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LP시대 음악의 숲’은 오광식(54세)씨가 운영하는 음악전용 카페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큰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집에 전축과 라디오, 텔레비전이 있었고, 특히 형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럽게 이미자 남진 나훈아 김추자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고, 호기심에 LP판을 올려놓기도 했다. 고향인 경기도 문산에서는 AFKN이 잘 잡혔다. 영화음악, 컨트리 송 등을 자주 듣고 접하면서 관심도 커졌다.

LP를 수집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시절부터다. 음악다방, 음악 감상실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이사를 다니면서도 LP를 꼼꼼히 챙겼다. 때로 창고나 처마 밑에 보관해 둔 LP가 비에 젖어서 버릴 때면 속상해하기도 했다. LP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장르불문이다. 가요, 록, 클래식을 가리지 않는다. 음악의 숲에 있는 LP중에는 새로 사기도 하고, 더러는 지인들로부터 얻어온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님세대의 것부터 소장하던 것이다.

음악다방에서 음악도 틀어보고, DJ콘테스트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공부를 등한시한다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는 어쩔 수 없었다. 현재의 통인동에 음악의 숲을 낸 건 7년 가까이 됐다. 영업시간은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일요일과 법정공휴일이 휴일이다. 처음 3년은 휴무 없이 일했고, 실내흡연이 가능했던 때라 담배연기 가득한 곳에서 일하니 건강이 나빠졌다. 그런 까닭으로 현재는 영업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는 그가 부러웠다. 세상엔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자유롭게 원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가볍게 맥주 한잔 하는 곳, 이것이 음악의 숲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이곳에선 손님들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다 마시고, 나갈 때 계산을 한다. 안주를 권하지 않아서 초창기 때부터의 단골손님들도 안주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양주도 있지만 주로 팔리는 건 맥주고, 콜라 사이다 주스도 준비돼 있다.

손님 층은 사오십 대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20대부터 6-70대까지 고른 연령대가 찾는다고 한다. 60대의 손님들이 “쟤네들이 어떻게 이런 음악을?”하고 의아해하면 설명을 한다.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 아바에 심취했던 세대가 배호와 문주란을 즐겨듣는 부모세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연스레 익숙해졌던 것처럼 지금의 청년층도 그런 것 같다고. 그러면서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초창기엔 참여연대의 아지트 같았고, 가끔 신청곡으로 들어온 ‘임을 위한 행진곡’같은 민중가요를 틀기도 한다. 위치상 청와대쪽 근무자들도 자주 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보수니 진보니 해서 시비를 거는 경우는 없고, 음악자체로 즐기는 것 같다고. 얼마 전에는 새정치연합의 문재인대표와 박영선의원이 함께 다녀갔다는 귀띔도 한다.

즐겁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분도 있고, 단체로 노래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음악을 듣다가 울컥해서 우는 분도 있다. 처음엔 다른 사람의 음악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제지했지만 지금은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우는 손님이 많다. 우는 사람 중에는 여자보다도 남자들이 많다. 그분들이 음악으로 치유돼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이쯤에서 음악의 숲에 대한 정의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공간으로.

짓궂게 요즘 아이돌의 노래를 신청하는 손님도 있다. 아이돌이라도 아이유나 버스커 버스커처럼 LP판을 낸 가수의 음악은 적극적으로 틀어준다. 아이유의 LP에 있는 노래를 신청하면 김창완씨의 노래도 들려줘서 비교해보도록 한다. 이전에 알던 음악다방과 다른 건 LP 한 장을 올려놓고, 끝날 때까지 틀어주는 경우가 없다. 반드시 신청곡 한곡, 한곡씩만 트는 걸 원칙으로 한다. 오광식씨에게도 진상손님은 있으니 “왜 내가 신청한 음반은 없냐?”고 항의하는 이들이다. 방송국조차도 모든 LP를 갖고 있는 건 아닌데 하면서 혀를 찬다.

사장님과 한겨레의 인연을 맺어준 건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다. 친구의 권유를 받았고, 현재는 여러 종류의 신문을 구독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게 바로 한겨레라는 말을 듣고 주주인지를 물었다. 조금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주주는 아니지만 창간 때부터 꾸준히 구독을 했다고 한다. 한겨레의 나이와 같은 28년째 애독자인 것이다.

오광식씨는 진정한 음악애호가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금방 다시 음악이야기를 한다. 한겨레와의 인연을 소개하다가 어느새 영화음악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감독인 허진호, 김태영씨도 단골이며 영화배우 유지태 정우성 문소리씨도 자주 온다고 한다. 영화음악을 애초에 좋아했고, 또 영화관계자들이 자주 오니까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 잊었다는 듯이 씨네21도 창간호부터 구독중이라고 한다. 제호공모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대상은 받지 못했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지금 서촌에는 LP로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 여럿이다. 그들 대부분이 음악의 숲 고객이었으니 시쳇말로 원조인 셈이다.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마쓰오카 조지 감독, 코바야시 카오루 주연의 영화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잔잔한 미소를 짓는 마이스터와 김광식사장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 새정치연합 문재인대표의 신청곡,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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