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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핸들이 없으면 운전을 할 수가 없듯이 배에서 치가 없다면 배를 조종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치에 대해서 논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치라고 하면 나무판대기를 붙여서 만들면 된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치라고 하는 명칭이 조선시대의 기록으로 보면(1 참조)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7도는 치라 하였고, 경기도만 키라고 하였는데 어쩌다 모두가 키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민들은 지금도 치라고 한다. 또한 왜 치에 솔개치()자를 사용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분명 연구의 대상이다. 치를 크게 나누면 어선의 치와 화물선의 치로 나눌 수 있다.

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에 저작된 중국의 상고문헌에는 선박의 방향조정용 기구를 축()이라고 하다가 최초로 노를 기록한 석명(釋名, AD 100)에 이르러 처음으로 타(, )가 등장한다.

이러한 문헌 기록에 의하여 J니담씨도 중국에 최초로 치가 등장한 것은 1~2세기로 보았으며 이때까지 중국의 선박은 큰 도()를 고물에 장착한 선미대도(船尾大櫂)가 이용되었다고 했다.

그리스, 로마의 배들이나 바이킹선은 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활동범위는 지중해와 유럽북부의 북해(北海)연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시아로부터 치를 도입한 12세기 이후에야 비로써 바다를 가로지르는 횡단항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기원 전후에 백제인들이 한반도에서 주산군도로 건너간 것으로 본다면 백제선은 노, , 치를 구비한 해선(海船)이었음이 확실하다고 보겠다즉 백제선은 노, , 치를 구비한 범노형해선(櫓型海船)이고 중국의 배는 도형강선(櫂型江船)이었다.

이처럼 노와 치의 등장시기가 같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돛을 달고 항해를 한다면 노만 가지고는 방향을 조종할 수가 없다. 노와 치는 같은 시기에 등장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에 관한 기록이 1972년 경남 고성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책이 헌성유고(軒聖遺稿)라는 책이다. 이 책은 순조22(1822) 325~3월을 거쳐 426일까지 61일간의 사선 제작과정을 일기체로 남긴 책인데, 배의 설계도와 함께 치에 그림이 있다.

<그림 102> 헌성유고의 치( 출전 : 한국의 배)
<그림 102> 헌성유고의 치( 출전 : 한국의 배)

<그림 102>헌성유고에 실려 있는 치의 그림이다. 이 그림의 치를 보면 요즘의 화물선 치와 꼭 같다.

그러나 설명에서는 거머리 못을 사용하여 치분을 붙였다고 했는데, 파도가 없이 바다가 조용하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파도가 심할 때 이러한 치로 항해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특히 급선회를 할 때는 치는 엄청난 물에 저항을 받는데 그때도 치의 분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대로 항해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또한 항해 중 파도가 옆에서 온다면 배가 옆으로 밀리면서 치에는 물의 저항이 아주 커지는데 거머리 못으로는 치분이 그대로 붙어있기는 어렵다.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항해 중에 치목(鴟木)이 부러졌다는 기록들이 있다.

해사일기 10월조에는 200리쯤 가다가 치목에 붙은 분판(치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했으며, 부러진 치목에 노목을 묶어서 항해를 하였으나 속도가 떨어지고 배를 마음대로 운전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또한 숙종 37년에도 치목이 부러졌는데 당시에는 치목을 구할 수 있는 곳이 통영뿐이라고 하였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바다에서 항해하던 중에 치가 부러진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게 치목이 자주 부러진 것은 우리배의 단점이다. 즉 배가 너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목이 길어짐으로 생기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선장은 아주 노련한 사람이 아니면 항해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배를 만들 때 선체를 높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목을 통영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말은 그 당시에 그 배는 경상도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또한 경상도 지방에서는 통영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치목으로 쓸 나무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 완도에는 해발 644m로 완도의 주산인 상왕산(象王山)의 주 수종이 가시나무로, 치 나무로 제일 선호하는 나무가 산 전체에 자생하고 있어서 치 나무를 구하는데 이곳에서는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그림 103> 어선의 치
<그림 103> 어선의 치

<그림 103>에서 보듯이 치목은 치의 바탕이 되는 나무이고, 치분은 치의 너비를 맞추기 위하여 여러 개의 판자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림 103>을 살펴보면 치목에 치분을 붙이는 방법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치목과 치분에 각각 직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마치 쐐기를 박듯이 나무를 깎아서 박은다음 쇄기가 들어가 있는 곳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다시 나무를 박으면 붙여놓은 분이 절대로 떨어져 나기지 않는다.

이것이 어선의 치분 붙이는 방법이다. 치분을 붙이는 것은 거머리 못이나 다른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림 104> 촉꽂이 이음방식으로 배무이(출전 : 고대의 배와 할해이야기)
<그림 104> 촉꽂이 이음방식으로 배무이(출전 : 고대의 배와 할해이야기)
<그림 105> 화물선의 치(출전: 고대의 배와 항해이야기)
<그림 105> 화물선의 치(출전: 고대의 배와 항해이야기)

<그림 104>는 어선의 치분을 붙이는 방식과 같은 촉꽂이 이음방식으로 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림으로 보아 이 배는 용골을 쓴 첨저형의 배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105>는 전형적인 화물선의 치다. 위의 <그림 102>와 다른 것은 없지만 거머리 못 대신 판자를 양옆에 덧대어 못으로 고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점이 없다.

치 나무로는 앞에서 말했듯이 가시나무를 쓰는데 이 나무를 막 베어다 그대로 쓸 수는 없다. 나무의 성질로 인해 마르면서 실금이 많이 가기 때문에 그대로 쓸 수가 없어 나무를 베어다 바닷물 속에 최소한 1년 정도는 담가두었다가 사용하였다. 그래도 못 믿어서 치의 머리 부분에 철로 가락지를 만들어서 씌웠다.

70년대까지 사용하던 우리의 어선들은 치 구멍을 X자로 뚫어서 사용하였는데 평상시의 항해 때는 벗치로 꽂으며, 역풍항해 시에는 옥치로 꽂고 항해를 하였다.

여기에서 벗과 옥이란 말이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옥치란 치의 끝이 배의 밑쪽을 향하게 비스듬히 꽂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벗치란 배의 밖으로 비스듬히 꽂는 것을 말한다. 옥치를 꽂고 역풍항해를 하면 배의 밀림을 더 막아준다고 한다.

요트는 잘 모르지만 옥치를 사용한 것은 요트의 밑에 아래로 길게 돌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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