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가는 걸 좋아한다. 일 년에 15번 이상은 간다. 나는 둘레길 산책을 좋아하고 남편은 남산 정상에 올라 한국을 방문한 세계 각국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저런 특색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즐겁단다. 취미가 희한하다. 남산에 갈 때는 항상 두 사람 다 만족할 수 있도록 둘레길을 돌다 정상에 올라 한참 있다 내려와서 다시 둘레길을 걸으며 돌아온다.

코로나가 터지고는 남산 정상에 사람이 없다. 특히 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남산 가잔 소릴 안 한다. 지난 일요일, 남산 가을 야생화가 보고 싶어 가자고 꼬였다. 

약 3시간 걸리는 코스를 택했다. 

서울특별시청 남산청사 -> 국립극장 방향 북둘레길 -> 남둘레길 -> 야외식물원 -> 남산 정상 -> 중앙계단길 -> 북둘레길 입구 -> 서울특별시청 남산청사

남산 북둘레길을 도는데 ‘꽃무릇’이 보인다. 꽃무릇은 참 특이한 꽃이다. 9월에 꽃이 피고 10월경 꽃이 시들면 알뿌리에서 새잎이 올라온다.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 정읍 내장사, 지리산 쌍계사의 9월에는 꽃무릇이 불타오르듯 핀다. 꽃무릇은 주로 절에 많이 심는다. 꽃무릇에서 추출한 녹말을 불경 제본과 탱화 제작 등에 사용하기 때문이라 한다. 영어명이 Red spider lily인데 왜 그런지 꽃 모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 꽃을 상사화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상사화는 꽃 색이 분홍에 가깝고 봄에 잎이 나고 다 말라 버린 후 8월에 꽃이 핀다. 두 꽃 다 수선화과이며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 서로 그리워한다 해서 상사화라 통칭하지 않았나 싶다..  

▲ 왼쪽은 북둘레길에서 만난 꽃무릇, 오른쪽은 야외식물원에서 만난 꽃무릇

북둘레길을 돌아 남둘레길을 따라 가는 길가에 '청까실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다. 국화과인 쑥부쟁이 중에 꽃잎에 푸른빛이 돌고, 몸 전체가 까실까실해서 청까실쑥부쟁이 혹은 청화쑥부쟁이라 부른다. 색이 눈에 띄게 예쁘다..

▲ 청까실쑥부쟁이

예전엔 도로도 된 남둘레길은 올라가지 않았다. 관광버스들이 매연을 뿜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관광버스 출입을 금지시켰고 친환경 전기차만 올라가게 했다. 걷는 도중 차가 몇 대 올라갔는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공기를 양껏 들이마셔도 속이 불쾌한 냄새가 없다. 아주 잘했다.   

▲ 남둘레길가에 피어있는 청까실쑥부쟁이

'쑥부쟁이' 이름은 옛날이야기에서 왔다. 어느 마을에 쑥 캐는 대장장이(불쟁이) 딸이 있었다. '쑥 캐는 불쟁이 딸'이라 '쑥부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위험에 빠진 젊은이를 구해주었고 인연을 약속했다. 다시 오기로 한 젊은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 그 자리에 연보랏빛 꽃이 피어났다. 이를 쑥부쟁이라 불렀다. 애절한 이야기처럼 '쑥부쟁이' 꽃말은 그리움과 기다림이라 한다.

▲ 왼쪽 쑥부쟁이, 오른쪽 꽃대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 해서 눈개쑥부쟁이(사진출처 : 다음)
▲ 가새쑥부쟁이, 바닷가에 핀다고 해서 갯쑥부쟁이(사진출처 : 다음)
▲ 까실하다 해서 까실쑥부쟁이, 청까실쑥부쟁이(까실쑥부쟁이 사진출처 : 다음)

'가는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청까실쑥부쟁이' 등 쑥부쟁이는 종류가 여럿이다. 몇 종류를 빼고는 구분이 정말 어렵다. 쑥부쟁이 대부분이 자생식물인데 눈에 확 띄는 청까실쑥부쟁이는 일본산이라 한다. 

