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여행기-9 : 에필로그

동성애자와의 만남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07.09l수정2019.07.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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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남자 혼자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드물지요. 여행가이드가 남자가 아니면 추가 일인 일실 요금을 내지 않고도 대부분 방 하나를 혼자 차지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행운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 함께 여행을 떠났던 타이난 일행. 5살 연상 친구의 초등 동창과 친구 부인

하지만 허리 통증으로 침대 대신 바닥에다 이불을 깔고 자려고 준비하는 일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베개를 옮기기도 힘들고 양말이나 바지 입고 벗는 고통도 형언키 어려웠지요. 여행 내내 친해진 일행들이 좋다는 진통제나 일본에서 사 왔다는 소염 진통 파스 등을 계속 주었습니다.

▲ 보스니아의 MEPAS 호텔. 모스타르에 있는 5성급 호텔
▲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성 도미니우스 성당. 300년이 넘는 시차를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1988년부터 30년 넘게 사업상 만나 함께 늙어가는 친구 부부. 친구 부인은 남편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고는 언제나 내 팔짱을 낀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와 절벽 위의 블레드 성 그리고 알프스 산맥

여행 중 색다른 경험은 3일 정도 남았을 때부터입니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작은 신장의 동성애자가 같이 셀카를 찍자고 하더니 한 계단 올라와 키를 맞추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얼떨떨한 나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타이난에 자기가 아는 정형외과 병원이 좋으니까 약속을 정하면 자기가 예약을 하겠답니다.

그 당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이 짧은 머리 여자는 자기를 남자라고 생각하는구나. 모르는 여자와 한방을 쓰는 것이 모르는 남녀가 한방에 있는 것과 같을 수 있겠다. 그래서 40여만 원의 추가 비용을 내면서 방을 혼자 사용하는구나!’ 정도였지요.

귀국해서 다음 날 오후 알려준 병원에 도착하여 연락하니 약 2분 만에 흰색 BMW가 나타났습니다. 이성 같지 않은 짧은 머리의 이성 친구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마치 보호자처럼 알뜰살뜰 챙겨주고,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잘못 이해할까 봐 또다시 반복해서 주의를 주고, 지켜야 할 사항을 문자로 정리해 다시 보내줍니다.

병원에서 X-RAY 찍고, 주사 맞고, 일주일 분의 약과 허리 고정 보호대 구매하였는데, 의료보험이 안 되는 저는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에 몹시 고마웠지요.

제가 아는 레즈비언은 이상행동(Abnormal Behavior)의 하나라는 교과서적 지식이 전부였지(1994년 부터 정신장애로 분류되지 않음), 실제로 주변에서 알고 지낸 적은 없어서 순간순간 혼동이 왔습니다. 내 차를 병원에 두고 자기 차로 이동하자고 합니다. 자기 여자 친구가 하는 음식점에 가서 저녁 먹자고.

이 음식점은 대만 10대 훠꿔(중국식 샤브샤브) 맛집으로 이름난 50년 역사의 식당입니다. 그 전에 대만 친구 가족과 3번 정도 갔던 집이고, 딸이 왔을 때도 찾았던 음식점입니다.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천천히 차를 몰아 어느 고급 주택단지로 들어가더니 4층짜리 집을 가리키며 여자 친구와 함께 사는 자기 집이라고 합니다.

저는 얼핏 너는 몇 층에 살고, 여자 친구는 몇 층에 사느냐는 의미로 “몇 층에 사니?”라고 물었더니 둘이서 4층을 다 쓴다고 합니다. 100평이 넘는데 짐이 많아서 좁다고 투덜댑니다. 잠은 새벽 2시경에 자고, 오전에 일어나 침대에 누워 게으름 피우며 오래 이야기하다 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때서야 ‘이 커플은 한방을 쓰지’라는 인식이 겨우 생겼습니다.) 일어나 천천히 준비 하고 나면 오후 한 시에 아침을 먹는다고 합니다. 여자 친구는 영업이 거의 끝나가는 오후 7~8시쯤에 음식점에 출근해서 일보고(수금) 들어온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술술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오가며 들은 이야기는,

자기는 마흔여섯이고 여자 친구는 마흔다섯인데 15년(?)을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차려서 여성 속옷을 만들어 팔았답니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여성 속옷 사업을 했는데 섹시한 여성 내의를 만들어 팔았고, 자기는 귀여운 느낌의 여성 내의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 사업이 대박을 터트렸답니다. 영어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했고 지금도 이 브랜드가 살아있답니다.

사업이 너무 잘됐는데, 집안에서는 자기를 아버지의 경쟁자로 취급했답니다. 어머니마저 딸이 잘되는 걸 시기했답니다. 오빠와 언니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아버지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기 인맥과 유통을 이용하여 회사가 이익이 많이 생기자 아버지가 고맙다고 고급 차를 사주자 다른 가족들이 자기를 더 미워했답니다. 오빠는 자기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자기는 기념일이나 명절에는 많은 돈을 써서 선물도 사주고 여행을 간다면 용돈도 많이 줬지만 한 번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답니다. 지금은 너무 불편해 가족과 만나지 않는답니다.

이른 저녁 시간에 그 유명한 50년 전통의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의 여주인이 나를 보더니 진 따거(金 오빠)라며 아는 척합니다. 또 순간 혼란이 옵니다.

이 긴 머리 여자 친구는 여행 중 일어났던 많은 일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셀카 사진으로 이미 저를 알고 있었고요.

내가 시킨 메뉴를 사장 서비스라며 추가로 가져와 위장이 고문을 당했습니다. 내가 고마운 마음에 음식값을 계산하려 하자 사장이 낸다고 말리네요.

며칠 후 내가 아는 홍콩 요리 맛집에 두 사람을 초대하였고, 나중에 이들이 또 나를 호텔에 초대하면서 이제 우리는 맛집 탐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동안 긴 머리 여자는 젓가락을 들고 예쁘게 앉아있고, 키도 작고 팔도 짧은 남자 같은 여자가 음식을 가져다 앞 접시에 놓으면 얌전히 먹고 기다립니다. 마치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듯 눈빛만으로도 뭐를 줘야 하는 지 아는 사이였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짧은 머리는 자기들 언어로 또다시 긴 머리여자에게 반복합니다. 천성이 세심한 배려를 하더군요. 너 알아들으면 나도 알아듣는다고 통역하지 말라며 함께 낄낄거립니다.

나의 사고는 아직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고 서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하는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이라고 이해하는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합니다.

▲ 모르는 사람들도 함께 여행을 하면 좋은 친구가 된다. 잘 걷지 못하던 나를 위해 말벗이 되어주었던 마음씨 따뜻한 대만 일행.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발칸반도 여행기를 마칩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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