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물꼬가 트이다

이래서 사람을 겉만 봐서는 안된다고 하는가보다.

정일섭 수필가는 원리원칙주의자이다. 그러니 나의 글 전부를 삭제하는데 원칙적으로 반대했을 텐데도 나는 그를 의심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내가 평소에 원리원칙만을 따지는 사람에 대해 편견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까탈스럽게 보이는 한재숙 교수는 그 까탈스러움으로 인해 나의 글이 삭제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긴 것이다.

또한 논술학원 강사인 김원희 위원은 단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편견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사람을 보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애처롭다는 듯이 쳐다보던 한재숙 교수가 나에게 어드바이스를 한다.

"글은, 글로 복수하세요!! "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나 한교수의 충고는 그 후 나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

문학평론가인 정일섭 작가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인다.

"누구나 글을 우수하게 쓸 수는 없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진실하고 소박하게 쓸 수는 있어요. 그런 글이 싫증나지 않고 고스란히 마음에 다가오고요. 그런 점에서 강 박사님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학원강사인 김원희 위원도 나를 따뜻한 눈으로 보며 한 마디 거든다.

"거기에 덧붙인다면요. 작가는 작품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인물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글의 소재는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부터 매일 뜨는 해나 노을까지 무궁무진하죠. 주제는 우정, 가족관계, 어린 날의 추억 등 매일 겪는 일상사부터 모두가 될 수 있어요. 강 박사님은 소질이 있으세요."

이들로부터 격려의 말을 듣자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줄만 알았던 정일섭 수필가, 까탈스럽게만 보였던 한재숙 교수, 그리고 인간미가 부족한 듯 보였던 김원희 학원강사.

이들과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진정으로 따스한 마음을 지닌 휴머니스트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헤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도 그 일을 안타깝게 여긴다며 다시 한 번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인데 내가 그들을 몰라봤던 것이다. 그들과 다음에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이들로 인해 추적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들이 삭제에 반대했으니, 찬성한 사람들은 이들 셋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이다. 그렇게 믿었던 대학 후배인 간사와 술친구를 비롯한 나와 가까운 사람들 4명 모두가 배신자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은 늘 냉정하고, 추적자는 그 냉정한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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