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피타고라스에게 자신의 운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잘만하면 운명의 탈출구라든가 운명을 바꾸는 비법까지 알아낼 수도 있다고 여겼다. 자신의 운세가 스탈린과 비슷하다는 말이 칭찬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스탈린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이하 '트'로 칭함) : 제 운세가 스탈린과 비슷하다면 저도 죽을 때까지 권세를 누릴 수 있을까요?

피타고라스(이하 '피'로 칭함) : 이오시프 즈가시빌리. 스탈린의 본명이지. 스탈린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나?

트 : 스탈린은 사람 이름일 뿐, 무슨 의미가 있던가요?

피 : 스탈린은 '강철 인간'이라는 뜻으로 레닌이 붙여준 별명이야. 그 이후로 이오시프 즈가시빌리는 스탈린으로 불리게 되었지.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그런 것도 모르고 있다니. 쯧쯧.

트 : 돈 되는 일이나 잇속 챙기는 데는 밝아도 역사에는 많이 무지한 편이라서요.

피 : 스탈린은 끝없는 비인간성으로 수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 제국을 세웠지. 자네도 그걸 따라하고 싶은겐가? 미국 시민과 전 세계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억압하며 자신의 권세만을 추구하고 싶단 말이지?

트 :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저도 그게 나쁜 줄은 알지만 제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저는 올 연말에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피 : 자네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나? 영계에서 솔로몬왕이 자네를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자네가 유태인들과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미는 이유가 다 그런 게 아니겠나?

트 : (피타고라스의 말에 움찔하며) 억지 웃음을 짓는다.

피 : (트럼프를 노려보며) 유럽과 아랍권의 반대를 무릎쓰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을 강행한 것도 유태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술수 아닌가. 하지만 자네는 딱 거기까지야. 솔로몬왕도 그것때문에 자네를 도운거지만 말야.

▲ 두루마리 문서를 쥐고 있는 솔로몬

트 : 유태인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솔로몬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솔로몬왕이 영계에서 저와 이스라엘을 후원했다는 건가요?

피 :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영계에서 틀이 짜여지는 게야.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자네가 이스라엘을 지지해주는 대가로 자네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던 솔로몬왕으로서도 더 이상 자네를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야.

트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슨 말씀인지 쉽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피 : 영계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인류 역사에 관심이 많지. 그런데 자네 같은 자가 인류 역사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라고 보는가? 더구나 미국 대통령으로서 말이야.

트 : 인류 역사까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실리만큼은 확실히 챙겨왔습지요.

피 : (한심하다는 듯) 별 머저리 같은 인간 다 보겠네. 꼴에 대통령이랍시고~!

트 : (절망한 심정으로) 그렇다면 영계에서는 이미 저를 버리신 건가요? 더 이상 미국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보시는 겁니까요?

피 :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겠나? 돌아가는 분위기 보면 모르겠나?

트 : 저를 부정적으로 보실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저를 어여삐 여겨 2020년 재선에 성공할 비법을 알려주시면 백골난망이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미국 전역에 피타고라스기념사원을 10개라도 세워드릴 의향이 있습니다요.

피 : 고작 사원 10개 가지고 나를 꾀어 보려는건가?

트 : 그럼 100개까지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요.

피 : (인간 같지도 않다는 듯) 닥치게~!  나는 영계에서 제자들과 긴급하게 논의할 게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트 : 그래도 어렵게 만났는데 저에게 도움이 될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피 : 그동안 북한의 김정은을 잘도 이용해 먹었으니 다른 먹거리를 찾아보던가.

트 :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 머리를 조아리며) 깊이 참고하겠습니다요.

피타고라스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는 끝없는 고뇌에 잠기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에 이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시민들의 시위가 자신에게 몹시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동안 정치경제적 이슈를 선점하며 자신의 부족한 지도력을 커버해왔으나 이제는 이슈에 끌려 다니면서 자신의 리더십이 예전같이 먹히지 않고 있었고 공화당 거물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음모를 꾸밀 거리가 있긴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예상 외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어 신경이 쓰인다. 자신의 운세가 다한 것처럼 말했으나 그래도 피타고라스는 약간의 여지를 주지 않았던가. 다른 먹거리를 찾아보라고. 먹거리라 함은 상황을 탈출할 거리를 찾으라는 말일 것이다. 

선거대책특수팀을 가동해 몇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중이다. 그 중 하나가 전쟁 시나리오다. 선거 전에 전쟁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전쟁이 발발되면 재선은 따논 당상이다. 그동안 이란, 북한, 중국을 상대로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이번에는 누가 좋을까. 전면전보다는 국지전이 좋을 것이다. 그저 전쟁 냄새만 풍기면 된다.

2020년 여름은 역대 최고의 무더위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며 트럼프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자리를 뒤척이고 있었다. 재선에 도움이 될 효과적인 먹거리, 만만한 희생양을 어디에서 찾을까. 자신의 끝, 음모의 끝이 서서히 자신의 목을 죄이고 있음을 느끼면서 불면의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끝>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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