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서 처음 만난 풀 같지 않은 꽃 수정란풀, 흡사 버섯 같아 보인다.

‘수정란풀’을 처음 만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드디어 나도수정초 말고 수정란풀을 만났다. 지난해 가을 제주도 서귀포 효돈천 근처 계곡 숲속에서 처음 만났다. 수정처럼 맑고 꽃이 난초처럼 생긴 하얀 풀, 그러나 흡사 버섯처럼 생겨 도무지 풀 같지 않은 수정란풀을 만났다. 식물도감 기재문을 통해서, 남이 올린 사진을 보고서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수정란풀, 정작 자생지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줄기도 굵직하고 꽃도 큼직한 것이 가냘프고 야리야리한 나도수정초와는 한눈에 보아도 확연히 달라 보인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이 실감난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식물을 처음 대면하는 이 짜릿한 즐거움, 꽃쟁이로서 누리는 일상의 ‘소확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처음 만난 ‘나도수정초’
2008년 (사)한국교사식물연구회에서 실시한 경북 봉화 구룡산 식물상 조사 때였다. 신록이 짙어가는 6월 초여름 갈기조팝나무 하얀 꽃이 활처럼 드리워져 피는 임도를 지나 연초록 박새 꽃이 무리지어 피어나는 골짜기에 들어섰다. 등산로도 없는 북쪽 산사면 중턱쯤 올랐을까, 누군가 버섯처럼 생긴 하얀 무리를 발견하고, 이게 바로 ‘수정난풀’이라며 밟히지 않게 조심하란다.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 산비탈 축축하고 두꺼운 부식층에 투명할 정도로 하얗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처음 보는 것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수정난풀’이라는데 뭐 이 따위 풀이 다 있을까? 풀이라면 적어도 엽록소가 들어 있어야 할 텐데 푸른 기라고는 전혀 없이 온통 하얗다. 차라리 버섯 같다고나 할까, 도대체 풀 같지 않다. 아무튼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희귀종이라고 하여 삼각대까지 거치하고 정성들여 사진을 찍어 왔다.

▲ 경상북도 봉화 구룡산에서 처음 만난 나도수정초, 가냘프고 야리야리해 마치 버섯 같아 보인다.

‘수정난풀’은 ‘나도수정초’의 잘못된 국명
나는 연구회 식물공부 선배들이 가르쳐 준 대로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1980)』에서 ‘수정난풀’을 찾아보았다. 학명은 “Monotropastrum globosum Hara”이고, 열매가 난상 구형의 장과(漿果)가 달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우철의 『원색한국기준식물도감(1996)』에서는 ‘수정란풀’의 학명은 “Monotropa uniflora L.”이고, 삭과(蒴果)의 열매가 달린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수정란풀’ 기재문 말미에 덧붙여 ‘수정란풀’과는 달리 액과(液果) 열매가 달리는 것을 ‘나도수정초’라 하고, 학명은 “Monotropastrum globosum Hara”라 하였다. 액과란 토마토처럼 과육과 액즙이 많고 씨가 많이 들어 있는 열매의 한 종류인 장과와 같은 의미이다. 대한식물도감의 ‘수정난풀’은 [(水晶+蘭)+풀]의 구조이므로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정란풀’로 적어야 어법에 맞지 ‘수정난풀’로 쓰면 어법에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삭과(蒴果) 열매가 아닌 장과(漿果) 열매가 달린다고 하였으니 '수정란풀'이 아니다. 학명으로 보아도 ‘나도수정초’의 잘못된 국명이다. 내가 구룡산에서 처음 만난 것은 ‘수정란풀’이 아니라 기실 ‘나도수정초’였던 것이다.

▲ 나도수정초(좌)는 장과가 달리고, 수정란풀(우)은 삭과가 달리는 점으로 서로 다른 종으로 구분된다.