▲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은 국화과 식물이다. 8~10월, 새하얀 예쁜 꽃을 피우는 서양등골나무가 남둘레길에서 야외식물원 가는 길에 굉장히 많이 보인다. 그늘진 숲 속에도 여기저기 많다. 북아메리카에서 온 귀화식물인데 환경부 지정 생태교란식물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째 예뻐 보이지 않는다.

▲ 범부채

야외식물원에서 만난 '범부채'다. 노랑 꽃잎에 붉은 얼룩 범무늬를 갖고 있으며, 싹이 날 때 부채처럼 퍼지며 자란다 해서 범부채라 부른다. 붓꽃과 식물로 7~9월 꽃을 피는 범부채는 벌써 열매를 단 포기도 있다.. 

▲ 물가에서 잘 자라는 부처꽃

'부처꽃'은 전국 산야 습지나 물가에서 잘 자란다. 6~8월, 붉은 빛 도는 자주색 꽃이 꽃자루에 층층히 달려 마치 긴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부처님께 이 꽃을 바쳤다고 해서 부처꽃이라 이름 붙었다.

▲ 꽃범의꼬리

'꽃범의꼬리'도 서양등골나물처럼 북아메리카에서 온 귀화식물이다. 꿀풀과에 속하며 7~9월 꽃이 피는데, 꽃 색이 보라색, 분홍색, 붉은색, 흰색으로 다양하다고 한다. 꽃대가 호랑이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 털별꽃아재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보면 별님을 만날 수 있는 '털별꽃아재비'를 만났다. 국화과 식물로 별꽃처럼 아주 작다. 전국 어디서나 흔히 자라 보통 잡초라 뽑아버리는 한해살이 풀이다. 열대아메리카에서 온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별꽃을 닮아 별꽃아재비가 되었고. 가지와 마디에 흰 털이 많아 털별꽃아재비가 되었다.

▲ 구절초

야외식물원을 나와 남산 정상으로 오르다 '구절초' 군락을 만났다. 일부러 구절초만 심어놓은 것 같았다. 구절초(九折草)란 이름은 음력 9월 9일 중앙절에 꺾어 채집해 약재로 사용하면 좋다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마디가 9개 있어 붙여졌다고도 한다.

구절초는 '울릉국화', '낙동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한라구절초', '남구절초' 등 종류만도 30가지가 넘는다 한다. 가을이면 들국화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산과 들을 예쁘게 수놓아 줄뿐만 아니라 향기도 좋아 관상용으로도 쓰인다. 너무 흔해 그 중요함을 낮춰보지만 <본초강목>에서 구절초는 장을 보호하고, 눈을 맑게 하여 두통을 사라지게 하고, 혈액순환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단다. 소화불량에도 도움이 되고, 여성생리불순에도 효과가 있다 하니 만병통치는 아니어도 열병통치 한약 정도는 되는 귀중한 식물이다.

▲ 성곽아래 핀 구절초와 남산타워

한양도성 성곽 아래 구절초가 만개했다. 멀리 남산타워까지 구절초와 어우러진 모습이 그만이다. "잔치 잔치 열렸네~ 구절초 꽃잔치~ 남산타워 아래로~ 꽃나들이 오세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외국인들이 보면 참 좋아할 것 같다.

남산 노을은 언제 봐도 근사하다. 둥그런 붉은 덩어리가 서서히 내려가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그 시간에 있던 장소는 나무가 해님을 가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중앙계단을 좀 내려오니 시야가 확 트이는 장소를 만났다. 이미 해는 가버렸다. 붉은 잔향만이 온 하늘을 은은하게 물들인다. 검은 구름은 이미 밤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 공기가 맑다는 표시인 파란색 남산타워

7시도 안 되었는데 컴컴해졌다. 밤에 보이는 남산타워 무지개 불빛이 낮의 위용보다 더 돋보인다. 타워 몸통이 파랑으로 보이는 것은 공기가 맑다는 표시라고 한다. '남산은 야경'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느지막이 도착해서 몇 시간 동안 가을꽃과 나무와 하늘을 실컷 즐겼다. 지구는 점점 아파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데... 빙하가 뻥뻥 떨어져 나가는 '기후비상사태'라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자연을 즐기고 살 수 있을까~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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