의 단순한 조직은 전쟁을 수행할 때 신속한 지휘와 빠른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역사상 커다란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은 속도입니다. 적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이동하여 기습하면 대부분 성공을 합니다. 이 작전은 현대에 와서도 적용이 되지요. 독일군에는 사막의 여우 롬멜이 있었고, 연합군에는 패튼제독이 승리를 거둔 요인 역시 상대가 예측할 수 없이 빠른 진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척후병이 정찰을 하고 군의 이동을 보고하면 대충 한주에서 열흘 후에 교전이 벌어집니다. 이전에는 군을 모으고 작전을 수립해서 대응을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지요. 그런데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바로 다음날 쳐들어옵니다. 무방비상태에서 도저히 싸움이 안 되지요. 어떤 경우에는 척후병의 보고보다 몽골군이 먼저 들어옵니다.

군의 이동을 가장 더디게 하는 요인은 보급입니다. 과거에는 백만의 군인이 이동을 하면 백만의 보급인력이 뒤를 따릅니다. 먹지 않고 싸울 수가 없었지요.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말린 말고기를 안장에 차고 전쟁에 참여를 합니다. 자신의 안방과 같은 말위에서 이동을 하고, 말린 고기 한 점 물에다 불리면 든든한 식사가 되지요.

군인 한 명당 몇 필의 말을 끌고 달리다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타면서 순식간에 이동을 합니다. 반항하면 인종청소를 할 정도로 깡그리 죽이는 저승의 야차 같은 잔인한 몽골군이 무방비상태에서 들이닥치면 전의를 상실하고 맙니다.

몽골군의 장점을 잘 살린 조직과 지휘체계의 단순화 그리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전이 칭기즈칸 몽골군의 승전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칭기즈칸의 전술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간책을 능숙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칭기즈칸이 워낙 잔인하게 상대를 죽이고 포악한 행위를 많이 저질러 힘만 잘 쓰는 인물로 기억을 하지만, 20만의 기마병으로 오로지 살육으로만 그 넓은 땅과 1억의 인구를 정복할 수는 없었겠지요.

칭기즈칸이 세력을 확대할 당시 중국은 송나라였습니다. 송나라의 국력이 북방에 미치지 못하고 중국의 서북쪽 고비사막 아래로는 티베트계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가 있었고, 동북쪽에는 거란족의 요와 그 아래 여진족의 금도 일정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에는 고려가 있었고요.

이 서하는 중국의 고대국가 우왕이 세운 하나라의 후예임을 자처하였습니다. 후에 대하라고 국명을 바꾸며 송나라와 대등하게 황제의 나라로 존재하였지요. 고유의 서하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로 많은 불경을 남겼기에 현재는 서하문자가 완전히 해독이 됩니다.

이 서하는 몽고에 끈질기게 저항을 하여 6차례나 전쟁을 치릅니다. 칭기즈칸의 분노를 산 서하는 대표적으로 인종청소를 당한 나라입니다. 한때는 송나라와 자웅을 겨루던 서하의 탕구트족, 많은 유물과 문자를 남겼지만 현재는 유전적인 인종 자체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1200년대 초 칭기즈칸이 점령한 국가들에도 종교와 계층 사이의 갈등은 심했습니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였습니다. 전쟁을 하고자 하는 나라의 귀족이나 장군이 몽골과 내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왕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몽골인은 대부분 티베트계 불교를 믿었는데 칭기즈칸은 기독교나 이슬람의 종교인에 대한 예우도 잘 해주었습니다. 종교간 갈등이 있는 나라는 특히 이간책이 잘 먹히지요.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종교지도자에게 접근하여 갈등관계의 타종교를 제거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만약 상대 종교의 교세에 눌려 억울함을 참아야했던 종교지도자라면 칭기즈칸은 바로 구세주가 되는 것이지요. 앞장서서 몽골군에게 성문을 열어줍니다. 칭기즈칸은 약속을 지켜 상대를 처절하게 제거하고, 동조한 종교인들에게는 혜택을 주지만, 나라는 몽골의 차지가 되고 말지요.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을 수도로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점점 정착민들이 누리던 편안함과 기름진 음식, 그리고 권력과 주색을 탐닉하다보니 예전의 장점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족의 문화에 흡수되고 맙니다. 발톱이 빠진 사자는 더 이상 초원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대제국의 영광도 한순간으로 끝나지요. 남아있는 후손들은 영광의 순간보다 더 길고 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합니다.

▲ 칭기즈칸                    사진 : 위키피디아

칭기즈칸은 숱한 살육을 저지른 잔학한 학살자이며 정복자이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 위인은 아닙니다. 몽골 여행 중에 초원에 높이 세워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은빛 찬란한 마상의 칭기즈칸 상을 보았습니다. 호텔이건 어디건 칭기즈칸이 없는 곳이 없더군요.

몽골인들이 칭기즈칸을 영웅시하고 그리워하는 한 몽골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를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며 세계인에게 끊임없이 속죄하는 독일인들이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칭기즈칸의 이간책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위대한 국가인지, 가장 먼저 멸망할 국가인지? 모두가 남 탓하는 걸 보면 슬프게도 위대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정의롭게 살기를 원했던 정치인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부끄러움을 아는 정의로운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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