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은 서울에서 가까운 양주에 있다. 해발 470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얕보면 안 된다. 산봉우리들이 모두 가파른 암벽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세 봉우리인 상봉, 상투봉, 임꺽정봉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바위 길에 심장이 덜덜 떨리는 산이다. 양주시에서 층계와 쇠안전망 등을 꼼꼼히 해놓아 올라갈 수 있지 그런 것이 없다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하다. 임꺽정 생가가 있고 임꺽정이 이곳 청송골을 근거지 삼아 의적(?) 활동을 했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우리는 양주 향교 근처에서 시작하여 둘레길을 잠깐 걷다가 백화암을 지나 능선을 탔다.  백화암으로 가는 둘레길에서 이름도 예쁜 제비꽃을 만났다. '자주알록제비꽃'이다. 잎맥을 따라 흰 줄무니가 있는 제비꽃을 알록제비꽃이라 불리는데, 요 녀석은 꽃색이 유난히 선명한 자주색이라 '자주알록제비꽃'이라 부른다. 

자주알록제비꽃
자주알록제비꽃

둥그렇게 모여 앉은 양지꽃도 보았다. 마치 코로나19로 거리두기 하며 피어있는 듯...  

백화암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700m 정도 되는데, 경사가 심한 돌무더기 길이라 좀 힘들다. 이젠 무릎을 심하게 쓰는 산행은 부담이 된다. 다음엔 양주시청에서 시작하는, 능선을 천천히 타는 코스를 택해 가야겠다.

능선에 올라서니 의정부와 양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불곡산 5보루라는 산성 흔적도 보인다.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봉우리에 산성을 쌓았다. 암반에 돌을 올려놓아 쌓은 것이다. 주봉인 상봉이 6보루, 상투봉이 7보루, 임꺽정봉이 8보루로 마지막 보루다.

5보루에 올라서니 불곡산에 있는 기암괴석을 찾아보라고 나온다. 동물의 왕국인지 8개 기암괴석 중 5개가 동물 모양이다. 우린 몇 개나 찾아볼까?

상봉 도착 전 상봉을 마주 보고 있는 바위 봉우리다. 진달래가 받쳐주고 소나무가 친구 하니 참으로  아름답다. 꼭대기 근처에 긴코원숭이가 내 눈엔 보인다. 

상봉 바로 밑에 있는 펭귄 바위를 만났다. 그런데 작은 태극기가 꽂혀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수락산, 불암산, 북한산, 도봉산에 올랐을 때 정상에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여기는 상봉 정상 아래  펭귄 바위 옆에 있다. 왜 누가 이곳에 꽂아 놨을까? 태극기를 보면 뭉클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요샌 좀 조심스러운 거리를 두게 된다. 슬픈 일이다.  

상봉을 만났다. 상봉까지는 길이 험하지 않다. 

상봉을 지나면서 만난 봉우리에 돌고래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나 숨어있다. 저 멀리 뾰쪽한 상투봉이 보인다.  

멋진 풍경이 상투봉으로 향하는 길을 장식해준다.  도롱뇽 한 마리도 바위를 올라타고 비상하려한다. 

불곡산 7보루인 상투봉에 거의 도착했다.  

고구려 때 쌓은 산성은 다 무너지고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라고 한다. 이상하게 '고구려'란 말만 들어도 왠지 숙연해진다. 우리 땅..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인데... 고구려 문화유적이 우리와 너무 멀게 있어서 그럴까? 그 기상이 꺾여버리고만  쪼그라든 나라가 안타까워 그럴까? 

상투봉이다. 그야말로 바위 한가운데 있다. 

상투봉에서 마주 내려다보이는 바위도 멋지다. 

이런 길을 내려가야 한다. 쇠안전망과 밧줄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았다. 인정사정없이 푹푹 박은 쇠막대에 바위가 아프지는 않겠지만....  멀리서 보아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임꺽정봉일까? 생각보다 너무 가깝다.  

또 하나 찾았다. 유명한 생쥐 바위다. 정말 생쥐처럼 생겼다.  

