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와 터키는 우리와 같은 종족인가?

아틸라의 훈족 국가, 칭기즈칸의 원, 오스만 투르크 등은 많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어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19.07.08l수정2019.07.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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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광장'의 모습, 마라르족이 헝가리 왕국을 세울 때부터 헝가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을 세워져 기념하고 있는 곳이다. 1896년 헝가리 수립 1000년을 맞아 세워진 광장이다. 아르파드를 비롯한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서 있다. 기마상을 가운데에 두고 뒤편 양옆으로는 초대 국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부터 독립운동가였던 코슈트 러요시까지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물 14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나 어른이 되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헝가리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랄알타이어족이고, 그 옛날 한때는 우리와 같은 몽골리언들인 훈족이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문화적으로 유사한 면들이 많다. 그리고 터키는 우리와 형제 국가다"는 것이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나는 2014년 동유럽 교사 연수단의 헝가리 여행길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외모를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본 결론은 헝가리 사람들의 외모는 동양계와는 달랐다. 피부나 머리칼의 색깔 등도 일반적인 서양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들보다는 키는 좀 작은 편일지라도 피부색이나 머리칼의 색깔은 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머리칼의 색깔이 검은 사람들이 다른 서구 나라들보다는 좀 많아 보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옛날 훈족이 100년 가까이 지배를 했었고, 칭기즈칸의 몽골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휩쓸었지만 그들의 후예들이 남아 있더라도 이곳 서구 사람들과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 서로 혼인을 하고 피가 섞였어도 천 수백 년 동안 섞였는데, 유전학적으로 몽골리언들의 유전자가 얼마나 남아있겠는가?

▲ '중앙힐링카페'에서 퍼왔다. 훈족이 세웠던 왕국의 강역을 살펴볼 수 있는 지도이다.

헝가리는 4~5세기 때, 훈족(흉노족)이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전 유럽을 정복해 들어간 적이 있다. 지금의 동서독일 지역인 동고트나 서고트 지역은 물론이고 서로마, 동로마를 정복해 들어갔다. 중동 쪽으로는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닿는 곳까지 점령을 해서 유럽 역사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거느렸던 시절이 있다. 바로 훈족의 왕 아틸라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를 칭기즈칸, 알렉산더와 더불어 세계 3대 정복군주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칭기즈칸이나 아틸라나 다 같은 훈족의 후예들인 몽골리언인 것이다.

훈족을 그 옛날 중국인들이 경멸하며 불렀던 이름인 '흉노(匈奴)'족을 말한다. 만리장성 밖의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 만주 등지에서 주로 유목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이들은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면 살찐 말들을 타고 만리장성 안의 중원 땅을 자주 침략했다고 한다. 한 때는 낙양을 점령하기도 하고. 그래서 진시황 이전부터 중국인들은 이들을 '흉악한 노예'라는 식으로 이름하였다. 진시황은 이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진'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으로써 다시 중원이 혼란에 빠지고, 여러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다 결국은 한고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한'을 세운다.

 유방은 계속 북쪽 변방을 괴롭히는 흉노를 치기 위하여 30만 대군을 일으켜 흉노를 치러갔지만 흉노는 패하는 척 유인전술을 써 적을 백등산 쪽으로 깊숙이 유인하고 40만 대군으로 포위를 하니 거의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화친을 맺고 많은 공물을 바치고 공주까지 흉노로 시집보내기로 약속하였다고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한나라 초기 때만하여도 흉노는 한을 제압하고 위협하니, 한의 무제는 서역의 날랜 말들을 수입하고 조련하여 30만 대군을 일으켜 흉노를 친다. 이 전투에서 흉노는 분열이 되어 남흉노는 한나라에 항복을 하고, 북흉노는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피해갔다가 다시 서진하여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렇지만 토착 종족들과 잦은 마찰로 다시 서진하여 땅이 비옥한 판노니아 지방에 자리를 잡고 훈족 국가를 세운다. 지금의 헝가리,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지의 다뉴브강 유역이다. 그게 AD 375년이다. 훈족들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반까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랄산맥에서 알프스를 넘어 중부와 서유럽, 남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접경을 이룰 정도로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를 건설한다.