국명 ‘수정란풀’의 유래
현재의 ‘수정란풀’이라는 국명은 정태현, 도봉섭, 심학진의 『한국식물명고(1949)』에서 비롯한다. 그 후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1996)』, 이영노의 『한국식물도감(1996)』 등에도 등재되어 있다. 식물체 전체가 흰색을 띠며 꽃이 난초와 흡사하다고 하여 ‘水晶蘭[shui jing lan]’이라고 한 중국명에 우리말 ‘풀’을 합성하여 명명한 것이다. ‘수정란풀’을 달리 수정처럼 희고 투명한 풀처럼 생겼다 하여 ‘수정초(水晶草)’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ギンリョウソウモドキ(銀竜草擬)’라 한다. 영문명은 유령처럼 보인다고 해서 ‘ghost plant’, 인디언 또는 유령의 담배 파이프처럼 생겼다고 해서 ‘Indian pipe, ghost pipe’, 송장처럼 보인다 하여 ‘corpse plant’라고 하는 등 다양하게 불린다.

▲ 우거진 숲속의 부식층에 나는 수정란풀은 마치 숲 속의 요정이랄까, 외계인처럼 보인다.

학명 ‘수정란풀’의 유래
수정란풀의 학명은 “Monotropa uniflora L.”이다. 속명 ‘Monotropa’는 ‘단일, 한쪽’의 뜻인 그리스어 ‘Monos’와 ‘굽다, 향하다’의 뜻인 ‘tropos’의 합성어인데 ‘꽃이 한쪽으로 굽어 핀다.’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종소명 ‘uniflora’는 ‘단일한 꽃의’라는 뜻이다. 식물분류학의 시조인 스웨덴의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가 1753년 처음으로 이 식물의 꽃이 줄기 끝에 한 개씩 달려 한쪽으로 굽어 피는 특성에 착안하여 명명한 것이다.

‘수정란풀’의 분포와 분류
수정란풀은 세계적으로 러시아, 아시아, 북미, 남미의 북부 등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높은 산 숲속 나무 그늘 부식질이 많고 다소 축축한 곳에서 드물게 자란다. 국립수목원에서는 수정란풀을 지금 당장 위급하지는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생지에서 매우 심각한 멸종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위기 식물로 보아 약관심종(Near Threatened)으로 분류하고 있다. 수정란풀의 식물분류학상 위상은 진행 중에 있다. 엥글러 분류체계(Engler system)에서는 진달래목(Ericales) 노루발과(Pyrolaceae) 수정란풀속(Monotropa)으로 분류하고, 크론키스트 분류체계(Cronquist system)에서는 수정란풀과(Monotropaceae) 수정란풀속(Monotropa)으로 분류한다. 최근의 APG III 계통분류체계에서는 진달래목(Ericales) 진달래과(Ericaceae) 수정란풀아과(Monotropoideae) 수정란풀속(Monotropa)으로 분류한다. 그만큼 수정란풀의 정체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나라에는 수정란풀속에 수정란풀 외에 구상난풀과 너도수정초 등 3종이 분포한다. 수정란풀과 흡사하여 전문가도 식별이 쉽지 않은 나도수정초가 있는데 같은 진달래과(Ericaceae)이지만 나도수정초속(Monotropastrum)으로 분류한다.

‘수정란풀’의 형태적 특성
수정란풀은 보통의 식물과는 달리 엽록소가 전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과 썩은 식물이 분해되어 생긴 유기물을 양분으로 섭취하여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로 부생식물(腐生植物)이다. 줄기는 여러 대가 덩어리 같이 생긴 뿌리에서 모여 나와 곧추서, 높이 8~15cm이고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뿌리 이외에는 순백색이다. 퇴화된 잎은 어긋나며, 긴 타원형의 얇고 반투명한 비늘처럼 생겼다. 잎 크기는 길이 1~2cm, 폭 5~8mm 정도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끝은 둔하거나 둥글다. 꽃은 초여름부터 이른 가을까지 대개 비 온 며칠 후에 피는데 1~2cm 정도의 종 모양으로 줄기 끝에 1개씩 밑을 향해 달리며 은백색이다. 꽃받침조각은 1∼3개인데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3∼5장, 긴 타원형이며 안쪽에 털이 있다. 수술은 10~12개, 꽃잎보다 짧고, 암술은 1개, 암술머리는 연한 노란색을 띤다. 열매는 삭과, 타원형이며 캡슐과 같은 구조이고 씨방은 5칸이다. 씨앗이 성숙해지면서 곧추서고, 줄기와 캡슐은 마르면서 어두운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변한다.

