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선택한 장소는 ‘금은모래강변공원’이다. 공원이름이 너무 예쁘다. 여주에는 예전부터 ‘금모래은모래 유원지’가 있었다. 강변을 따라 하얀 모래가 1km 이어지던 곳인데, 충주댐이 만들어진 후 '고인 물은 썩는다!'는 자연 섭리에 따라 물이 탁해지면서 백사장은 사라졌다. 금모래라는 말에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도 생각났다. 김소월 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여주 남한강가 금모래, 은모래까지는 아니어도 강바람을 쐬면서 산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금은모래강변공원’에 갔는데 아니었다. 강변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을 수도 있는데 공원 지도를 보면 강변을 끼고 있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꽃을 가꾸고, 각종 미니어처를 전시하고,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놓은 그냥 공원이었다. 더군다나 MB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그 일환으로 만든 공원이라고 하니 그만 마음이 확 멀어져 더 돌아보지도 않고 나왔다.

▲ 출처: 구글 지도

갈만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딜까? 신륵사다. 워낙 유명한 절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어 되도록 가지 않으려 했지만...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가기에 사람들은 다 돌아갔겠지 하는 생각에 신륵사로 발길을 돌렸다.

신륵사(神勒寺)는 봉황 꼬리라 하는 봉미산(鳳尾山)을 뒤로하고 남한강을 앞에 둔, 특이하게 강변에 지어진 절이다. 봉미산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정기와 세차게 흐르는 강물의 기운이 모이는 아름다운 곳에 여러 전각이 있어서 볼거리가 풍부하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 근거는 없다고 한다. 신륵사는 고려 우왕 2년(1376년), 유명한 고승인 나옹화상 입적 시 기이한 일이 일어나면서 유명해져서 큰절이 되었다. 나옹화상 입적 후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증수되었다 한다.

▲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이다.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하면서도 좀 '세다'는 느낌이 든다. 

▲ 구룡루 전면

신륵사 중심 극락보전에 가기 전 눈에 번쩍 띄는 건물이 있다. '구룡루(九龍樓)'로 넓직한 2층 누각이다. 조선 영조 때 중수되었다 한다. '구룡루' 이름은 신륵사 창건 전설과 관련이 있다. 신륵사가 창건될 때 커다란 연못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아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한 스님이 그 용을 휘어잡고 연못을 메워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방문객을 위하여 꽃으로 마련한 포토 존이 좀 생뚱하다. 워낙 유명 관광지니... 이해해야할까?

▲ 구룡루 뒷면

구룡루 뒷모습이다. 널찍널찍 가로로 길게 시원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 

▲ 극락보전

신륵사 중심에 있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조선 정조(1797~1800년) 때 지어졌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극락정토에 있는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살짝 색이 바랜 단청이 눈길을 끈다. 섬세한 정통 단청을 보는 것 같다.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오래된 절에서 나오는 은은함이 풍긴다.  

▲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상(사진출처 : 문화재청)

극락보전 법당 안에는 보물이 있다.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으로 보물 제1781호다. 가운데는 아미타불(서방 극락정토 주인인 부처), 좌측은 관음보살(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우측은 대세지보살(아미타불 지혜문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이를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라 부른다. 부처님을 가운데 앉아 있는 상으로 하고 양쪽 보살을 서있는 상으로 한 것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 한다.  

▲ 극락보전

그런데 극락보전 문이 특이하다. 아무리 봐도 새로 바꾼 지 얼마 안 된 문이다. 굉장히 좋은 나무로 한 것 같은데 단청과 어울리지 않은 갈색이 너무 튄다. 문을 장식한 부조도 굉장히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했을까? 혹시 색을 덜 칠했나? 생각이 들었지만 든든한 황동 경칩으로 마감한 걸 보니 완성된 문이다. 보는 사람 눈에 따라 묵직한 나무 색이 멋져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아래 같은 절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이 더 좋은지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래 되면 색이 바래 같아지려나?

▲ 내소사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화려함은 없지만 단순하고 소박함에서 오히려 귀함이 더 느껴지는 절이다.  

▲ 신륵사다층석탑

극락보전 앞에 있는 '신륵사다층석탑'은 보물 제225호다. 조선 성종(1372)때 세워진 석탑으로 높이는 3m다. 우리나라 대부분 석탑이 화강암인데 비해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m다. 작지만 흰색이라 그런지 기품이 있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대리석에 새긴 연꽃 문양과 날아오르는 구름속 용 문양이 아름답다.

▲ 극락보전 앞 향나무

극락보전 앞에는 두 쌍의 향나무가 사이좋게 서있다. 예쁘게 키웠다. 100년은 족히 돼 보인다. 신륵사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 조사당

극락보전 왼쪽으로 돌아가니 단아한 여인네 모습 같은 한 건물이 보인다. 보물 제180호라고 하는 '조사당'으로 지공, 무학, 나옹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초기 지어졌다 한다. 보물이라서가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내 눈에도 신륵사 경내에서 가장 예쁜 건물로 보인다.  

▲ 600년 된 향나무

조사당 바로 앞에 약 600년 된 큰 향나무가 있다. 여주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한다. 조사당과 세월을 같이 한 향나무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조사당이 숨 쉬고 있으니... 무거운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할 수 없이 살아가는 것만 같다. 나무도 제 몸을 감당치 못할 때는 그만 세상을 뜨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 강월헌

신륵사를 돌아 오른쪽으로 가면 남한강을 바라보는 곳에 정자 '강월헌(江月軒)’이 있다. 옛 것은 무너지고 새로 지었는지 그리 오래된 정자 같아 보이진 않는다. 강월헌은 6각 정자로 여주 강가 바위에 나무를 박고 세웠다. 이름처럼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달 뜬 강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강월헌 옆 바위에 앉아 강을 한참 바라보았다. 얼마 전 큰 비가 와서 그런지 강물이 무섭게 흐른다. 요샌... 자연이 좀 무섭다. 

▲ 신륵사다층전탑

보물 제 226호인 '신륵사다층전탑'이 강월헌 옆에 있다. 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경기도 지방 유일한 다층전탑이라 보물이 되었나 보다. 남한강이 굽어보이는 암벽 위 940cm 높이로 건립된 것으로, 남한강 뱃사공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 삼층석탑

어떤 꾸밈도 없어 투박해 보이는 '신륵사삼층석탑'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탑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졌다 한다. '강월헌' 바로 옆 자연 암석에 세워져 있다. 보기엔 그래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라고 한다. 아마도 고려후기 탑 연구에 보탬이 되는가 보다..

▲ 이름 모를 정자

신륵사를 뒤로 하고 슬슬 걸어 나오는 길에 멋스런 정자를 보았다. 한껏 콧대를 세운 처마의 곡선이 아름답다. 벌써 단풍이 살짝 든 나무와 어우러져 가을 냄새를 풍긴다. 봄이 어떻게 지났는지.. 여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9월 지나 10월이면 곧 가장 아름다운 단풍 계절이 오는데... 우리는 가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출구를 향해 강가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돈 순간 갑자기 소나무 사이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6시 55분부터 약 10분 동안 어우러지는 소나무와 노을의 향연. 불타오르는 이 장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마지막으로 주차장에서까지... 노을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떤 색이 그 때, 그 자리에서 자연이 펼쳐주는 찬란한 색을 따라갈 수 있을까? 자연에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인간이 뭐가 예뻐서 저런 황홀한 노을을 보여주는지.. 자연이 묵묵히 보내주는 그 무한한 사랑에 그저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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