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어지는 접촉과 추적자의 고뇌

아번에는 시나리오 작가 배철성 위원에게 카톡으로 말을 걸어본다.

"배 작가님! 대작을 쓰신다더니 잘 되어가고 있나요? " 살짝 반응을 떠본다.

"아, 강 박사님 ~ 무슨 일 있으세요?"

이건 또 무슨 반응이 이런가? 아예 안면몰수 작전인가? 까놓고 물어보기로 한다.

"지난번 운영위원회에서 글을 삭제했다가 다시 싣기로 한 일이 있었잖아요. 그 일에 대해 배 작가님의 개인적인 의견이 듣고 싶어서요."

"그 일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나는 그날 바쁘기도 했고, 요즘 바빠서 신경 쓸 여력이 없었거든요."

찬성했다는 건지 반대했다는 건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좀 더 대화를 이어간다.

"배 작가님은 프로라서 좀 다르실 줄 알았는데..."

"그렇기는 한데, 제가 요즘 바빠서요. 그럼 이만 ."

대놓고 회피한다. 그러나 진짜 바빠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좀 더 알아봐야 한다. 추적자의 일은 고달프다. 그래도 예서 포기할 수는 없다.

배신자 명단의 마지막 한 명은 술친구 박형두 사장이다. 이 사람을 의심하면 내가 나쁜 놈이다. 그러나 일요일의 사건 이후 이 친구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대화를 나눈 일이 없다. 안부도 물을 겸 일단 접촉해 본다.

"박 사장! 요즘도 사업 잘되지? "

"그래, 강 박사, 별일 없고?"

아니, 술친구인 이 녀석도 지난 일요일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나보다.

"그런데 말이야. 박사장, 너무한 거 아냐?"

괜히 술친구에게 화풀이를 해본다. 박사장 말고 다른 누구에게 화풀이를 한단 말인가?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거지.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친구가 나에게 화를 낸다. 정말 아무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이러는 걸까?

"아니, 지난 일요일에 내 글이 삭제된 일이 있었잖아? 그때 자네는 뭐하고 있었나?"

이건 화풀이가 아니라 거의 취조에 가깝다. 친구니까 가능한 일이다. 다른 위원에게 이렇게 말했으면 벌써 싸움이 나고도 남았을 일이다.

"말이 지나친 거 아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다들 찬성하는데 난들 어쩌겠냐 말이야."

갑자기 머쓱해진다.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삭제하자고 하는데, 이 친구가 반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일단 꼬리를 내린다.

"그래,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별 수 없었을 거야. 그래도 너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괜히 미안한 마음에 친구 입장을 적극 옹호하고 만다. 이 친구는 역시 아니다. 카톡 대화를 마치고, 이들과의 카톡 내용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윤영란 위원은 날더러 그 일을 잊으라고 했는데, 어쩌면 윤영란 위원이야말로 그 일을 머리에서 지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이 빨리 잊고 싶어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의 일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하루빨리 잊고 싶은 것일까?

배철성 위원은 바쁘다고 했는데,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일부러 바쁜 척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술친구인 박형두 사장이 나에게 화를 낸 것은 자신이 떳떳치 못한 무엇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방귀뀐 놈이 성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때만 하더라도 간사를 맡고 있는 대학 후배를 의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을 한번 의심하면 끝이 없는 법이다. 평상시 나와의 관계로 치면 이들 중 누구도 배신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의심할 만한 구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며, 또 그렇다고 해서 그 의구심이 배신에 대한 확신이나 정황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추적자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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