▲ 수정란풀의 꽃, 은백색의 종 모양으로 줄기 끝에 1개씩 밑을 향해 달린다.

‘수정란풀’은 ‘나도수정초’와 어떻게 다른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정초는 수정란풀을 지역에 따다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이영노 『한국식물도감(1996)』에서는 나도수정초 대신 ‘나도수정란풀’이란 국명을 쓰고 있다. 둘 다 빛이 적고 습윤한 부식층에 자라는 부생식물로 엽록소가 없어서 맑고 투명한 흰색이다. 잎은 퇴화하여 비늘처럼 얇고, 줄기 끝에 한 개의 꽃이 아래쪽을 향해 달리는 점은 비슷하다. 만약 한 자리에 나도수정초와 수정란풀이 함께 있다면 전문가도 얼핏 보고서는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흡사하다. 그러나 두 종은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수정란풀이 나도수정초보다 좀 더 늦게 꽃이 핀다. 나도수정초는 봄~여름철에 피는데 반해 수정란풀은 늦여름~가을철에 핀다. 또한 나도수정초는 전체적으로 가냘프며 꽃잎 끝부분이 뒤로 많이 젖혀지고, 암술머리가 둥글고 푸른빛을 띠는데 수정란풀은 5각형이고 연한 노란색을 띤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열매에 있다. 나도수정초는 토마토처럼 과육과 액즙이 많고 씨가 많이 들어 있는 장과(漿果)인 반면 수정란풀은 무궁화 열매처럼 다 익으면 씨를 싸고 있는 껍질이 말라 저절로 벌어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삭과(蒴果)이다. 같은 진달래과에 해당하면서도 서로 다른 속으로 분류한 까닭도 바로 이 열매의 차이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 수정란풀(좌)의 암술머리는 연노란색을 띠는 5각형 모양이고, 나도수정초(우)의 암술머리는 푸른빛을 띠는 둥근 모양이다.

수정란풀속 ‘구상난풀’
우리나라 진달래과(Ericaceae) 수정란풀속(Monotropa)의 부생식물에는 수정란풀 외에 구상난풀과 너도수정초가 있다. 국명 ‘구상난풀’은 제주도 구상나무 숲속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창복 『대한식물도감(1980)』에서 처음 명명되었다. 학명 ‘Monotropa hypopithys L.’에서 종소명 ‘hypopithys ’은 ‘침엽수 아래에서 자라는’이란 의미로 자생지를 밝힌 것이다. 구상난풀은 높이 20cm 정도로 수정란풀보다 약 5cm 정도 크게 자란다. 줄기는 원기둥 모양의 다육질인데 전체적으로 황백색이 돌며, 잔털이 있다. 꽃은 황백색, 총상화서로 여러 개가 밑을 향해 달린다. 반면 수정란풀은 높이 8~15cm, 전체가 흰색이며 털이 없고, 꽃줄기는 곧게 서며, 꽃은 은백색, 줄기 끝에 1개씩 아래를 향해 붙는다. 전체적인 색깔과 꽃차례가 달라서 초보자도 둘을 놓고 보면 수정란풀과 금세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 구상난풀은 털이 많은 여러 개의 황백색 꽃이 총상화서에 달린다.

