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황사 무릅쓰고

코로나19로 작년 한 해를 허송했습니다. 무서워, 무서워하다가는 올해도 그리될까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심각한 황사 무릅쓰고 꽃동무들과 천마산 꽃산행에 나섰습니다. 예년보다 조금 이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온갖 봄꽃들이 앞 다퉈 핍니다. 봄꽃들의 대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심 속 벚꽃이 예년보다 빨리 피었다는데 산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변화를 실감합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북사면 물기가 많은 계곡 주변에 가야 많습니다. 해서 팔현리 계곡에서 출발하여 돌핀샘까지 갔다 오는 코스로 잡았습니다.

노거수 살구나무

입구에 들어서자 활짝 핀 노거수 살구꽃이 우릴 반겨 맞아 줍니다. 조경수로 벚나무보다는 살구나무를 심으면 여러 모로 좋을 듯싶습니다. 살구나무는 이른 봄 살구꽃도 볼 수 있습니다. 여름엔 살구도 따 먹을 수 있습니다. 열매가 떨어져 길바닥을 지저분하게 하는 청소 걱정도 없습니다. 고목으로 쉽게 늙지도 않습니다. 요즈음 어딜 가나 벚꽃이 지천으로 핍니다. 아파트, 공원, 도로가 할 것 없이 지천으로 핍니다. 꽃도 조금은 사쿠라 냄새가 나서 저는 좀 식상하기도 합니다. 잎이 나기 전에 왕창 피었다가 지니 허망하기도 하고요. 여름엔 열매가 길바닥에 까맣게 떨어져 청소하는 분들에겐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살구나무에 비해 노화가 빨라 환갑이 지나면 거의 고목이 됩니다.

천마산 골짜기로 가는 입구에 노거수 살구꽃이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아 준다.
천마산 골짜기로 가는 입구에 노거수 살구꽃이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아 준다.

남산제비꽃, 잔털제비꽃, 줄민둥뫼제비꽃, 노랑제비꽃

길모퉁이 양지쪽에서 남산제비꽃과 첫대면합니다. 올망졸망 핀 하얀 꽃이 참 소담하지요? 남산제비꽃이란 국명은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 비롯하는데 어디에 있는 남산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산은 하나 둘이 아니니까요. 제비꽃과의 제비꽃속은 세계적으로 10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약 70여 종이 자생합니다. 그렇지만 남산제비꽃은 여느 제비꽃과 달리 잎이 많이 갈라져 있어서 쉽게 구별됩니다. 천마산에도 여러 종류의 제비꽃이 자생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제비꽃만도 금강제비꽃, 태백제비꽃, 고깔제비꽃 등 20여 종도 넘습니다. 오늘은 남산제비꽃 외에 다른 곳에서 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잔털제비꽃, 줄민둥뫼제비꽃, 노랑제비꽃 등을 만나 보았습니다.

남산제비꽃은 제비꽃에 비해 잎이 많이 갈라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남산제비꽃은 제비꽃에 비해 잎이 많이 갈라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잔털제비꽃은 식물체에 털이 많으며 꽃이 흰색이나 털제비꽃은 털은 많지만 꽃이 자주색이므로 구별된다.
잔털제비꽃은 식물체에 털이 많으며 꽃이 흰색이나 털제비꽃은 털은 많지만 꽃이 자주색이므로 구별된다.
줄민둥뫼제비꽃은 잎 위에 흰 줄 같은 무늬가 있어 무늬가 없는 민둥뫼제비꽃과 구별된다.
줄민둥뫼제비꽃은 잎 위에 흰 줄 같은 무늬가 있어 무늬가 없는 민둥뫼제비꽃과 구별된다.
우리나라에는 노란색 꽃이 피는 제비꽃에 노랑제비꽃과 장백제비꽃 두 가지가 있다. 노랑제비꽃은 옆꽃잎에 털이 있으나 장백제비는 털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노란색 꽃이 피는 제비꽃에 노랑제비꽃과 장백제비꽃 두 가지가 있다. 노랑제비꽃은 옆꽃잎에 털이 있으나 장백제비는 털이 없다.

