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저녁 8시 이후 통금은 여전하고, 레스토랑, 카페, 바 등은  포장판매만 가능하다. 병원, 식료품점, 약국 등 필수시설 외의 미장원, 체육시설 등 대부분 상점은 아직도 문을 열지 못했다. 실내에선 2인 이상 집합 금지(가족 제외), 야외에선 그나마 11명까지 2m 간격을 유지하며 모일 수 있다.

이렇게 하는데도 코로나는 잡히지 않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도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가 다시 10,000명을 넘었다. 전 인구 5배의 백신을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 백신접종완료 인구비율은 2.5%에 지나지 않는다.

출처 : 구글 데이터 캡처(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mid=%2Fm%2F0d060g&gl=KR&ceid=KR%3Ako&state=4)
출처 : 구글 데이터 캡처(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mid=%2Fm%2F0d060g&gl=KR&ceid=KR%3Ako&state=4)

보통 몬트리올 4월 날씨는 변덕스럽다. 하루는 쨍쨍하다, 그다음 날 눈이 오거나, 우박이 내리거나, 비가 쏟아진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기나긴 코로나와 매서운 겨울을 보낸 몬트리올 사람들을 달래주듯 전반적으로 4월 날씨는 포근하고 따듯했다.

다행히 실험실 생활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 실험실은 병원과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나를 비롯한 많은 연구원은 병원 관련 종사자로 분류되어 1차 백신을 접종받았다.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 학생은 외국인이거나 캐나다인이어도 몬트리올 출신이 아니다. 코로나로 생긴 새로운 격리 지침들은 많은 학생을 더욱더 외롭고 지치게 했다. 친구들과 같이 나가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고, 집에 초대하기도 어렵기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고립감은 점점 심해졌다.

그나마 일을 나갈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일을 나가면서 나와 같은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다. 일을 나갈 수 있다는 거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다. 심지어 보스 스테판과 얘기하고 만날 수 있는 것에도 감사했다! ㅎㅎㅎ

이렇게 코로나는 서로 간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실험실 친구들과 여러 번 모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야외에서다. 2m 간격을 유지하면서... ㅎㅎ

지난 금요일은 날씨가 20도까지 올라갔다. 같이 공동연구를 하는 다른 실험실 친구 Joey가 갑자기 연락했다. “지산, 있다가 5시 공원에서 맥주 콜?”

날씨도 좋고~ 보스 스테판도 없고~ 금요일이고~ 가뜩이나 들떠있는 마음을 더 붕 뜨게 만들었다. 바로 답장 했다 “그럼! 콜콜!” 그리고 당장 같은 실험실에 있는 클라우디아에게 “공원에서 맥주 콜?”이라고 물어봤다. 클라우디아도 기다렸다는 듯 “너무 좋지!”라고 흔쾌히 답했다.

일을 일찍 마치고 Joey랑 그쪽 실험실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사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둥그렇게 원을 그려 2m 간격을 유지하고 앉았다. 곧 다른 실험실 사람들도 합류해서 10명이 더 둥그렇게 큰 원을 그려 앉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 옆 사람하고만 대화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하고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대화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람들과 모여 얘기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행복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4시간 동안이나 앉아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클라우디아도 남자친구와 함께 강아지 Fin을 데리고 중간에 참여했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즐거웠고 뭉클한 시간이었다.

클라우디아 강아지 Fin
클라우디아 강아지 Fin

그런데... 사람들 모임이 고팠던 건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4월 19일은 내 생일이었다.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까 했는데... 고맙게도 맘 따듯한 랩 친구 팅이 그래도 와인하고 케이크는 하자고 해서 실험실에서 소소하게 파티를 하기로 했다. 멀리 떨어진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도 한국에서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고 실험실 사람들하고 점심을 사 먹으라며 카드번호를 보내주었다.

생일 당일 보스 스테판이 아침부터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깔깔깔 웃으며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볶을지 농담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은근슬쩍 “스테판~ 우리 있다가 4시 정도에 와인하고 케이크 먹으려고 해요. 시간 되면 참석하실래요?”라고 물었다. 스테판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응? 오늘 무슨 날이야?”라고 물었다. 내가 조금 쑥스럽게 “오늘 내 생일이에요!”라고 했다. 순간 스테판이 당황하며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아 그래? 미안. 내가 이런 날짜나 이벤트에는 둔감해. 4월 19일이 생일이구나.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갑자기 진지하게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내가 웃으며 “괜찮아요~ 나도 이런 날짜에 둔감한걸요. 그래서 내가 생일이라고 먼저 말해주는 거예요! ㅎㅎ”라고 대답했다. 스테판도 그제야 웃으며 “그래그래 그래야지! 이런 이벤트를 하는 건 중요해. 4시에 너무 좋지. 참석해야지”라고 했다. 내가 더불어 “아 그리고 남자친구가 점심을 산다 해서, 점심은 1시 정도 랩에서 할 것 같아요. 시간되면 오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스테판은 또다시 “아 그럼, 너무 좋지”라고 답하고 사무실로 갔다.

1시 뜨끈뜨끈한~ 피자가 실험실로 배달되었다. 스테판과 더불어 실험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떨어져 앉아 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행복해 보여 마음이 따듯해지며 외로울 것 같았던 생일이 더는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정확히 3시 58분, 갑자기 스테판이 “그래, 오늘 생일인 친구 어딨어~”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실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선 아직도 일을 하는 나를 보며 “왜 아직도 일해~ 와인 언제 마실 거야”라고 소리치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30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하자, 약간 실망한 표정을 보이며 사무실로 다시 올라갔다. 다시 정확히 4시 28분 스테판이 내려와 “그래 이젠 가야지?”라고 재촉하며 팅보고 빨리 와인을 따라고 했다. 그리곤 후다닥 우리를 이끌고 실험실 밖으로 향했다. 스테판은 아침에 내가 그 소식을 전한 뒤, 생일 당사자인 나보다 더 신이 난 듯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단 거는 안 먹는다고 했었는데.,. 이미 손은 제일 먼저 케이크에 가서 혼자 집어 먹고 있었다. ㅎㅎㅎㅎ 일만 죽어라 하는 팅도 아침부터 방방 뛰어다니며 와인도 따고, 케이크도 자르고 신이 난듯했다. 나만 사람이 고팠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스 스테판이 찍어 준 생일파티
보스 스테판이 찍어 준 생일파티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따듯한 햇볕을 맞으며 와인과 케이크, 과자를 먹었다. 비록 레스토랑이나 바가 아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실험실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이 모든 걸 만족스럽게 했다. 감사했다. 그렇게 즐겁게 지내고 난 뒤, 실험실원들 모두 앞으론 좀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갖자고 했다.

코로나는 사람 간 물리적 거리를 2m 두었지만, 그 간격은 오히려 삶을 살면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만든 것 같다. 유명한 맛집, 이국적인 여행, 화려한 파티는 우리 삶에서 없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서로 존재 자체가 행복이 되고 힘이 되었다. 이런 좋은 존재들을 옆에 두고 있는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 양성숙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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