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70] 千載一遇(천재일우)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01.25l수정2019.03.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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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 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천재일우가 중국성어사전에는 千載一時, 千載一逢, 千載一合, 千載一會등과 함께 쓴다고 나옵니다.

‘싣다’를 뜻하는 載가 여기에서는 해, 년의 의미로 千載는 천년, 一遇는 한번 만난다는 뜻입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한자 1,800자와 대만사범대학교 8개월 수학으로 대학원 교재를 보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하루하루는 답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 해가 안 떴으면 하는 바람으로 눈을 감고, 아침이면 시간이 멎기를 빌어보지만 해는 솟고 천근 무거운 맘으로 강의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교정에 알뜰장이 섰습니다. 친구가 김용 소설이 재미있으니까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다른 제목은 여러 권인데 연성결(連城訣)만 한 권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 김용의 무협소설 연성결 표지. 개정판을 낼 때마다 표지를 바꿈. 사진: 위키피디아

두려움과 긴장으로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대하는 중국어 무협소설책. 나오는 한자들이 생경합니다. 오전 내내 눈 아프게 부수 찾고, 획수 찾고 깨알같이 적으니 2~3줄입니다. 사전을 찾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 갑갑합니다. 온종일 매달려도 한쪽을 못 벗어나더군요.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3~4일간 사전을 찾고 또 찾다 보니 몇 쪽 진도가 나가고 어렴풋이 이야기 전개가 드러났습니다. 또 같은 글자가 반복되니 사전 찾는 횟수도 줄고, 처음 보는 한자도 문장 속에서 추측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사전을 들추지 않고 줄거리 파악만 하고 지나쳤습니다. 여러 번 나오는 한자를 찾아보면 추측한 내용과 거의 맞아갔지요.

시골 출신의 순박하고 정직한 젊은이가 음모에 의해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그 안에서 절세의 무공을 연마하고 나오는 내용입니다. 기억이 가물거려 최근에 인터넷으로 다시 읽어봤습니다. 내용도 달라졌고 처음 읽은 책보다 양도 늘어났네요.

무협지는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을 수 없이 빠져들어 갑니다. 최고라고 평가받는 김용의 무협소설을 본 덕분에 밥 먹는 시간도 여러 번 놓쳐가며 읽었습니다. 여러 권 읽다보니 속도도 빨라지고, 중국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습니다. 사실 저의 가장 큰 중국어 스승은 김용입니다.

무협 소설은 중학교 시절 남산시립도서관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방학이나 일요일에는 시립도서관에 가서 자주 책을 읽었습니다. 개가식이 아니어서 소설목록을 찾고 해당 카드를 찾아 신청서에 번호를 기재하여 신청하면 도서관직원이 책을 찾아옵니다. 일반 문학이 시들해질 무렵 무협소설이란 이름이 흥미로워 신청했습니다. 남산시립도서관에 있는 무협소설의 작자는 모두 와룡생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며칠 동안 눈앞에서 장면들이 어른거렸습니다.

그 후 얼마나 열심히 남산시립도서관을 찾았는지 어느 해 겨울 신년 처음 문 여는 날도 눈길을 헤치고 1착으로 도착하여 줄을 섰다가 들어갔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와룡생(1930~1997)은 중국에서 태어나 군인으로 활동하다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옵니다. 1955년 퇴역한 후 신문에 무협소설을 연재하며 크게 히트합니다. 3대 일간지에 모두 연재하였으며 무협소설의 태두가 되었지요. 현재 무협소설의 기초가 되는 9파 1방이 와룡생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다 출판사에 필명을 넘기는 우를 범하면서 와룡생 소설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80년대 와룡생 작품은 그래서 대부분 위작이고, 와룡생은 어렵게 말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김용(1924~2018)은 중국에서 태어났고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하여 활동한 소설가며 언론인입니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15부작을 발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니던 신문사 매출이 좋지 않아 판매 부수를 높이려고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1959년에는 일간지 명보(明報)를 창간하고 자기 신문사에만 연재하였지요.

김용은 중국 역사와 철학 불교에 조예가 깊어 내용이 방대하고 구성도 탄탄합니다. 김학이라고 하는 학파가 만들어지고 박사논문도 많이 나왔지요.

1972년 절필하고 그 이후 새로 출판할 때마다 연재하느라 부실했던 부분을 계속 수정 보완해나갔습니다. 중국에서만 1억 부 이상 팔리고 대만에서도 1000만 부 이상 나갔으며 전 세계에서 번역이 되었지요. 한국에서도 영웅문 시리즈로 번역되어 팔렸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나 협정에 가입하지 않아 불법으로 번역하여 찍어냈으니 판매 부수에 산정도 안 되었고요.

와룡생, 김용 외에도 여러 무협작가들이 활동했습니다.

무협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가 천재일우의 기연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난을 헤쳐 나가다가 죽기 직전에 기연을 만나 무림 고수가 되어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곳에는 국가나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초 무협소설의 태두가 된 와룡생이 어린 나이에 전장을 활보하면서 경험하던 당시의 청나라는 힘이 없어 국법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외세가 무섭게 밀려드는 현실에서 수많은 군벌은 마치 무림 방파가 서로 경쟁하며 모함하고 죽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중국인이 중원의 주인이 되어 지배하는 꿈을 꾸다가 소설로 형상화된 것이 무협소설입니다.

이제 중국어로 무협소설을 읽을 정도의 수준에 오르자 직접 수련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더군요. 20여 년이 지나 심천에서 살 때, 새로 입주하는 큰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 이른 아침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강호 각지에서 몰려온 무림고수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도복을 폼 나게 차려입고 맨손, 칼, 혹은 빨간 부채를 들고 나름 고수들이 여기저기 수련에 열중입니다.

▲ 중국이나 대만의 아침풍경. 광장이나 공원에서 아침마다 매일 볼 수 있음. 사진: 위키피디아

우리가 흔히 중국이나 대만의 공원에서 만나는 무술이 태극권입니다. 태극권은 내공수련을 위주로 합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유극강(柔克强)의 원리입니다. 이와는 달리 소림권은 외공수련을 합니다. 체력단련을 통해 힘을 기르며 무술을 익힙니다.

제가 소림사 방장을 할 나이에 사미승과 더불어 물지게를 지거나 물구나무(되지도 않지만)서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소림권을 익힐 수는 없지요. 그러다 주방장도 못 해보고 열반에 들 것입니다. 그래서 내공수련을 위주로 하는 태극권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2~3일 관찰하다 눈에 띄는 노부부를 발견했습니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동작을 따라 15~6명이 뒤에서 함께 수련하더군요.

천재일우는 아니어도 50년 일우는 될 거 같은 예감을 느끼며 이 노부부를 스승으로 모시고 중국무림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창사(長沙)에서 온 노부부기인의 문하에 입문(조용히 맨 뒷자리에 끼어듦)하였습니다. 태극권은 진씨, 양씨 태극권과 24식, 48식, 56식 등 다양합니다. 또 칼을 가지고 하는 태극검, 무당검이 있고, 부채를 가지고 하는 태극선이 있습니다.

매일 열심히 나갔더니 이 사람 저 사람 나서서 개인지도를 해주더군요. 점점 앞줄로 이동하고, 한 2년 지나서는 제일 앞줄에서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하나하나의 인연들이 모두 날줄과 씨줄로 연결이 되더군요. 그리고 모든 인연과 만남은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는 천년만년보다 더 중요한 일우(만남)였습니다.

지금 만나는 이 순간은 영원히 한번뿐인 천재일우이지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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