점현호색, 각시현호색, 현호색

골짜기 계류 근처에 들어서자 점현호색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잎에 흰 반점이 많이 있어서 쉽게 식별할 수 있지요. 여러 마리의 새가 떼 지어 날아가는 둣한 푸른 빛깔의 꽃이 귀엽습니다. 점현호색 외에 각시처럼 작고 앙증맞은 각시현호색이 너덜겅에 널려 있습니다. 광각렌즈로 잡아 보면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디서나 흔하게 만나보는 현호색도 피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현호색 종류가 35종 정도가 분포합니다. 키가 큰 나무들 잎이 피어나기 전에 햇볕을 받아 부지런히 양분을 만들어 덩이줄기에 갈무리하고, 꽃을 피우고, 수분해서 결실해야 후손을 늘려 갈 수 있습니다. 덩이줄기는 혈액 순환을 돕고, 통증을 진정시키는 데 한약재로 쓴다고 합니다.

점현호색, 꽃이 크고 잎 표면에 흰 반점이 많이 있어 식별이 쉽다.
점현호색, 꽃이 크고 잎 표면에 흰 반점이 많이 있어 식별이 쉽다.
현호색,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데 점현호색에 비해 잎 표면에 흰 반점이 없으며 잎과 꽃이 작다.
현호색,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데 점현호색에 비해 잎 표면에 흰 반점이 없으며 잎과 꽃이 작다.
각시현호색, 다른 현호색 종류에 비해 꽃이 작고 귀여우며 각시처럼 예쁘다.
각시현호색, 다른 현호색 종류에 비해 꽃이 작고 귀여우며 각시처럼 예쁘다.

산괴불주머니

같은 현호색과의 산괴불주머니도 만났습니다. 어린애들이 차고 다니는 세모 모양의 작은 노리개를 괴불주머니라고 합니다. 산에 나는 노란색 꽃 모양이 마치 이런 괴불주머니와 비슷하다고 여겨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잎이 가늘게 갈라지고 꽃 색이 노란 것이 현호색과는 달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호색은 둥근 덩이줄기가 달려 있는 여러해살이풀인 데 비해 산괴불주머니는 잔뿌리가 달려 사방으로 뻗어 있는 두해살이풀입니다. 지난 3월 초 변산바람꽃을 보려고 수리산에 갔을 땐 아직 꽃이 피지 않았었는데 이제 막 피었군요. 어느 해엔가는 아주머니들이 꽃이 피기 전 산괴불주머니를 캐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 하려 캐느냐고 물었더니 나물로 먹으려 캔다 합니다. 삶아서 해로운 독을 우려내고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먹어 본 적이 없어 맛은 잘 모르겠습니다.

꽃 모양이 어린애들이 차고 다니는 노리개 괴불주머니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이 산괴불주머니가 되었다.
꽃 모양이 어린애들이 차고 다니는 노리개 괴불주머니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이 산괴불주머니가 되었다.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너도바람꽃

바람꽃 중의 백미, 꿩의바람꽃도 널려 있습니다. 올라갈 때는 햇볕이 아직 부족하여 꽃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내려올 때보니 모두가 얼굴이 활짝 펴져 떼지어 있습니다. 하얀 꽃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인 같습니다. 계류 가까이 습기가 많은 곳엔 만주바람꽃도 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향이 북쪽 만주 지방입니다. 빙하기 때 한반도 남쪽까지 내려왔다가 잔존한 귀한 종입니다. 기재문에는 보리알처럼 생긴 뿌리줄기가 달려 있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확인을 못했습니다. 진짜 그럴까 궁금하여 한 포기를 조심스럽게 뽑아 보았습니다. 정말 보리알처럼 생긴 뿌리줄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물론 관찰하고 좋은 자리 골라 잘 심어 주었으니 염려 없습니다. 꽃은 벌써 시들고 결실기에 접어든 너도바람꽃도 보입니다. 너도바람꽃은 2월 하순에서 3월 초에 서둘러 피니, 천마산 바람꽃 중 제일 부지런한 아이이지요.

