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예술과 문화 역사의 도시 비엔나는 중세 유럽의 중심도시였다

▲ 남북 쌍둥이 탑으로 유명한 슈테판 성당의 위용, 건물 지붕의 무늬, 130m가 넘는 첨탑, 몇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고딕에서부터 르네상스 양식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 비엔나의 랜드마크 격이다.

2014년 동유럽 연수팀 '베캄원정대'를 따라 동유럽 여행에 나섰던 후기를 내가 들락거리는 다음 카페에 올렸던 것을 가져와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수정, 보완하면서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지 5년 가까이 되면서 더욱 가물거리기 전에 공유하고자 함이다.

▲ 비엔나에 입성하여 맞는 저녁식사, 보는 바와 같이 소시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음식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런 음식들을 많이 먹기 때문에 우리 연수단 사람들은 큰 거부감 없이 잘들 먹는다.
▲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 장소에 아코디언과 실로폰을 든 악사들이 찾아와 '고향의 봄', '과수원 길'등의 곡을 연주하면서 여행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몇 푼의 팁으로 답하기에는 뭔가 허허로운 데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베캄원정대는 오스트리아의 볼프강을 지나 2014년 8월 8일 저녁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빈)에 입성하게 되었다. 역시 이 도시는 음악의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우리가 들어간 식당에는 거리의 악사들처럼 우리가 식사를 하는 데까지 찾아와서 아코디언 등을 연주하며 팁을 주기를 원했다. 이곳 비엔나가 워낙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동요 '과수원길' '아리랑' 등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들을 연주해 주었다. 그래서 갖고 있는 돈 약간을 드렸지만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께서는 많이 주지 말라는 눈치를 주었다. 아마 많이 주게 되면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연주하고 나가주길 청하여 우리 일행은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모처럼 함께 하는 저녁 식사에는 소시지 등을 재료로 하는 한국에서 많이 먹던 음식 종류들이 올라왔다.

▲ google의 '비엔나' 지도

'미술' 하면 '파리'를 연상하게 되고, '음악' 하게 되면 비엔나(빈)가 연상될 정도로 비엔나는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등 예술의 도시이다.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요한 시트라우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태어나서 활동했고, 클림트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엔나는 신성로마제국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점도시로 중세 중부 유럽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세계 제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도시가 많이 파괴되고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로 영토로 축소가 되었지만 현재도 높은 국민소득과 예술의 중심도시로서의 명성은 여전하다.

▲ 비엔나 시내에 있는 궁전으로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궁
▲ 비엔나 시내 관광 중 만난 모차르트 상

비엔나(빈)는 원시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게르만족이 지배할 때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독일 황제군이 900년대에 비엔나를 정복하고, 그 후 1273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고,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자리를 잡는다. 십자군 전쟁 등의 통로로서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전성기 때는 인구가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받아 물리쳤으나, 나폴레옹에게는 두 번이나 침략 당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나 소련군을 위시한 연합군의 공방전으로 유명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5년까지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점령 아래 있었다고 한다.

▲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 '쉔부른 궁전'의 모습
▲ 쉔부른 궁전 앞의 넓은 마당에는 잘 꾸며진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건너 언덕위로 개선문이 보인다.

도착 다음날, 우리 연수단은 비엔나 시내 탐방에 나섰는데, 첫 번째로 간 곳은 쉔부른 궁전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지었다고 한다. 방이 무려 1,400개라고 하는데, 그 많은 방이 왜 만들어졌을까 궁금했다. 정부 청사도 아니고, 정궁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아마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궁전의 주인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왕비라고 한다. 그는 16명의 자녀를 두고 합스부르크왕가와 정략결혼 등을 통하여 합스부르크의 권력을 장악하고 합스부르크 왕가 역사상 가장 넓은 식민지를 두었다고 한다. 이 궁전은 그의 딸 마리아 앙트와네크가 15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 쉔부른 궁 앞 언덕위에는 프로이센과의 두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개선문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바쁜 여행 일정 때문에 쉔브론 궁을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왕궁에 들어가면 여행객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방은 39개라고 한다. 궁 내부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건물 내부의 일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던 '거울의 방(Spiegelsaal)'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비밀 만찬실인 '중국식 작은 방(Chinesisches Rundkabinett)'등이 볼 만하다고 하는데 가 보지는 못했다. 궁전의 전면에는 약 1.7㎢에 달하는 널따란 왕궁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화단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많은 분수, 조각상 등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웠다. 정원을 지나 언덕 위에 오르면 커다란 호수가 나오고 그 호수 너머에 1,747년 프러시아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해 세운 개선문인 글로리에테가 우뚝 솟아 있다.