Hun+Gary(훈가리)가 '훈족의 나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오늘날 헝가리의 국명으로까지 정해진 이유다.  훈족은 375년 서쪽으로 이동하여 로마제국을 압박하고, 동고트와 서고트를 압박하자 서고트 인들이 로마로 이동해 갔는데, 그게 유명한 '게르만의 대이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판노니아는 훈족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뿌리를 내기기 이전까지는 로마제국의 속주였다.

▲ 전 유럽을 정벌하면서 이름을 날렸던 '아틸라' 대왕, 세계 3대 정복 군주라고 불릴 만큼 유럽에서는 그 명성이 대단하다. 훈족(흉노족)의 왕이다. 현재까지도 그 이름이 자자하여 문학이나 음악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훈족은 말을 잘 다루고, 특히 뿔을 붙여 만든 각궁을 사용하여 활의 사거리가 유럽인들의 사용하는 활의 사거리보다 훨씬 길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말을 탈 때 말 등에 거적 하나를 씌워서 타고 칼과 창을 휘두르기 때문에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한 손으로는 말고삐를 잔뜩 움켜쥐어야 했다. 때문에 한 팔로 칼과 창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훈족은 말안장을 말 등에 고정시켜 말을 타고 달리면서 두 팔을 이용하여 활과 창을 사용했기 때문에 유럽 여러 나라의 기병들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한나라 초 이전의 중국도 그렇고 유럽 여러 종족들도 훈족의 기병들을 당해내질 못했다. 당시 고구려의 무용총 등에서 보이는 사냥하는 고구려인들의 모습이나 훈족이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방식이 이들 북방 민족들에게는 공통된 기술이었다.. 이런 기마술과 궁술은 몽골족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고, 만주족이 팔기군도 그랬다. 만주족(여진족)도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지배하여 '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훈족은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적들이 항복을 하면 노예로 잡아가거나 괴롭히지 않고 그들에게 자치권을 주어 스스로 통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공을 바친다든가 충성을 약속하면 다 자치권을 인정해 주는 식의 유화책을 썼기 때문에 토착민들은 굳이 훈족에게 크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배하고 다스리면서 야만적인 대접을 했던 동서 로마제국에 대하여 더 적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훈족이 이들 로마 속국으로 있던 지역의 나라들이나 부족들의 힘을 빌려 동서 로마를 정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훈족'의 이동 경로와 훈족이 지배했던 강역을 나타내는 지도

 훈족은 금을 좋아해서 동로마, 서로마를 침략하여 화친을 맺을 때는 1년에 금 얼마씩 조공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훈족이 금을 좋아해서 그런지 한나라에 투항했던 남흉노의 왕자 '김일제'의 성도 흉노족들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냈다.' 하여 '김(金)'이란 성을 사사받았다고 한다. 김알지나 김수로의 설화에도 보면 금궤짝과 연관이 되어 있고, 흉노의 무덤이나 신라 고분에서 금관 등 금공예품들이 많이 출토되는 것도 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신라 신문왕비문에는 신라 왕족인 김(金)씨가 흉노의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당나라 때 신라인들이 당나라에서 벼슬을 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의 한 사람인 김공량의 딸의 묘에서 출토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도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김씨 왕족들은 자신들은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것이 실제이든 아니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KBS의 역사스페셜에서도 이미 방영이 된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반론이 많으며, 역사의 정설은 아니라는 주장이 많긴 하다. 그렇지만 신라의 역대 김씨 왕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김일제'라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 수많은 역사상의 인물들 중에 왜 하필이면 '김일제'냐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다만 중국인들이 업신여겼던 '흉노'의 왕자라는 것 때문에 굳이 피해가려는 것일까? 

▲ '대릉원' 신라 김씨 계열 왕들이 묻혀있는 곳 다음 카페 '자연과 더불어 산다'에서 퍼옵니다.