올라갈 때 본 꿩의바람꽃,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따뜻한 햇빛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올라갈 때 본 꿩의바람꽃,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따뜻한 햇빛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내려올 때 만난 꿩의바람꽃, 따스한 햇살에 고개를 처들고 환한 얼굴로 웃으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내려올 때 만난 꿩의바람꽃, 따스한 햇살에 고개를 처들고 환한 얼굴로 웃으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만주바람꽃, 고향이 북쪽 만주인 것을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만주바람꽃, 고향이 북쪽 만주인 것을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너도바람꽃, 천마산 바람꽃 종류 중에서도 제일 먼저 피어 벌써 꽃은 시들고 결실기에 접어들었다.
너도바람꽃, 천마산 바람꽃 종류 중에서도 제일 먼저 피어 벌써 꽃은 시들고 결실기에 접어들었다.

얼레지

얼레지는 아직 속살을 훤히 드러내지 않고 오므리고 있습니다. 햇빛 조명을 받아야 벌어지는데 아직은 좀 이른 시각인가 봅니다. 백합과에 속하는 얼레지는 커다란 두 개의 잎 위에 자주색 얼룩 반점이 있어서 얼레지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내려올 때 보니 햇빛을 받아 화피가 발랑 뒤집혀 속살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자세히 보면 W자 자주색 무늬가 있습니다. 매개 곤충을 암술과 수술이 있는 꽃 속으로 정확히 유도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입니다. 열매가 다 성숙하면 3조각으로 벌어져 씨가 나옵니다. 씨앗 겉에는 얼리이오좀이라는 달콤한 물질이 감싸고 있습니다. 개미의 좋은 먹이가 되어 개미에 의해 날라 옮겨집니다. 얼레지와 개미는 이렇게 더불어 공생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하얀색 꽃이 피는 흰얼레지도 나타납니다.

올라가면서 본 얼레지는 햇빛이 부족하여 아직 화피가 열려 있지 않다.
올라가면서 본 얼레지는 햇빛이 부족하여 아직 화피가 열려 있지 않다.
얼레지, 내려올 때 보니 햇빛을 받아 화피가 발랑 뒤집혀 수분을 위한 매개 곤충을 불러들이고 있다.
얼레지, 내려올 때 보니 햇빛을 받아 화피가 발랑 뒤집혀 수분을 위한 매개 곤충을 불러들이고 있다.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금괭이눈

이맘때 골짜기 어디메쯤 가면 어떤 꽃이 피어 있으리라 훤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상한 곳에 산괭이눈이 피어 있습니다. 예전엔 군락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띄엄띄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갈 정도입니다. 반면 바로 옆에는 연복초가 기세등등 세력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복수초와 연달아 나오기에 연복초란 이름이 지어졌다는데 주위에 복수초는 보이지 않습니다. 긴 꽃대 끝에 달린 5개의 작은 꽃이 별 볼품없기에 쉽게 발견되지 않았을 터, 연복초과에 속합니다. 천마산에는 범의귀과에 속하는 산괭이눈 외에 애기괭이눈, 금괭이눈, 털괭이눈 등이 함께 살아갑니다. 애기괭이눈은 애기처럼 작고, 금괭이눈은 포엽이 금빛으로 빛나 처음 봐도 금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좀 떨어진 곳에서 애기괭이눈과 금괭이눈도 대면했습니다.

