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국회, <민주시민교육 지원법> 통과를 촉구하며

민주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북서유럽국가처럼 유초중고 학교교육을 통해 길러질 뿐이다.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법률이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돼 있지만 곧 폐기될 운명이다.

발의된 법안이 상임위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된 것이 20대 국회까지 6차례가 넘는다. 관련 교육운동단체들은 21대 국회에 다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자 꿈꾸고 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학교교육은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인간상’을 추구한다. 나아가 ‘공동체 의식으로 소통하는 민주시민’을 지향하고 있다. ‘민주시민 양성’을 교육의 목적으로 명문화한 교육기본법 제2조(이념)에 충실한 표현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사회는 교육법에 명기된 교육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에는 매우 인색하다.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행 진보교육감들은 각 시도 조례와 규칙을 통해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정신이 담긴 민주시민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논쟁성 재현 수업과 교사의 가치판단 배제, 그리고 학생의 정치적 이해를 고려한 수업을 교실로 끌어들인 것이다.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다리기엔 너무나 시급한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학교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할 여건도 환경도 마련돼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사회가 비민주적인 환경에 포획돼 있고 교육과정 전반이 지식 중심의 입시경쟁교육으로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독립된 민주시민교과도 없을뿐더러 일부 앞서가는 학교장이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하고자 해도 교육과정 구성에서 창의체험활동 수업으로 시수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입시교육 탓에 뒤로 밀려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교육과정으로 변방에 위치한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 경기도 교육청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민주시민교육을 교육감 규칙이나 시도 조례로 제정하지 않은 지자체도 있다. 지자체마다 편차가 크고 학교현장은 학교장의 실천적 노력, 그리고 교사의 인식과 역량에 따라 더더욱 편차가 크다.

오는 2022년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진다. 이번에 민주시민교육 교과가 독립된 교과로 인정이 되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학교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민주시민으로 길러지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학교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결실을 10년이 지난 뒤에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1990년대 영국사회는 심각한 교육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다.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 그리고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된 때문이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1997년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크릭(Click)보고서를 채택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사회통합과 정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셈이다. 그 교육 효과가 2010년대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한다. 이번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 민주시민교육이 독립된 교과로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면 민주시민교육은 다시 다음 교육과정 개정까지 7년을 기다려야 하는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그 교육적 효과는 다시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이유이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차별과 혐오, 그리고 사회 갈등 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경제연구원(2016)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멕시코, 터키 다음으로 사회 갈등 지수 3위이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2018) 발표에 따르면 교육 분야 ‘비판적 사고 교육’은 140개 국가 중 90위에 멈춰 있다. 이젠 산업사회 경쟁교육이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21세기 다가오는 미래세대에 필요한 미래교육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모색해 가는 자주성과 타인과 공존하려는 공동체성이다. 이를 위해선 학교교육을 통해 품격 있는 개인주의와 자율성, 그리고 배려와 연대의식을 체득해야 한다.

이미 프랑스는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시민도덕교과’라는 독립교과를 만들어 2015년 개정까지 했다. 프랑스 초중고 교육과정에 의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이다. 독일 역시 나치즘의 폐해를 체험한 만큼 ‘정치교육’을 통해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비시켜 초중고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갈등을 줄이기 위해 ‘사회통합’에 방점을 찍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 결과이다. 21세기 오늘날 독일은 유럽연합(EU)를 이끄는 주도적 국가인 만큼 민주시민교육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선 법과 제도, 그리고 교육주체의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전교조, 교사노조연맹,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를 비롯해 교육운동단체들은 공대위를 구성해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민주시민교육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을 관념적으로 욕망하기보다 아이들을 소중한 존재로 키워내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학생의 자주성을 높이는 학생자치역량을 현장에서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학교교육을 탈바꿈시켜야 한다. 프랑스처럼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권한을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에 각각 분산시키고 교육의 주체인 만큼 의결기구로 격상해 학교운영에서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학습과정과 평가과정을 일치시키는 노력이다. 교수-학습과정상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하더라도 평가방식을 지금처럼 상대평가로 진행하게 된다면 이는 대단한 불일치이자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학교현장은 경쟁이 아닌 협력과 배려, 존중이 지배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수업을 협력과 배려, 존중의 방식으로 실천하고도 정작 학생평가에서는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현행 상대평가체제를 고집한다면 이는 매우 크나큰 모순이다. 근대산업사회에서 써 먹었던 경쟁교육체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미래세대 교육은 경쟁과 줄 세우기를 통한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자율을 기초로 상호 존중과 포용, 그리고 협력학습이 지배해야 한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역시 자율과 자기존중감, 그리고 협력학습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다형 수능시험체제를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처럼 비판적 사고를 전개해 나가는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존 객관식 선택형 상대평가방식을 절대평가방식으로 바꿔야 한국교육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평가방식의 전환은 아이들 삶을 바꾸고 수업형태와 학교 문화 전반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제주도, 서울 등 특정지역, 특정 상위 계층 학생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국제 바칼로레아(IB) 시험을 보편적인 한국형 바칼로레아(KB)시험 형태로 개발해 학교현장에 보급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세상을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로 바꾸는 공적 기구로서 교육과 언론, 선거의 역할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그 중에서 학교교육은 피를 흘리지 않고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공적 기구이다.

권위와 지시에 맹종하는 ‘신민(臣民)교육’은 21세기 학교교육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젠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과 교육투자, 그리고 전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시급한 시점이다.

▲ 2019년 12월 34세 최연소 핀란드 총리로 선출된 산나 마린(오른쪽에서 두 번째) 총리가 12월 10일 연정 내각을 발표하는 장면19개 내각부처 장관 가운데 12명이 여성이고 재무, 내무, 교육부장관은 산나 마린 총리처럼 30대이다.

핀란드 정치현실은 학생자치역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권장해 온 핀란드 민주시민교육의 결실이다. 산나 마린 총리는 27세 때 탐페레 시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30세 때 사회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한국사회 정치인들의 평균 연령대가 50대 중반인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출처 : 한겨레 TV)

모쪼록 21대 국회에선 민주시민교육법이 통과돼 학교현장이 크게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학교가기를 즐거워하고 교사가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학교환경을 바꾸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처럼 핀란드를 넘어서서 우리 한국교육을 전 세계가 부러워할 날이 머잖아 오리라 확신한다. 코로나19 위기 사태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과 180석 의회권력이라는 변화된 현실에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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