 신라계 경주 김씨들은 시조를 '김알지'라고 하고 가락계인 김해 김씨들의 시조는 '김수로'로 한다. 이들은 모두 금궤에서 나왔고, 이들은 모두 김일제의 후손이라 한다. 김일제의 증손인 김당은 왕망과 이종사촌 간으로 왕망이 난에 연루되어 그 일족들이 투후봉토인 산둥성 일대에서 난을 피하여 요동이라든가 경주, 가야 등으로 이주해 와을 것으로 본다. 와서 토착 세력들과 연합을 하여 나라를 세우고 김알지의 7대 손인 13대 미추이사금 시절부터 김씨들이 왕에 등극을 하면서 신라계 김씨가 권력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김수로는 금관가야의 부족장으로서 가야국을 이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살펴보면 김일제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작은 아들 계열이 김수로의 선조라고 보인다. 가야가 신라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에는 가야국 왕족들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도 당시 신라의 김씨와 가야 김씨는 김일제의 후손으로서 서로 혈족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았나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추정은 좀 더 많은 연구와 논란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 배경들 때문에 헝가리가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등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지만 각종 자료들을 살펴보건 데, 이는 지나친 해석으로 보인다. 전 유럽을 지배했던 훈족과 우리 조상을 결부시켜 우리의 역사적 위상을 높여보고자 하는 희망의 주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헝가리 민요는 내몽골의 음악과 비슷하고, 악기와 생활용품, 언어도 비슷하다고 한다. 중동은 물론, 동로마와 서로마에 이르기까지 침략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는 헝가리 남성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이름 중 하나라고 한다. 아틸라는 훈족의 왕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유럽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 '부다왕궁', 13세기 후반 벨러 4세에 의하여 처음 세워졌으나 몽골 침략으로 파괴되고 다시 오스칸튀르크의 침입 등 역사의 격변기마다 훼손이 되다가 근래 1904년에 개축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헝가리 역사만큼이나 부침이 많았던 건축물이다.

 1500년 이전의 역사이지만 아틸라가 얼마나 대단한 정복 군주였고, 유럽인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는 독일의 대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도 등장하고, 베르너의 오페라 '아틸라', '아틸라, 훈족의 왕' 등에 등장한다. 전 유럽인들이 가톨릭을 믿을 때, 이교도이며 특별한 외모를 가진 훈족이 전 유럽을 휩쓰는 전쟁에서 벌어지는 참상들이 이들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아틸라는 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패도의 군주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끈질긴 협상가이고, 자신의 밑으로 복속해 들어오는 부족들에게는 자치권을 인정하는 등 오히려 그의 통치술이 오늘날 경영학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겔러레트 언덕 위에 있는 2차대전의 흔적, 헝가리는 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하여 폐허된 그 상태로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훈족이 물러간 판노니아는 다시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반면 도나우 강의 동쪽 지역은 로마 제국에 한 번도 점령되지 않았으며, 여러 게르만계 부족과 아시아 종족들이 거주했다. 200년 이상 아바르족의 영토였다가 800년경 샤를마뉴 대제에게 정복되었다. 5세기에 유목생활을 하는 핀우고르어를 사용하는 마자르족이 이전의 정착지인 유라시아의 스텝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892년 신성 로마 제국의 아루눌프 황제가 모라비아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마자르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자르인들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아르파드를 군주로 선출한 후 노디올 지방에 정착했다. 마자르인들은 중부 유럽을 약탈하다가 9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약탈행위를 그쳤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아르파드의 손자인 게조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1000년에 즉위한 게조의 아들 이슈트반은 그리스도교 전파와 국가의 발전을 계속 추진했다. 1241년 몽골인들의 침공을 받고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재난을 겪기도 하였다.

▲ '성이스테반 성당', 마자르족이 세운 국가에서 이스테반 왕이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부타페스트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며,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1849년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하지만 러시아 등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다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 제국을 설립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을 하지만 헝가리 영토는 주변 여러 국가들이 할양을 받았다. 이 때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소련에 대항하여 독일에 협력하였다. 제2차 대전의 패전으로 헝가리는 소련의 지배에 들어가고 1949년 헝가리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친소 공산정권이 들어선다.

 1956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운동이 일어났지만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 후 야노슈 카다르가 집권하면서(1956∼88) 헝가리 공산당은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유화 정책을 도입했고, 이에 헝가리는 소련의 동유럽 블록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자유스러운 국가로 꼽히게 되었다.

현재 주민이 대부분이 마자르족이라 하지만 훈족이 지배할 당시 전 유럽을 호령했던 역사는 민족을 떠나서 그들이 자랑스러운 역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담은 많은 대중에게 회자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 성취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한다. 일종의 대리만족 심리인 것이다. 아틸라가 전 유럽을 지배하고 호령했던 역사를 헝가리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듯 한반도에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광대한 영토를 호령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는 헝가리 외에도 핀란드가 훈족이 이주하여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그 부분을 더 알아봐야겠다.