산괭이눈, 뿌리잎은 모양은 둥근 심장 모양이며 줄기잎은 어긋나는데 잎자루가 긴 것이 특징이다.
산괭이눈, 뿌리잎은 모양은 둥근 심장 모양이며 줄기잎은 어긋나는데 잎자루가 긴 것이 특징이다.
금괭이눈, 꽃을 감싸는 잎이 금빛으로 빛나는 점이 특징이다.
금괭이눈, 꽃을 감싸는 잎이 금빛으로 빛나는 점이 특징이다.
애기괭이눈, 꽃과 잎이 애기처럼 작고 귀엽다. 그러나 수분 후엔 기는 줄기가 생겨 잎이 커지고 무성하게 자란다.
애기괭이눈, 꽃과 잎이 애기처럼 작고 귀엽다. 그러나 수분 후엔 기는 줄기가 생겨 잎이 커지고 무성하게 자란다.

앉은부채

이른 봄 깊은 산 속에 가면 배추 같이 넓은 잎을 달고 있는 풀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물로 먹을 수 없는 독초, 천남성과의 앉은부채입니다. 꽃까지 피어 있는 개체는 많지 않은데 운 좋게 꽃이 핀 앉은부채가 보입니다. 불염포, 곧 불꽃처럼 생긴 포가 꽃을 감싸고 있습니다. 마치 앉아 있는 부처님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앉은부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천마의집 근처에는 희귀종 노랑앉은부채가 있습니다. 잎과 포엽, 화서가 온통 노란색입니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하도 캐 가는 바람에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보다 못해 당국에서는 얼마 전 펜스를 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천남성과 앉은부채, 배추 같은 2장의 큰 잎 옆에 불꽃 모양의 포엽이 꽃차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앉아 있는 부처님 같아 보인다.
천남성과 앉은부채, 배추 같은 2장의 큰 잎 옆에 불꽃 모양의 포엽이 꽃차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앉아 있는 부처님 같아 보인다.

큰괭이밥

봄꽃들은 키가 작아서 대충 보고 지나가면 놓치기 십상입니다. 괭이밥과의 큰괭이밥도 그런 종류입니다. 이름이 큰괭이밥이지 키가 고작 10cm 정도입니다. 동네 길가에서 흔히 보는 괭이밥에 비해 키가 커서가 아니라 3장 달린 작은잎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름이 큰괭이밥이 된 것입니다. 대개는 잎보다 먼저 꽃대가 올라와 그 끝에 꽃이 피어 큰 잎을 보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부끄럼을 많이 타는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뒤꼭지만 보이기 때문에 제 얼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처들고 살펴보면 5개의 하얀색 꽃잎에는 여러 개의 자주색 줄무늬가 나 있습니다. 같은 괭이밥속(Oxalis)에 애기괭이밥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잎도 키도 더 작습니다.

큰괭이밥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흔하게 보는 노란색 괭이밥과는 달리 잎이 크고 꽃이 흰색이다.
큰괭이밥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흔하게 보는 노란색 괭이밥과는 달리 잎이 크고 꽃이 흰색이다.

산자고

간식을 먹기 위해 계류 위쪽으로 오르다가 뜻밖에 산자고를 만났습니다. 따뜻한 봄볕에 하얀 얼굴을 활짝 드러내고 반겨 줍니다. 천마산에서는 꽃이 핀 산자고를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천마의 집 삼거리에서 팔현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부실한 산자고를 몇 개체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운 좋게 우아하게 핀 산자고를 만났습니다. 그것도 화분 매개자 박각시가 산자고 꿀에 훔뻑 빠져 탐닉하고 있는 것을. 원예종으로 육종한 튤립도 산자고와 같은 속에 해당합니다. 산자고는 키가 작고 꽃이 예뻐 화단에 지피식물로 심어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산자고(山慈姑)라는 아리송한 한자명보다는 까치무릇이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화분 매개자 박각시가 산자고 꿀에 훔뻑 빠져 탐닉하고 있다.
화분 매개자 박각시가 산자고 꿀에 훔뻑 빠져 탐닉하고 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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