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상치 못한 도전

확증도 없고 심증도 없는데 어떻게 배신자를 가려낼 것인가?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묘안이 없다. 꾸준히 관찰하며 추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추적은 장기적인 과제가 되고 만다. 언제까지 기약 없이 추적할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건이 있은 지 삼 일째인 수요일 즈음에 누군가로부터 나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글 삭제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여겨지는 세 명중 한 명인 학원강사 김원희 위원으로부터다.

이 여인이 무슨 꿍꿍이로 나를 보자고 하는 걸까? 내 글을 삭제한 것으로도 모자라 나를 힐책하는 비판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내 글이 어떻다고 그렇게 삭제에 앞장서고 나를 불러내기까지 하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후배인 간사에게 전화해본다. 몇 번이나 했지만 받지 않는다. 후배는 건축감리업을 하는데 수입이 좋은 대신 일이 많아 바쁜 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두 달 전부터 무척 바빠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만나는 여자가 있는 듯하다. 후배는 남자답게 생겼고, 경제적 능력도 있는데 아직 싱글이다. 여자 보는 눈이 높아서이기도 하고 결혼 적령기에 혼기를 놓친 탓도 있다. 카페에도 괜찮은 싱글 여성들이 있는데 후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통화는 계속 연결되지 않는다.

후배와의 통화를 포기하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약속 장소는 인사동에 있는 조용한 카페였고, 도착해보니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또 다른 두 명이 와있었다. 바로 정일섭 수필가와 한재숙 교수였다. 다들 나의 글 전체를 삭제하는데 앞장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다. 그 세 사람이 다 모여 있는 것이다.

당황스럽다. 집단으로 나를 취조라도 할 생각인가? 글을 삭제하는데 앞장선 사람들 세 명이 나를 불렀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카페에서 다른 회원의 어떤 글을 문제 삼아 삭제시킨 전력이 있는 무리들이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그들을 쳐다본다. 여기서 기가 죽으면 나는 끝장이다. 그들이 어떤 비난을 하고 나의 글에 대해 어떤 시비를 한다 해도 나는 흥분하면 안 된다. 먼저 흥분하면 진다. 게다가 수적으로 그들이 우세하다. 그들이 한마디씩만 해도 나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이들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나는 도리가 없다. 패싸움이나 말싸움이나 마찬가지다. 결국은 숫자가 중요하다. 현재 3대 1 로 절대 열세인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의외로 담담하고 온순하다. 결전을 치르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겠지. 숫자가 우세하니까 나 한 사람쯤이야 별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말발 좋은 정일섭 수필가가 있고, 글발로 죽이는 한재숙 교수에다가 입으로 먹고사는 학원 강사까지....

그러나 나도 인생을 살 만큼은 살았다. 이런다고 기죽을 내가 아니다. 이래 뵈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 뭐라고 하는지 일단 들어보자. 나의 글은 누적 조회 수가 육칠천 명에 이를 정도로 나름 인기도 있었다. 그런 글을 가지고 그들이 뭐라고 트집 잡는다면 나도 할 말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아직 배신자를 밝혀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는 잘못하면 일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칼도 뽑기 전에 무장해제 당하게 생겼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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