▲ 개선문을 향해 올라가는 언덕 위에서 만나는 국화과 식물들이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우리 연수단은 궁의 내부는 함께 둘러보고 정원과 개선문이 있는 곳까지는 자유롭게 관람을 하도록 하였다.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을 주고 둘러보고 나오라고 하니 서둘렀다. 언덕을 오르면서 보니 데이지와 같은 국화과 식물, 운향과 식물 등의 들꽃들이 반기고 있어 그들을 사진기에 담으면서 서두른다고 했지만 개선문을 둘러보고 나왔는데, 일행들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였다. 이곳 쉔부른 궁의 언덕에 세워진 개선문도 파리의 개선문을 본떴다는데, 거대한 골조가 우람하게 서 있는 그런 건축상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가는 나라마다 이런 개선문을 만나게 된다. 각종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의 역사에서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의 보존하고 왕가의 명성을 이어가고자 했던 욕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엿보게 한다. 이런 열망이야 이곳 유럽 만이었겠는가?

▲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벨베트르궁
▲ 벨베티르궁 앞의 조형물도 인상적인데, 이 미술관에는 클림트의 '키스'라는 세계적인 명화를 보기 위하여 많은 관람객들이 모인다.

우리 연수단은 쉔부른 궁전을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본 다음 쉔부른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벨베테르궁의 미술관을 찾았다. 이곳에는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그 작품을 보기 위하여 오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크림트의 작품들과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에곤 쉴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비엔나 관광의 필수 코스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벨베테르궁은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비엔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그리고 궁전의 앞다당은 쉔부른 궁전과 같이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정원을 지나 우리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 클림트의 '<키스> 그림, 두 남녀가 하나의 몸으로 결합한 구상도 기발하지만 기하학적 무늬와 키스를 받기 위한 여성의 강렬한 표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에곤 쉴레'의 작품 중 하나

이곳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 앞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키스〉는 포옹을 하는 두 연인을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의 두 사람은 클림트 자신과 그의 연인인 에밀리 플뢰게라고 한다. 다양한 문양과 황금색에 둘러싸여 두 사람은 구별이 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다. 특히 수동적이지만 황홀경에 빠진 듯한 표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림트의 이 작품이 얼마나 유명한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중 컵이라든가 손수건, 기념품 등의 장식으로 이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크림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받은 세계적인 화가이다.

벨베티르궁의 미술관 견학을 마친 우리 연수단에게는 이후 시간부터 자유여행 시간이 주어졌다. 비엔나는 반지처럼 성벽이 둘러쳐져 있는 도시인데, 관광지들이 그 성벽을 따라가면서 늘어서 있기 때문에 걸으면서 관광을 하기에 좋은 도시이다. 광주에서 온 선생님 팀들과 우리는 걸어서 국회의사당 방면을 향해서 걸으면서 비엔나 시내를 둘러보았다. 국회의사당이나 각종 박물관들이 있지만 시간도 넉넉지 않아서 그런 곳들 관광은 다 생략하고 합스부르크 왕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가다 보니 왕궁 정원에서 모차르트 동상을 만날 수도 있었다. 걷다가 어느 건물의 그늘에서 햄버거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왕궁으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 연수단의 다른 팀들 중에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왔으니 오페라하우스를 찾아가 음악 공연을 시청하고 온 팀들도 있었다.

▲ 비엔나 시내에서 만난 길거리 악사들

내가 속한 팀은 점심 식사를 끝내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을 찾았다. 궁전 건물 내부를 조금 둘러보고 나서 다시 거리로 나섰다. 비엔나에서 제일 크다는 슈테판 성당을 찾기 위해서다. 가다 보니 입성들이 오스트리아인은 아니고, 외국인으로 보이는 길거리 악사들이 공연을 하는 광경을 마주하기도 하고, 역사도시 비엔나의 고풍스런 분위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국제적인 관광도시 비엔나는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좋았다. 

▲ 비엔나 시내에서 만난 마실 수 있는 수돗물,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이 물은 생명수였다.

여름인데, 햇살이 강렬하여 길거리를 걸으며 관광을 하는 것은 많이 힘이 들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길거리에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 있어 반갑고 신기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시내 관광을 하였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석회암 토양이기 때문에 수돗물이나 샘물 등 아무 물이나 마실 수 없다. 그런데 이곳 비엔나의 도시 한복판에는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 나오는 것을 마실 수 있는 곳도 있었다.

▲ 오랜 역사를 지닌 슈테판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줄을 서서 그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슈테판 성당을 찾아갔다. 과연 스테판 성당이 크긴 컸다.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는 물론이고 유럽 대부분의 유명한 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성당들이 있는데, 이곳 비엔나가 중부 유럽을 지배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에 성당 또한 거대한 규모였다.

▲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슈테판 성당의 웅장한 내부 모습

슈테판 대성당은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졌으나 14세기 중반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이 되어 다양한 형태의 건축 양식을 가진 건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지붕은 기와 23만 개가 덮여 있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137m 높이의 남탑과 67m 높이의 북탑이 유명하다고 한다. 지하에는 대주교의 묘지와 역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비엔나 시내에 있는 한국인 식당 '김치'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베캄원정대' 전교조 연수단

이렇게 시내 관광을 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내었더니, 각자 팀별로 시내 관광을 마친 동유럽 연수단 선생님들이 약속 장소로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비엔나 시내에 있는 한국식인 '김치'라는 식당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했다. 모처럼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낮에 시내 관광에서 치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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