바로 위에 올린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이다. 420m의 무명봉(?)이라고도 한다. 70~80도 되는 암벽지대를 줄과 쇠기둥에 의지해 올라가야한다. 전망은 탁 트이고 올라가는 길은 이리 쉽지 않으니... 임꺽정이 관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으며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꺽정봉은 이 무명봉 뒤에 있다.   

막 지난 무명봉 안쪽엔 이런 바위도 있다. 숨어들어 갈 곳 없나 하고 땅을 파고 있는 큰 두더지 바위로 보인다. 

임꺽정봉 가기 바로 전에 만난 물개바위다.  풍화작용의 오묘함을 한 번 더 느낀다. 

드디어 험하기로 소문난 임꺽정봉에 도착했다. 

임꺽정봉에는 임꺽정을 간단히 설명하는 푯말이 있다. 그곳에 도적의 '도'자를 누가 지웠다. 하지만 아랫글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를 우리는 도적의 괴수가 아니라 영국의 로빈훗과 같이 민중의 대리만족을 시켜준 의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조선왕조는 중간에 한번 뒤집혀야 했는데.... 고여 썩은 물이 너무 오래 되어 결국 망조가 들고 일본에 먹혔다. 지난 역사에 가정은 아무 소용이 없지만... 뒤집혀 새 물이 들어갈 기회를 수차례 놓쳐버리곤, 친일 친미에 기댄 기득권자들이 아직까지 나라를 휘두르고 있는 꼴을 보고 있다. 

임꺽정봉을 막 내려와서 만난 남서쪽 사면이다. 천연요새에 진달래가 수줍은 듯 피어있다.   

요 녀석은 하마 바위 같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하마 얼굴이다. 

왼쪽은 내려다 본 층켸, 오른쪽은 올려다 본 층계
왼쪽은 내려다 본 층켸, 오른쪽은 올려다 본 층계

이런 층계가 없으면 임꺽정봉 등반은 어림도 없다. 한참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그 옛날 임꺽정과 부하들은 어찌 저 산을 타고 다녔을까? 등산화도 없어 짚신 신고 다녔을 텐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곡산 능선을 지나면서 진달래, 벚꽃, 복사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 '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다.  

먼저 진달래다.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부른다. 두견새가 피를 토하면서 밤 새워 울다가 꽃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는 이야기에서 이름 붙었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은 1개다.  붉은 암술은 하나만으로도 10개의 수술을 압도한다. 마치 두견새의 피 토함 같이.... 

복사꽃이다. 갈색 꽃밥을 가진 수술은 다수이고 노랑 머리를 가진 암술은  하나다. 노랑 암술이 많은 수술들 사이에서 고운 빛깔을 뽐낸다. 

다음은 벚나무다. 잔털벚나무라고 하는 분도 있다. 벚꽃도 복사꽃과 같이 다수의 수술과 1개의 암술로 되어 있다. 꽃가루를 생성하는 노란 꽃밥을 가진 수술은 연둣빛 머리를 가진 암술을 둘러싸고 있다.

암술과 수술이 없다면 씨를 만들 수 없다. 나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꽃잎보다 암술과 수술이다. 그런데 이 두 '술'로 장식한 꽃은 미학적으로 완벽하다. 생존 전략이 美를 창조한다. 생명의 본질은 다 같나보다.    

 5개의 꽃받침이 있는 벚꽃은 뒤태도 곱다. 

굉장히 흔한 꽃인 민들레다. 공기 좋은 산에서 봐서 그런지 색이 더욱 진하다. 민들레는 100개가 넘는 여러 낱꽃이 꽃대 끝에 모여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이 낱꽃은 혓바닥 모양으로 생겨 설상화라고 한다. 설상화가 모인 한 송이 꽃을 아이들 머리 같다 하여 두상화라고 한다. 이 설상화 각각에 수술 5개, 암술 1개가 있다.

5개의 수술은 1개의 암술대 아래 부분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술'은 암술대와 갈고리 모양의 암술머리다. 민들레 역시 꽃을 장식해주는 '술'이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허전했을까?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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