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박사 위에 육사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박사 위에 잡사(雜事)가 군림한다. 박사는 한 분야의 전문가일 뿐이지만 잡사는 모든 세상일에 전문가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학이요, 잡설이다. 잡학잡설(雜學雜說)이다. 또한 어떤 전문가의 주장이나 이론으로 세상을 다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융합의 시대이다. 그래서 세상의 난설과 난상을 집결해야 한다. 난설난상(亂說亂想)이다. 앞으로 이런 잡학난설 혹은 잡설난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자 한다.

세상의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잡다한 견해와 생각들을 표주박으로 한 바가지 퍼 올리고, 지구 주위를 맴돌며 우주의 별들 사이를 떠도는 한 많은 넋들의 정념들을 주먹으로 한 움큼 쥐어보며 잡학난설(雜學亂說)인지 잡설난상(雜說亂想)인지를 시작해보려 한다. 대단한 견해나 비상한 관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잡다한 견해의 공집합(혹은 부분집합)으로 여기면 될 것이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면서 민족적인 단결과 단합을 호소했다.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맞는 말인데 결국 자신의 독재정치에 악용했을 뿐이다. 사람의 정당성은 그의 말과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의 주장은 공염불이 되어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이 말은 코로나로 인해 뒤집혀야 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뭉치거나 모이면 다 같이 죽는다. 흩어지거나 격리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코로나는 격리 생활을 요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코로나는 욕심이 많고 권위적이며 위협적이다. 경제에 약간의 관심을 기울이려 하면 곧바로 엄청난 확산의 쓴 맛을 보여준다. 그 뿐인가. 물질문명에 익숙해진 인류의 삶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세상에 의존하고 문명에 의지하던 삶의 행태를 어떤 식으로든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점차 심해지는 기후 위기와도 무관치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는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지옥의 선발대일지도 모른다.

 

▲  활짝 핀 미케네문명, 비극으로 막을 내리다 /  미케네 왕궁터에서 바라본 미케네 평원. 김헌 제공
(출처- 한겨레신문)

아베의 사임과 아픈 창자

아베 신조가 7년 8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아베가 사임을 발표한 날(8월28일)이 하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한지 110주년이 되기 바로 하루 전날이었다. 이제라도 물러난 것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물러나면서 아베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평화헌법 개정을 언급하며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으로 인해 창자가 끊어질 듯  괴로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는 알아야 한다.

아베가 일본총리로 있는 동안 한미관계를 이간질하고 뒷구멍으로 한국에 대해 모략질을 일삼은 것도 모자라,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때마다 트럼프에게 달려가 북미관계를 이간질하며 한반도의 평화모드에 찬물을 끼얹은 행태에 대해 대한민국 온 국민이 '창자가 끊어질 듯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는 것을.

 

▲ 마야문명의 몰락과 뱀왕조 - 마야 제국 ‘뱀 왕조’의 왕족 무덤.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출처 : 한겨레신문)

시대의 암흑과 종말

세상 전체가 암흑으로 변하고 있다. 영적인 암흑이다. 고통과 착취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고 있고, 어느 나라에서건 돈 없고 힘없는 자들의 절박함은 갈수록 더해만 간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너무도 견고하여 개선의 여지조차 없다.

반면에 우주에서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아는 것은 너무도 부족하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신들이 우리에게 내려준 질병들은 이해할 수 없어 더 좌절스럽다"고 말한다. <펜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롭 월로스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겨냥하며 거대 농축산업의 문제를 폭로한다.

코로나 시대에 인류는 어디에서 삶의 에너지와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은 종말의 시대다. 종말이라고 하여 지구의 종말이나 인류의 종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명의 종말일 수도 있고 종교의 종말일 수도 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듯이, 한 문명이 가고 다른 문명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언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종말의 시대를 맞이하여 종말의 희생자를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종말의 희생자는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찌든 이 시대의 인류 모두이다. 지금은 어떤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코로나는 그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의식의 전환일 수도 있고 문명의 전환일 수도 있다. 그 전환이 강제적인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삶의 방식의 전환'이라는 명제는 변함이 없다.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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