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만난 그녀 ~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새학기, 새봄이라는 기쁨보다 '조심해야한다'는 말로 모든 생활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전 세계가 공통된 적을 향해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시점...

거리에 있는 노숙인에 대해서는 연민의 시선보다는, 마치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기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 가운데 만난 '그녀'를 소개하고자 한다.

▲ 길거리에서 만난 그녀

그녀는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강남에서 처음 만났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여성이었는데,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민원이 들어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12월 24일, 성탄 전야의 화려한 거리라서 그런지 그녀는 더 초라해 보였다.

그녀의 첫마디는 “배가 너무 고파... 돈 있어?”였다. 그러나 주변 어디에도 그녀가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지하철 역사 안으로 내려오니 다행히 김밥을 파는 곳이 있어 사다주었다. 그녀는 음료수도 먹지 않고 허겁지겁 김밥 세 줄을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그리고는 낯선 나를 아래위로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마스크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난 미국에서 온 공주인데 어머니는 일본 공주이고...”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말에서 정신과적 문제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그녀의 망상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이후 매주 만남을 이어가며, 어느 나라 왕궁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유창한 영어에 난 번역기를 사용해가며 그녀와의 대화에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만남을 거듭할수록 생년월일, 부모님 이름, 출신대학교 등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보를 가지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개인 정보보호법에 걸린다는 이유로 도와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과 입원은 자의적 입원과 비자의적 입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스스로 입원 치료를 받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위험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는 경우에 진행되는 방법이 있다. 그녀는 어느 쪽도 적용하기 어려웠다. 가족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을 찾아 치료 연계할 방법을 찾던 중, 2월에 코로나 사태가 심각 수준으로 올라왔을 때 지하철 역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저녁 8시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있었고, 간혹 기침으로 몇가지 의심 증상을 보였다. 체온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막무가내인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몇 년간 경험에 비춰볼 때 거리 노숙인들은 사스, 메르스 등 유행하는 전염병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아닐거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그녀의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적 망상은 더 나빠져 있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먼저 죽이려고... 가까이 오지마, 내가 누군 줄 알아?”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녀를 시민들이 피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무척 좋아하던 그녀가 먹지를 않았다. 그녀가 안전하기 위해 선택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사전에 119와 경찰서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작전을 세웠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많이 없는 시간대를 정하고 그녀가 예민해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든 후, 바로 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민한 그녀는 바로 눈치를 채고 어딘가로 숨어버려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지하철 역무원, 경찰, 119 대원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 후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또한, 경찰의 협조로 가족을 찾게 되어 지금은 정신과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긴다. 스스로 극복할 수도 있고, 간혹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그 때 내 옆에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눔을 받기도 하고 나눔을 주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면, 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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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박연화 주주통신원  duri9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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