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반전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한재숙 교수가 온화한 표정으로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됐다는 사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나를 공격하려면 먼저 사과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아니 뭐, 다 끝난 일인걸요."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받는다. 중요한 건 다음에 있을 공격이니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교수가 예상치 못했던 말을 한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 날 저희 셋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다들 왜 그러는지 몰라요, 진짜!!!"

한재숙 교수가 일요일에 있었던 결정에 대해 몹시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을 한다. 의외의 발언이다. 자기들이 나의 글이 삭제되는데 찬성해놓고 이제 와서 나를 회유라도 하겠다는 건가? 내가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자 이번에는 정일섭 수필가가 거든다.

"사실 우리들은 강 박사님의 연재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거든요. 글재주도 있으시고."

정일섭 작가가 혹평은커녕 나를 치켜세운다. 점점 이들의 꿍꿍이가 궁금해진다. 이런 말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다음에 나를 당황케 할 비장의 카드가 있을 것이다. 의아해하고 미심쩍어하는 나를 보더니 학원 강사인 김원희 위원이 휴대폰을 꺼내든다.

"이것 보세요. 그날 우리 셋이 나눈 카톡 대화 내용인데, 천천히 한 번 보시지요."

나는 김위원이 내민 카톡 내용을 들여다본다. 의외의 내용들이다. 나의 글 전부를 삭제하자고 하는 사람들을 성토하는 대화가 주류이고, 나의 글을 옹호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연재물중에 문제가 제기된 <9편>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나머지 글들은 내리기 아깝다는 대화가 줄을 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대 반전이다. 나의 글을 내리는데 찬성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는 결정적인 물증이 제시된 것이다. 혼란스럽다. 이게 사실일까?

다른 두 명도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일요일에 있었던 카톡 대화 글을 보여주었다. 모든 게 사실이다. 그들은 나의 글을 적극 옹호했으며, 문학적으로도 괜찮은 글이라며 전체 글을 삭제하는 것에 극구 반대한 것이다. <9편>만 내리면 되고 다른 글들은 별 문제될 게 없다는 게 그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친했던 세 명은 물론이고, 그렇게도 믿었던 대학 후배인 간사까지 나를 배신했다는 말이 된다. 눈앞에 펼쳐진 엄연한 현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쁘다.

나의 글 삭제에 찬성할 것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이 나의 글을 옹호하고, 나를 위해 변론을 했다고 하니 날아갈 듯이 기쁘다.

그런데 슬프기도 하다.

대학 후배인 간사를 포함하여 나를 지지할 것으로 여긴 사람들 4명 모두가 나를 배신한 것을 알았으니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슬프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