수정란풀속 ‘너도수정초’
같은 수정란풀속(Monotropa)의 ‘너도수정초’는 안학수, 이춘녕, 박수현의 『한국농식물자원명감(1982)』에 의한 것이다. 수정란풀의 다른 국명인 ‘수정초’에 ‘너도’를 붙여 ‘너도수정초’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너도수정초’의 학명 ‘Monotropa hypopithys var. glaberrima Hara’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구상난풀’의 변종이다. 변종명 ‘glaberrima’는 ‘전체적으로 털이 없는’이란 뜻으로 본종인 ‘구상난풀’에 비해 전체적으로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꽃과 열매 등에 잔털이 없는 점을 제외하고는 구상난풀과 흡사하다. 실제 너도수정초는 수정란풀과는 겉모습도 많이 다른데 왜 '너도수정초'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너도수정초’라는 국명보다는 ‘너도구상난풀’이라고 명명했어야 헷갈리지도 않고 더 안성맞춤일 성싶다. 최근 분류학계에서는 너도수정초를 변종으로 따로 분류하지 않고 본종인 구상난풀에 통합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나도수정초속 '나도수정초'
우리나라 식물 이름에 ‘나도’ 혹은 ‘너도’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개미자리, 너도개미자리, 나도양지꽃, 너도양지꽃…… 등등. 식물 공부하는 초보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골칫거리 식물 종들이다. 대개 ‘나도’ 혹은 ‘너도’가 들어 있는 식물은 본디의 식물보다 나중에 출생 신고된 것이다. ‘나도’ 혹은 ‘너도’가 없는 본래의 식물과 비교해 보면 얼핏 서로 비슷하긴 한데 똑같지는 않다는 뜻을 내포한다. ‘나도수정초’라는 국명은 박만규의 『한국쌍자엽식물지(초본편)(1974)』에 의한 것인데 물론 ‘수정초’가 태어난 이후에 출생 신고한 식물이다. 얼핏 보면 ‘수정초’와 비슷하긴 한데 어딘지 다른 점이 있어서 ‘나도’란 말을 앞에 붙여 ‘나도수정초’라고 명명한 것이다. ‘나도수정초’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수정란풀속이 아니라 나도수정초속(Monotropastrum)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나도수정초속 부생식물로 확인된 것은 아직까지 ‘나도수정초’가 유일하다. 학명은 ‘Monotropastrum humile (D.Don) Hara’이다. 속명 ‘Monotropastrum’은 수정란풀속을 뜻하는 ‘Monotropa’와 ‘유사하다’라는 뜻의 ‘astrum’의 합성어로 수정란풀속과 유사하다는 뜻이다. 종소명 ‘humile’는 ‘낮은’이란 뜻이다.

▲ 수정란풀보다 일찍 피는 나도수정초는 암술머리가 둥글고 푸른빛이 돌며 장과가 달린다.

‘나도수정초’와 두 번째 만남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009년 7월 초 아내와 함께 경기도 양평 용문산행을 할 때였다. 설매재에서 출발하여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 미역줄나무, 노루발풀, 털중나리, 노루오줌 등이 만발한다. 군부대 가까운 헬기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뜻밖에 ‘나도수정초’를 또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올라갈 때는 못 보고 지나쳤는데, “날 봐요, 그냥 가면 섭해요!”라고 속삭이듯 나도수정초가 얼굴을 내민다. 좀 늦은 시기라서 벌써 꽃은 이울고 결실기에 접어든 열매 장과(漿果)가 뚜렷하다. 비늘같은 하얀 포엽에 둘러싸인 동그란 열매에 암술머리가 비쭉 나와 있는 모습은 마치 외계인 같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숲속의 작은 요정 같다고나 할까? 결실이 잘 돼 후손을 많이 남겨 내년엔 더 많은 개체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며 카메라에 정성 들여 담아 왔다.

▲ 경기도 용문산에서 7월초 결실기에 접어든 나도수정초를 또 만나다.

꽃이 핀 ‘구상난풀’도 만나보고 싶다
봄이 오고 있다. 변산바람꽃도 피고, 노루귀, 복수초도 피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달뜬다. 4월엔 울릉도, 5월엔 제주도 행이다. 올해는 구상난풀을 만나보고 싶다. 마른 줄기에 삭과만 달린 구상난풀은 보았지만 연노란 예쁜 꽃이 핀 구상난풀을 아직까지 만나 보지 못했다. 운이 좋으면 너도수정초도 만나 볼 수 있겠지. 꿈은 이루어진다, 간절히 원하면.

▲ 이른 봄 경북 봉화 구룡산에서 마른 가지에 삭과가 여러 개 달린 구상난풀을 만나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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