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만약 어떤 서열을 정해놓고 각자의 인생이 서열대로 움직인다면 아마도 이 땅의 살아있는 생명 절반은 삶에 그다지 미련을 갖지 않겠지요.

살면서 미운 놈 망하는 꼴도 보고, 훼이 꾸냥(灰姑娘: 신데렐라의 중국어)의 유리 구두가 현실이 되는 걸 볼 수 있기에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었을 때 우공이산이라고 합니다.

우공이산의 고사는 <列子. 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주(冀州)의 남쪽, 황하를 바라보는 언덕에 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나이가 90이 되었지요. 집 뒤에는 타이항산(太行山,태항산)과 왕우산(王屋山,왕옥산)이 붙어서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외부로 나가려면 이 엄청난 산을 넘어야만 나갈 수 있으니 참으로 불편하였습니다.

▲ 우공이산의 고사에 등장하는 태항산. 2011년 당시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우리 일행만 호젓하게 산행을 했다. 깎아지른 절벽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려면 사다리를 오르는 기분이라 여성분들은 두 손도 함께 계단을 짚어야 했던 험준하고 큰 산.         사진제공 : 이영주

이 노인은 평상시 길이 지저분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쓸고, 남의 집 지붕이 새면 새로 갈아주는 게 일상이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어리석다고 우공(愚公)이라 부르다 보니 이름이 되었습니다.

노인이 어느 날 가족을 불러 회의를 합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통하려면 집 뒷산 때문에 얼마나 불편하냐? 우리 가족이 합심하여 저 산을 옮기자. 산을 옮겨 길이 평평해지면 북으로 예주(豫州)까지 그리고 남으로 황하를 건너 통하니 얼마나 좋으냐?" 가족들이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났는지 다들 좋다고 찬성합니다.

하지만 부인이 나서서, "지금 당신 나이가 어떤지 아느냐? 저기 조그만 언덕도 못 옮길 처지에 태행산과 왕옥산을 옮기겠다고? 그럼 돌과 흙은 어디로 다 옮길 거냐?"고 나무랍니다.

그러자 가족들은 상의해서 황하가 끝나는 발해로 옮겨 바다를 메우자고 결정을 합니다. 온 가족이 합심해서 산을 깎아 돌과 흙을 수레에 싣고 여름에 출발하면 겨울에 돌아오고, 겨울에 출발하면 여름에 옵니다.

어느 날 지수(智叟)라는 현자가 찾아와서 말합니다. "사람이 사리 분별이 있어야지 당신 능력으로 저 산의 나무 한 그루 옮길 수 있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우공이 "당신 생각이 너무 고루해 어린애만도 못하구나. 내가 죽으면 아들과 손자가 뒤를 잇고, 그 손자의 아들과 손자가 대대손손 늘어날 거 아니냐? 하지만 저 산은 늘어날 리 없으니 점점 줄어들어 언젠가는 없어지고 만다"고 대답합니다.

산신이 놀라 상제에게 보고하고, 상제는 그 노력과 끈기에 감복하여 밤에 역사를 보내, 산을 둘로 나누어 태항산은 서쪽으로, 왕옥산은 황하 남쪽으로 옮겼다는 내용입니다.

▲ 해발 1300~1500m 넓은 고원에는 마을이 있어 천혜의 요새와 같았다. 다녀본 트레킹코스 중에서도 손꼽힐 수려한 경치. 뒤에 있는 분이 풍경사진과 제 컴퓨터에서 사라진 사진을 전송해주신 선배 이영주.

저는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야 마땅하지만, 살다보면 우둔함도 필요하다고 우공이산을 해석합니다.

저의 대만 경험담을 추가합니다.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운 지 6개월째, 중부도시 타이중(臺中)에 있는 동해(東海)대 철학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접수했습니다.

서류 중에 대만 사범대 어학원 '수학 평가서'를 첨부해야 했습니다. 원래는 당시 주한 대사관으로 보내 공증을 받아서 학교로 제출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가 쉽지 않아 편법을 썼다가 적발이 되어 교무실로 불려갔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자기가 사범대에 수년 근무하는 동안 이런 평가서를 본 적이 없다. 고치려고 해도 더 이상 잘 고칠 수 없다며 학교장 직인을 찍어 원본을 저에게 그냥 넘겨주었습니다. 6개월 배우는 동안 기초과정 두 달 후에 대화반으로 월반, 또 두 달 후에 우언(寓言)반으로 월반을 해서 담임선생이 3분이었고, 담임선생마다 모든 평가항목 최고에, 자필로 중국어는 좀 부족하나 열심히 노력하고 이해력, 수학능력 등등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등 최고의 찬사로 가득했습니다.

