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배신의 전모

이제 배신자의 전모가 드러났다. 나와 가까운 위원들 모두가 배신자들이다. 그들은 왜 나를 배신한 걸까? 나와 그렇게 가깝게 지내면서 내게 섭섭한 거라도 있었던 걸까? 돌이켜보니 그들이 나의 카톡 대화에 대한 처음 반응들이 수상했다.

한 명은 다 지난 일이니 잊으라했고, 또 한 명은 바쁘다는 핑계를 댔고, 또 다른 한명인 술친구는 오히려 내게 역정을 냈던 것이며, 대학 후배는 본인은 전혀 무관한 척 했던 것이다. 그게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이제 확연하게 밝혀졌다.

이제 그들을 만나봐야 한다. 그들에게 배신의 사유를 들어야한다. 살 떨리는 일이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정도 머리를 식히고, 금요일 경에 한 명씩 접촉해보기로 한다.

배신의 아픔보다는 배신의 이유가 더 궁금했다. 우선 대학 후배인 간사부터 알아봐야 한다. 얼마나 심각한 일이 있기에 나를 배신했는지 그 사유를 들어봐야 한다. 이건 휴대폰으로 통화하거나 카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직접 만나서 그 얼굴과 눈을 보면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금요일에 만난 후배는 아직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내가 배신자의 전모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김원희 위원 등 세 명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그대로 후배에게 이야기 해주자, 후배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그럴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 그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후배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실직고했다. 내용인 즉은 이렇다.

후배는 50대 초반의 싱글인데 이 카페에서 맘에 드는 싱글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싱글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 여성이 자기와 그만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나의 글 삭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일요일 아침이라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카페에 음악 감상문을 올리던 어떤 남자에 대한 얘기를 하더니 그 남자와 만나기로 하였다며 자신과 그만 만나자고 일요일 아침부터 메시지를 보내서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갑자기 어떤 회원이 나의 글에 의문을 제기하여 긴급회의가 열렸고, 나의 다른 글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같이 내려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충분한 토의 과정 없이 찬반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는 여자의 갑작스런 이별 통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하던 중에, 글 삭제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나의 글에 대한 찬반투표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생각이 온통 그 여성에게 가 있다 보니 정신없는 상태에서 찬성을 누른 것이다. 그러나 찬반 투표를 마치고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자신이 여자문제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해서 잘못 눌렀다는 것을 간사로서 차마 밝힐 수는 없어 안절부절 했고, 그 일로 인하여 덤벙대다가 나의 십여 편에 이르는 글도 날아갔다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 잘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 여인이 변심을 했다면, 그 때 남자의 마음은 몹시 흔들리고 방황하기 십상이다. 멘탈 붕괴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나의 글 삭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보니 정신 줄을 놓을 만도 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코미디 같은 현실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후배는 실실 웃고 있었다. 비록 그런 일이 있었지만 월요일에 나의 글이 다시 게재되기로 하여 마음을 놓았으며, 음악 감상문을 올리는 남자에게 기울었던 그 싱글 여성도 다시 마음을 돌이켜 자신과 계속 만나기로 했다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랬으면 됐다. 싱글남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에 드는 싱글녀를 만나는 것 외에 그 무엇이 또 있겠는가?

후배의 사정을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풀렸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배신자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배신 사유를 들어야 한다. 추적자의 멋진 마무리를 위해..

나는 술친구인 박사장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왜 그랬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처음에 당황해 하더니 내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좀 어이가 없었다.

문제의 글 삭제 결정이 있기 전날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전자 대리점 사장인 박 사장은 거래업체와 중요한 납품 건이 있었는데 일이 잘 성사되는 바람에 3차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 몽롱한 정신으로 이불속에 누워있다가 운영위원회가 긴급 소집되어 밴드에서 투표를 하는데 그냥 나의 글에 대한 투표라서 잘 알아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비몽사몽간에 인터넷 밴드에서 무조건 찬성을 눌렀다는 것이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몽롱한 상태에서 잘못 눌렀다고 밝히기에는 체면이 안 서고 하여 말도 뭇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 친구도 결국은 후배와 비슷한 실수로 그리 된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실수로 역사가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은 시나리오 작가 배철성 위원을 만났다. 이 사람은 나를 또 한 번 실소하게 했다. 자신은 삭제에 반대하는 표를 누른다고 눌렀는데 순간적으로 손가락이 잘못 눌러져 찬성을 눌렀다는 것이다. 다시 하자고 할까, 생각했지만 설마 찬성이 많지는 않겠지 하며 잠자코 있었는데, 4대 3으로 찬성이 된 걸 보고 자신도 놀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대작을 쓰겠다고 벼르는 통 큰 배 작가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절대 뒤에서 딴 짓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잘 알기에 믿을 수밖에 없다. 대작을 쓰려는 사람은 가끔 작은 실수를 하곤 한다. 어쩌겠는가?

착잡했던 추적자의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스포츠댄스 강사인 윤영란 위원만 남았다. 과연 윤위원도 실수를 했을까? 아니면 윤영란 위원이야말로 나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 걸까?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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