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이대로는 안 된다

2018년 6월 한글학회는 회칙 개정을 통해 한글연구자뿐만 아니라 한글운동가를 정회원으로 포용했다. 매우 진일보한 회칙개정으로 비춰지는데 실은 2006년 개악된 회칙을 12년 만에 다시 바로 잡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2018년 3월 정기총회에서 한글학회 회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한글학회는 한글연구를 위한 학술단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한글운동은 시민단체가 할 일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 회칙개정에서 우리말글살이를 위해 애쓴 한글운동가를 놀랍게도 정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에는 한글학회 개혁을 위해 분투한 한글학회 연구위원 박용규 박사(고려대 한국사연구소 교수)의 역할이 컸다. 올해 1-2월 영하 17도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1인 시위를 이어가며 한글학회 개혁을 앞장서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8년 6월 개정된 회칙 가운데 일부 핵심조항은 여전히 한글학회의 비민주성과 폐쇄성을 그대로 떠안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 572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개혁위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글학회 이사회의 전횡에 분노하며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 모습(출처 : 박용규 박사 제공)

우선 한글학회 임원은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이사 등이다. 이들 임원 선출에서 한글학회 주체인 정회원을 여전히 그리고 완전히 배제했다. 1988년 3월 허웅 이사장 체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뒤 어림잡아 30년째이다. 한글학회는 비민주적이다 못해 폐쇄적으로 운영돼 온 셈이다. 이는 한글학회가 민족학회로서 창립 초기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일개 학술단체로 쇠락한 결정적 요인이다. 한글학회 주인인 정회원이 배제된 채 30년 동안 한글학회가 운영돼 왔다는 것은 심각한 발전 지체 요인이다. 한글학회 정회원에게서 빼앗은 임원 선출권은 1988년 신설된 평의원에게 주어졌다.

문제는 30년 동안 평의원을 이사회가 추천하고 평의원회에서 다시 이사를 선출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이사가 평의원을 추천하고 추천 받은 평의원이 다시 이사를 선출하는 기막힌 권력구조였다. 따라서 2018년 6월 회칙 개정에선 정회원도 평의원 후보를 추천하고 평의원을 선출할 수 있게 개정하였다.(회칙 제20조) 이사 등 임원에게만 주어졌던 평의원 선출권을 정회원이 참여할 수 있게 길을 터 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글학회의 절묘한 꼼수가 숨어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6월 개정된 회칙에선 평의원을 60명 이내로 선출해 평의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회칙 제17조) 그리고 평의원 선출 규정 제4조 1항에서는 평의원 후보자를 평의원 60명의 1.5배인 90명의 후보자를 추천하게 되어 있다. 3항에서는 정회원 10명의 동의를 받아 평의원 1명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 여기서 정회원은 평의원 후보자 1명만 추천할 수 있다는 규정도 눈에 띤다. 반면에 이사회는 정회원이 추천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평의원 후보자를 이사회에서 추천할 수 있게 조항을 신설했다.

2017년 한글학회 정회원을 158명으로 추산할 경우 다음과 같은 계산이 나온다. 정회원 10명 당 1명의 평의원 후보자를 낼 수 있으니까 정회원은 평의원 후보자를 15명 추천할 수 있다. 나머지 평의원 후보자 75명은 이사회의 추천으로 후보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15명(17%) : 75명(83%)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여기서 더욱 가관인 것은 이사 1인이 평의원 후보를 10명 이내로 투표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이사 11명이 담합하여 특정인에게 지지를 몰아줄 경우 평의원 60명 모두 이사회 성향의 평의원으로 채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회장, 부회장, 이사 선출권이 있는 평의원들은 다시 자신을 뽑아준 회장, 부회장, 이사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구조가 된다.

2018년 6월 회칙개정은 형식적으로 정회원에게 평의원 선출권을 주었을 뿐 겉만 그럴 듯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회원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평의원 제도를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따라서 임원과 평의원 선출 규정 등 6월 회칙 개악으로는 한글학회가 영구히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 30년 동안 고인 물이었는데 다시 고인 물로 회귀하는 뜨악한 회칙개악에 놀라울 지경이다.

더구나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인 박용규 박사에 따르면 한글학회 평의원 가운데 일평생 한자병기를 주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는 한글전용을 관철시키고자 고투하는 한글학회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습이다. 한글학회장 외솔 최현배 선생은 평생을 '한글만 쓰기'를 목이 쉬도록 외친 분이다. 외솔 선생의 가르침을 저버린 모습이 오늘날 한글학회의 부끄러운 민낯이자 현주소이다.

▲ 외솔 최현배 선생이 1932년 금서집에 쓴 친필 글씨
▲ 외솔 최현배 선생이 1932년 금서집에 쓴 친필 글씨

한글학회는 실질적으로 한글학회의 주인인 정회원의 권리를 회복시켜야 옳다. 30년 동안 박탈당한 회장, 부회장, 이사 등 임원 선출권을 정회원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그 길이 한글학회가 민족학회로 부활하는 올바른 길이자 한글인 우리말글살이가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끝으로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생동감 넘치는 한글학회의 부활을 소망하며 반론을 언제든 환영한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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