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여인의 눈물

이제 남은 사람은 스포츠 댄스 강사인 윤영란 위원이다. 윤 위원은 글 솜씨가 꽤 있어 카페에서 그녀의 글은 인기가 좋다. 또한 나하고는 대화를 많이 나눈 편으로 그녀와 나 사이에는 삶과 문학에 대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 여인이 나의 글을 삭제하는데 찬성표를 던진 걸까? 혹시 윤영란 위원도 실수로 잘못 누른 건 아닐까?

금요일에 만났던 대학 후배와 술친구 박사장의 실수에 이어 시나리오 대작을 꿈꾸는 배작가에 이르기까지 실수담을 들은 나로서는 윤영란 위원도 또 다른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윤영란 위원에게 그 사유를 묻는 것은 방법 면에 있어서 조금 신중해야 한다. 실수를 했던 사람들은 우연찮게 모두 남자들이다. 남자 위원들에게 했듯이 윤영란 위원에게 왜 그랬냐고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복잡하고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 자칫 별거 아닌 이유를 확인하려다 서로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냥 모른 체 덮어가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차피 무슨 이유가 있겠고, 어떤 실수나 착각 혹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확인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확인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해도 이 상태에서 접을 수는 없다. 착각이든 오해든 무엇이든 풀고 넘어가야 찜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하루 정도 여유를 갖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 가볍게 차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는다. 말 그대로 그냥 차 한 잔이다.

윤영란 위원은 글 삭제 건에 대해 화요일에 내가 카톡으로 대화했을 때, “지난 일이니 다 잊으라.”고 말했었다. 어쩌면 윤위원 본인이 그 일을 잊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윤위원에게는 이미 먼 과거의 일로 뇌 속에 저장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잊고 싶어 하는 과거를 들추어내어 사연을 들어봐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칫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최근 일을 화제 삼아 말을 건넨다.

"스포츠댄스 강연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나 봐요? 연재 글에 대해 갈수록 반응이 좋고, 이제는 거의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반응이 뜨겁던데."

"그럼요, 그 일들을 혼자 알기가 아까워 글로 올린 것이 반응이 좋아서 기분 좋아요."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라든가 글 올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를 돌린다. 화제를 마냥 빙빙 돌릴 수만은 없다. 아무래도 정공법으로 가는 게 낫지 싶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을 털어놓는다. 글 삭제와 관련하여 운영위원들을 접촉했던 이야기, 정일섭 평론가와 한재숙 교수 그리고 김원희 강사 세 명의 뜻하지 않은 고백, 간사와 술친구 박사장과 배작가의 실수 등.

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윤영란 위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다 듣고 나자 자기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여자가 입을 다물 때는 좀 기다려 줘야 한다. 아마 속으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어떻게 말해야할지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윤 위원이 드디어 입을 연다.

"죄송해요, 강 박사님, 제가 그때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 봐요."

윤 위원은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게 아닌가.

여자의 눈물은 어떤 경우에도 남자에게 어느 정도는 먹혀 들어간다. 만약 이런 눈물 작전이 통하지 않을 경우 이 여인이 다음에 취하게 될 태도는 예측할 수 없다. 여자가 자기의 사과와 눈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여자는 엉뚱한 말로 상황을 역전시키며 상대방을 코너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래서, 이제 와서 날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라든가, " 남자가 왜 그 모냥이에요? 남자가 쪼잔 하기는" "흥 !"

이렇게 되면 볼 짱 다 본 것이다. 상대방은 졸지에 망신을 당하고,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가 될 것이다. 나는 사태가 그렇게 전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의 눈물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추적자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보인 여인. 그 여인을 바라보며 추적자는 할 말을 잊는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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