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이면 항상 생각나는 산이 있다. 덕유산이다. 이맘때면 덕유산 중봉을 중심으로 한 덕유평전에는 원추리가 무리지어 핀다. 덕유평전 원추리 군락은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할 정도로 멋지다. 신비한 기운을 머금은 구름 아래 드러난 은근한 자태는 사람 마음을 홀려 손짓한다. 올해도 7월 11일, 몸과 마음이 덕유평전으로 내달렸다.

2012년 7월 덕유평전
2012년 7월 덕유평전

해발 1,520m에 있는 설천봉까지 곤돌라를 타고 갔다. 이 곤돌라는 1997년 설치되었다. 2001년에는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 등산로가 만들어졌다. 설천봉에서 걸어서 20분이면 향적봉까지 갈 수 있다. 너무나 쉽게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코스가 개발됨에 따라 탐방객들이 많이 증가했다. 코로나 전, 연간 육칠십만 명이 넘는 탐방객들이 이 곤돌라를 이용했다고 하니....

수월하게 1,500미터까지 올라가는 무노동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재간은 나도 없다.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는 일단 들어서면 그 산이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다. 설악산도 지리산도 마찬가지일 거다. 기계문명에 길들여진 인간들이라 입으로는 산에 대한 예의니.. 자연보존이니를 부르짖어도 몸은 편함을 따라가게 되니까...

설천봉에서 
설천봉에서 

직선으로 거의 3km에 가까운 거리를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만 가도 이런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또 구름이 몰려온다. 덕유산에 가면 늘 구름이 함께 한다.  내가 구름을 부르는 건지.. 덕유산이 친구를 부르는 건지....

설천봉에서 
설천봉에서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길은 나무 층계와 마대 깔개를 깔아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잘 정비해놓았다. 등산로 이탈 등 무분별한 탐방으로 인한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방법이리라…. 평소 같으면 줄을 서서 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아 스트레스 지수 1위 산인데…. 우리는 좀 일찍 도착하고 코로나로 사람이 없어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향적봉
향적봉

곤돌라를 타고 올라오는 80% 사람들은 향적봉까지만 오르고 “와~~ 정상이다.“하고는 기념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간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그 많은 사람이 20분 거리의 중봉까지 간다면 더 많은 파괴를 불러올 터인데.

사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길은 전망대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주로 지정된 좁은 탐방로를 따라가는 길이라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길은 아니다. 향적봉은 해발 1,624m로 남한에서 네 번째 높은 산이라 당연히 정상은 뻥 뚫리게 시원하다. 멀리까지 겹겹이 늘어선 산의 능선이 수묵화를 360도 펼쳐놓은 것 같다.

진짜 풍광은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가는 길과 중봉 근처, 중봉에서 백암봉을 향해 내려가는 길에 있다.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에 원추리가 마중 나와 있다.  

향적봉에서 중봉가는 길에서
향적봉에서 중봉가는 길에서

향적봉에서는 파란 하늘이 조금이라도 나왔는데... 중봉으로 가면서 구름이 밀려왔다.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에는 고독한 고사목이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니... 내가 죽고도 너는 그 자리에 있다는 거겠지.. 

드디어 덕유평전에 도착했다. 덕유평전은 아고산대(亞高山帶)에 있다. 아고산대는 산지대(山地帶)와 고산대(高山帶) 사이에 있다. 보통 해발 1,000m대 지역으로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은 지대다.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소백산 비로봉 등이 아고산대다. 원추리는 아고산대에서 잘 자란다. 지리산 노고단, 소백산 비로봉 등이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어 사는 아고산대다. 

덕유평전
덕유평전

 

덕유평전
덕유평전

원추리는 백합과 여러해살이풀로 6~8월에 꽃이 핀다. 산지 계곡이나 산기슭에서 잘 자란다. 키는 50~100㎝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20~30종이 자라는데 우리나라에는 원추리, 큰원추리, 각시원추리, 노랑원추리, 골잎원추리, 애기원추리, 백운산원추리, 태안원추리, 홍도원추리 등 약 9종이 자생하고 있다.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 안내판에는 이곳에 '각시원추리', '골잎원추리', '노랑원추리' 3종류가 핀다고 쓰여 있다. 노랑원추리와 골잎원추리는 레몬색이나 연한 노란 색이다. 또 노랑원추리와 골잎원추리는 저녁 4시 이후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야간개화형이다. 우리는 12시에서 4시 사이에 이 꽃을 만났으니 주간개화형인 '각시원추리'라는 생각이 든다.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원추리는 핀지 하루 만에 시든다. 그래서 영어로는 'Day lily'라고 부른다. 덕유산 원추리는 한 포에 여러 꽃봉오리(3~5개)가 밀집해서 들어 있다. 한 송이가 시들면 다른 송이가 피어 올라와서 계속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열매는 9~10월경에 달린다.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보통 원추리는 꽃자루(꽃이 달리는 가지)가 분지형(가지가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오는 형으로 3회 이상 분지하며 꽃은 8-14개가 달림)이 많다. 국내 자생 원추리 중 분지형이 아닌 원추리는  '큰원추리'와 '각시원추리'밖에 없다. 덕유산 원추리는 분지형이 아니다.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산 원추리가 안내판 대로 각시원추리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각시원추리는 6~7월에 피고 큰원추리는 7~8월에 핀다. 둘 다  꽃줄기가 높이 40-70cm다. 포는 둘 다 난형이다. 큰원추리 포는 녹색 혁질이고 각시원추리의 포는 연두색 막질이라 한다. 덕유산 원추리는 포가 녹색 혁질에 가깝지 싶다.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덕유평전에서 만난 원추리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에 의하면 '큰원추리는 각시원추리에 비해 꽃줄기가 잎보다 길고 꽃차례가 짧다. 꽃자루가 없고 포의 끝이 꼬리 모양으로 뾰족하므로 구분된다'고 했다. 또한 각시원추리는 '꽃차례는 짧고 2개로 갈라지며 몇 개의 꽃이 총상으로 달리고 꽃자루는 짧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덕유산에서 만난 원추리는 짧은 꽃자루를 가지고 있는 '각시원추리'보다는 꽃자루가 없는 '큰원추리'에 가깝지 않나 싶다. 

덕유평전 원추리 향기에 취하여... 
덕유평전 원추리 향기에 취하여... 

한 논문1에 의하면 큰원추리나 각시원추리나 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주통신원 이호균의 풀꽃나무광 블로그 '큰원추리' 글(https://blog.daum.net/ihogyun/2770162)에 가면 '중국식물지'에는 '은은한 향이 있다'고 기재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렇다. 내가 만난 덕유산 원추리는 주변까지 퍼지는 진한 향은 없지만 몸을 기울여 꽃 가까이 코를 대보면 은은한 향이 났다.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향수 내음 같았다. 맡고 싶고 또 맡고 싶은 중독성 있는 향이라 수없이 꽃에 몸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자연의 향기에 듬뿍 취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 논문을 소개해주시고 자생 원추리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신 '숲과문화연구회' 황호림 선생님과 늘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주주통신원 이호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 각주 1 : 한국산 원추리속(Hemerocallis)의 분류학적 연구(황용, 김무열)

- 참고 사이트 1. 이호균 주주통신원의 풀꽃나무광 블로그
  https://blog.daum.net/ihogyun/2764134 // https://blog.daum.net/ihogyun/2770162

- 참고 사이트 2.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74XXXXX52409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74XXXK006414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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