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자와  일본 자의 비교()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치수의 자를 사용하였으니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 수치를 어느 지역의 것에 적용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떤 배를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다는 근거가 확실하다면 그 치수를 적용하여 계산하면 현재의 미터법이나 척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이충무공전서 상의 치수를 통영의 목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와 곡척(31.22cm)을 적용하여 계산한 것이다.

<한국 자와 일본자의 비교표>

경남 통영의 한 목수가 소장한 것

1.78

전남 소안의 한 목수가 소장한 것

1.00

전북 위도의 한 목수가 소장한 것

1.05

경기 덕적도의 한 목수가 소장한 것

1.10

 

<이충무공전서 상의 치수와 비교>

항목

척도 명

저판

()

선수

()

중앙

()

선미

()

현판

()

익판

()

맨위

()

두께

()

통제영선치수

64.8

12

14.5

10.6

7.5

68

113

4

곡자 치수

66.8

12.4

15.0

10.9

7.7

70.0

116.4

-

통 영 척

37.5

7.0

8.4

6.1

4.3

39.3

65.4

 

[산출근거] 곡자: 64.8척×31.22cm÷30.303=66.8척
       통영척: 64.8척×31.22cm÷30.303÷1.78=37.5척
        이 자료는 박근옹 씨에 의한 것임.

 

경남 고성의 당항포애 전시되있는 거북선
경남 고성의 당항포애 전시되있는 거북선

위의 사진은 경남 고성의 당항포에 전시되어 있는 배로 저자가 만든 것이다. 이 책에서 거북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거북선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저자도 거북선을 제작해 보았으나 업자의 입장이라 도면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학자님들이 심혈을 기우려 만든 것이지만 기능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다.

배를 만들 때 중시하는 것은 물의 저항의 최소화와 복원력에 중점을 두는 것인데 둘 다 틀렸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는 부분인데 왜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를 했는지 묻고 싶다. 기능인들의 말도 좀 들어주었으면 한다.

이 배는 부자리삼이 없이 옆삼만으로 만들었기에 복원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거북선은 노(櫓)가 아닌 도(棹)가 설치되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2층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크기도 임란 당시의 배는 포혈이 6개였고, 1795년 이충무공전서가 써질 때는 포혈이 10개였으니, 60%를 적용하여 만든다면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크기는 아래의 표와 같았을 것으로 본다.

연대

치수

저판장

저판

선수

저판

중앙

저판

선미

삼의

높이

전체

길이

1795

64,8

12

14,5

10,6

7,5

113

1592

38,88

7,2

8,7

6,36

4,5

67,8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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