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궁금증을 잘 참지 못했으며, 뭐든지 '내가, 내가'를 외쳤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성향이 연구하는 직업과 맞는 것 같다며 과학자가 되라 하셨다. 그래서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

▲ 잘 걷지 못할 땐데 돌복을 입고 '내가, 내가' 하며 걷겠다고 내려달라 요구하는 나

나는 어려서 아주 재미난 아이였던 것 같다. 엄마는 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항상 질문도 많고 따지길 좋아했어. 무엇을 하라고 하면 ‘왜 해야 하는데?’ 라고 조목조목 따지곤 했단다. 수차례 설명에 수긍이 가야 ‘왜’를 멈추곤 했지. 심지어 전철을 탈 때도 엄마는 표를 내고 너는 표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왜 엄마는 내고 나는 안 내는데!!’ 하며 화가 난 듯 불만스럽게 따졌지. 엄마한테만 그런 줄 아니? 모든 사람들한테도 묻고 따져서 사람들이 말로는 너를 못 이긴다고 했었어. ㅎㅎ”

▲ 아빠에게 쫑알쫑알 따지는 어린 나

이렇게 궁금증 많고 따지길 좋아했던 내가 점점 질문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질문’이라는 것에 대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지 않았나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또 지적받는 것, 튀는 것, 올바르지 못한 것을 싫어했던 나는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한마디로 착한 학생으로 지내왔다.

그런데 이번 학기 ‘뇌 면역학과 뇌 질환의 관계’ 수업을 들으며 이 궁금증 본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3시간짜리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있다. 총 13명 학생이 참여하는 소규모 수업이다.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다들 어색해하고 수줍어하며 이름, 연구 분야, 수업 참여이유 등 자기소개를 했다. 교수님께서 수업방식을 설명해주셨다.

수업은 매주 교수님들이 번갈아가며 진행한다. ‘뇌질환(치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우울증 등)과 면역반응의 관계’를 연구하는 교수님들이 1시간동안 본인 연구를 강의하고, 학생들은 그 연구와 관련된 논문을 읽고 2시간동안 토론한다. 토론시간에는 학생 중 한 명이 관련논문을 읽고 연구 배경, 목적, 접근 방법을 간단히 요약하여 발표한다. 그 후엔 진행자가 되어 질문에 답을 하는 토론방식으로 진행한다. 토론에 참여하고 질문을 해야만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이 발표토론점수는 100점 중 55점을 차지한다고 하셨다.

이런 수업방식은 처음이라 얼떨떨하고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뉘앙스로 보아 수업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한국 학생들 표현으로 ‘튀어야’ 더 나쁜 표현으로 '나대야'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여태까지 들었던 수업방식과 너무나 달랐다. 마치 수업 주체가 선생님에서 학생으로 옮겨간 느낌이었다.

첫 수업은 내가 발표하기로 하였다. 연구주제는 ‘생체리듬과 뇌질환의 관계’였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신 교수님이 강의를 시작하셨다. 40대 중반(?) 정도 돼 보이지만, 멋진 청바지에 남자임에도 머리를 길러 뒤로 묶으셨다. 그 모습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것 같아 무언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강의는 먼저 ‘생체리듬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었다. 밤과 낮에 따라 활동하는 것, 밥을 먹는 시간 등을 통틀어 ‘생체리듬’이라고 한다. 이런 생체리듬은 유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왔다. 해가 뜨면 우리 눈은 빛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눈과 연결된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뇌에 있는 특정 유전자(CLOCK GENE)를 활성화시킨다. 활성화된 유전자는 다양한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여 위장, 대장, 간, 신장, 콩팥 그리고 골수 등에 있는 세포를 자극하여 깨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배고픔을 느끼는 것도 다 이런 원리에 있다. 특히 우리 몸에 있는 면역세포 활성은 생체 리듬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논문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생체리듬은 잠을 잘 못자거나, 밤을 새거나, 밤낮이 바뀐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 때 깨진다고 한다. 밤에 일을 하는 종사자들(간호사, 바텐더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이들은 우울증, 다발성 경화증, 치매 등과 같은 뇌질환뿐만 아니라 암, 비만, 당뇨 등에도 더 많이 걸린다고 보고되고 있다. 쥐 실험도 이와 같은 결과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왜 생체리듬이 깨지면 각종 질환에 더 잘 걸릴까?