터키인들의 조상들은 주로 신장, 위구르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유목 생활과 중계 무역 등을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우리 역사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중국명 '돌궐'이 이들 나라였다. 중원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웠던 수많은 중원의 나라들은 만리장성 밖의 만주에서 몽골, 중앙아시아, 신장, 위구르 지역에 있는 종족들을 오랑캐라고 하며 업신여겼다. 산둥지역이나 요동, 만주 등지에 자리 잡았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숙신, 예, 맥 등을 중국은 '동이족' 또는 '흉노족'이라고 불렀다. 동이 또는 흉노가 중원의 한족 세력과 전쟁을 할 때는 돌궐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대항하였다. 후에 당나라 때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의 많은 유민들은 돌궐로 이주를 했고, 돌궐에서는 고구려 왕족을 고려왕으로 세우고 자치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도 하였다. 이들 돌궐족은 신장, 위구르 지역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중원과 잦은 전쟁을 하면서 나라를 이어왔지만 이들 중 일부는 지금의 터키 지역으로 이동하여 쉘주크튀르크 제국을 건설한다. 쉘주크의 뒤를 이어 오스만 튀르크는 주변 지역을 정벌하면서 대 제국을 건설한다. 발칸 반도 지역의 많은 나라들을 복속시켰고, 그들이 한창 강성했을 때는 지금의 헝가리 지역까지 점령을 하여 그 세력이 대단하였다.

▲ <몽골미디어그릅>에서 퍼옵니다. 돌궐과 고구려의 관계를 기록한 돌궐 비문, 이런 자료들 때문에 터키인들은 한국인들을 형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돌궐족은 백인계열도 있었고, 황인종 계열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도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오래 정착을 하면서 지역의 여러 종족들과 혼인을 통하여 많은 종족들의 피가 섞인다. 아시아 지역의 황인종과는 외모가 다소 다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혼혈족인 퀴르드인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도 우랄알타이어족으로 우리와 같은 어순을 갖고 있고, 비슷하게 사용되는 언어도 상당수 볼 수 있고, 문화적으로도 유사한 면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터키인들은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 공부를 많이 시킨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 고대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세웠던 많은 국가들과 형제처럼 지냈다는 역사를 강조한다고 한다. 물론 그에 관한 기록들은 옛날 돌궐지역에서 발견되는 금석문 등에도 이미 그 기록들이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런 고대사를 학생들에게 확실히 가르치면서 그들의 뿌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터키인들 중에는 우리 한국인들과 형제라는 인식을 많이 갖게 되었다고 한다.

▲ 부다페스트는 해발 96m의 성이스테반 성당의 높이를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높은 건물들을 볼 수 없다. 시내가 건물로 꽉 들어차서 답답한 모습을 모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세계의 광대한 땅과 종족들을 지배했던 종족은 라틴족의 로마, 아틸라와 칭기즈칸의 몽골리언 계통의 훈족과 돌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정도이고 근세에 와서 앵글로섹슨의 영국과 라틴의 스페인,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인 미국, 슬라브족인 러시아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 다른 종족들보다 첨단 무기를 지녔다는 것과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종족 대부분은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기 위하여 외부 세계로 끊임없이 진출해 나가면서 이루어졌다.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 발전 법칙이 들어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구성원들을 통합해 내는 지도력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정복 군주들은 하나 같이 사회 구성원들을 통합해내는 위대한 지도력을 지녔다.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 '시타델라 요새', 헝가리 역사를 보면 참으로 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제대로 독립을 유지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할 정도로 힘든 역사였다. 그러다 보니 강대국들과 손을 잡고 역사를 이어온 측면이 강하다. 이 요새만 하여도 2차 대전 때 독일과 손을 잡음으로써 많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것이다.
▲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요새. 그 옛날, 외침이 있을 때 도나우강에서 어로생활을 하던 어부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외적에 맞섰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 제국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가는 소멸해 갔다. 다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논리가 세워지면 또 대중들은 그 그늘 밑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은 패권을 꿈꾸는 국가와 민족, 사람들이 할거하며 약소국들을 괴롭히는데, 온 인류가 한 국가, 한 민족으로 대접받으며 싸우지않은 평화로운 세상은 꿈인가?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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