대학전공이 달라 가고 싶은 역사학과에서는 연락이 없고, 유일하게 동해대 철학대학원에서 면담통지서가 왔습니다. 여권문제(1985년 당시는 1회용 단수 여권)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대학원에 진학을 못 하면 중국어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문화대 한국어 전공 학생에게 상담 시 해야 할 이야기를 중국어로 번역해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열심히 외웠습니다.

대학원 원장님 앞에서 질문에 술술 대답을 잘했습니다. 모두 예상한 내용이고, 외운 내용이라 막힘이 없었지요. 요지는 사마천 사기 열전을 고등학교 때 읽고 감명을 받아 중국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관심을 가져서 왔다는 내용과 중국철학에서 특히 양명학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대답할 때까지는 일사천리였지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양명학을 생각해낸 것만도 기특하고 감개무량했습니다. 괜히 공자 맹자 들먹였다가 실력 들통 나 산통 깰 일 없고, 일본 개화에 영향을 끼쳐서 배워보겠다고 하면 더 질문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기름기 자르르 흐르고, 풍채가 모택동 저리 가라 하는 대학원장이 기습적인 질문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왕양명이 어느 시대 사람이야?”

짧은 순간, 어? 뭐 이런 질문이??? ‘일본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주고 한국 실학에 영향을 끼쳤으면 청나라 말기쯤 되나?’

조심스럽게, 모기소리보다 조금 크게, “청나라!”

교수, 단칼에, “부스(不是), 밍차오(明朝)! (아니, 명나라)”

그다음부터 갑자기 원장이 하는 말이 거짓말같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점점 열이 오르는 걸 느낍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이 빨개지기 때문에, 학교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정말 난감했지요.

원장이 꽤 길게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멍청하게 그대로 꼼작 안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옆에 나를 체크하겠다고 합석했던 홍콩출신 교수가 연민의 눈길로 저를 보더니 원장에게 자기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설득하더군요. 신통하게 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수업은 영어로도 가능하니 우선 실력을 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사범대 평가서가 그냥 떨어뜨리기에는 미안하게 만들었나봅니다.

옆 테이블로 옮겨서 먼저 책을 폈습니다. 왼쪽은 고전 원문, 오른쪽은 현대어 해설이 실린 책을 펴고 오른쪽을 종이로 가렸습니다(안 가려도 모름).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어서 지금도 얼른 보면 사람 이름인지 문장의 명사나 동사인지 쉽게 구분을 못하는데, 당시의 수준은 턱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고전은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 해서 아는 한자가 하나라도 보이면 머뭇머뭇 뭐라고 하긴 했는데, 하는 내가 무슨 소린지 모르고 하는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그러자, 이해는 하는데 어학실력이 안돼서 말을 못하는지, 정말 몰라서 못하는지 분간을 못합니다. 더욱 난감해진 홍콩출신 사(謝)교수,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작은 두께의 영어책을 주더니 서문을 읽고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제목이 종교철학이란 책이었는데, 법철학은 들어봤어도 종교철학이라는 말은 처음 봤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는 단어가 보이더군요. 서양철학이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갈라지는데 종교철학도 그 때 한 분파로 발전한다는 등의 짧은 내용을 또 천천히, 더듬더듬, 길게 중얼중얼 이야기 했습니다.

그제야 동정심을 발휘한 사교수의 기대를 충족시켜줬는지, 저를 두고 두 분이 한참 이야기를 하더군요.

종이에 몇 가지 항목을 적어서 제게 주었습니다. 입학 허가와,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어학교수를 따로 배정하여 중국어 공부도 하라는 조건 등이 적혀있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차안에서 갑자기 원장이 내게 길게 했던 말이 하나하나 복기가 되더군요. 요지는 ‘아직 수업을 듣기에는 자네 어학이 딸리니 타이베이에서 1년 더 어학을 배우고 내년에 다시 신청하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대학원에 들어갔고, 중국어를 계속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신이 감동을 받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저란 사람은 어리석음이 우공에 가까운 듯합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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