면역세포들은 생체리듬에 따라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 된다. 생체리듬이 깨졌을 때 면역세포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기능에 이상이 온 면역세포들은 몸에 해로운 물질(Cytokine)을 과도하게 분비한다. 이는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과도한 염증반응이 만성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결국 면역에 의해 조절되는 신체기관들이 영향을 받아 각종 질환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결론은 쉽게 말해 제 시간에 자고 제 시간에 일어나야 건강하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생체리듬과 면역세포의 관계를 볼 때, 예방접종을 아침, 낮 그리고 저녁 중 어느 시간에 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다르기에 이러한 점도 미래에는 고려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연구는 실제로 쥐 실험에서 다양하게 검증되고 있다. 쥐의 수면시간과 활동시간에 과도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투여했을 때, 수면시간에 투여 받은 쥐가 더 과민 반응해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업은 너무나 재밌었다. 교수님은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생각할 기회를 주셨고, 우리가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셨다. 교수님은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시면서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학생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교수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분위기는 정말 ‘핫’하게 후끈 달아올랐다. 나도 질세라 첫 질문을 쭈뼛쭈뼛 어렵게 시도했다. 그렇게 첫 질문이 2개가 되고, 3개가 되고, 나중엔 쉬는 시간에도 질문을 했다. 마치 나의 ‘질문 본능’이 다시 눈 뜬 것 같았다.

이제 내가 수업을 진행할 차례가 되었다. 질문이 ‘주’가 되기에 내가 발표할 논문을 샅샅이 읽고, 논문 배경도 꼼꼼히 조사했다. 먼저 논문 배경, 목적을 설명하는데, 시작하기 무섭게 수줍게 인사하던 학생들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질문이 봇물 터지듯 마구 터져 나왔다. 학부생인가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적절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여 나를 쩔쩔매게 만든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과 내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은 다른 학생이 답하여 채워주기도 했다. 논문에 대한 결과를 토론하는 시간이 왔을 때도 서로 경쟁하듯 손을 들며 본인 생각을 말했다. 2시간동안 뜨거운 질문과 토론이 끝났다. 나는 거의 녹초가 되었지만 뿌듯하면서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찼다.

사람은 개인마다 학업 습득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듣는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고, 어떤 사람은 보는 것, 읽는 것, 체험하는 것 등 개인마다 효율성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던 시기는, 듣고 읽는 방법으로 모든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 수업이 굉장히 지겨웠고, 수업시간 15분 후부터는 다른 생각이 들거나 심지어 졸기를 넘어 정신을 놓고 자기까지 했다. 한번은 졸다가 침까지 줄줄 흘리며 깊이 자서 선생님한테 혼났을 정도로 ㅎㅎㅎ... 그렇게 50분 수업은 즐겁기보다 곤혹스러웠다. 이런 내가 3시간짜리 이 수업에는 항상 정신이 바짝 든다. 다음 수업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다려지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발표하는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리 논문을 꼼꼼히 읽고, 질문할 것들을 노트에 적어간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다.

▲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사진출처 : 다음 영화)

서로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궁금한 것을 참지 않고 질문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과 질문을 존중한다는 것 때문에 이런 수업이 가능한 것 같다. 이 수업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자유로운 문학수업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시간이다.

요사이 한국도 혁신 학교들이 등장하면서 교육방법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자라나는 모든 학생들이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런 ‘살아있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 같은 ‘왜~왜~ 어린이’가 주눅 들지 않고 마음껏 질문하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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