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인이 보낸 눈빛의 의미

결혼생활 30년에 얻은 게 있다면, 여자들의 언어 행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말로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언어적 재능을 타고났으며, 비수 같은 말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명사수이기도 하다. 이는 결혼생활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으로서 싱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예의를 갖춰 표현하는 언어는 결혼 생활에서 하는 언어와는 다르다. 사회에서의 언어가 현대인의 언어라면, 결혼생활에서의 언어는 원시인들이 나누는 언어와 같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원시적인 형태로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그것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윤영란 위원을 더 이상 궁지에 몰고 갈 수 없다, 그럴 경우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본인 말로 자기가 정신이 없었다는 데야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 말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달라는 여자 특유의 간청이 들어 있다.

그러다가 윤영란 위원과 살짝 눈이 마주쳤다. 언젠가 본 듯한 이상야릇한 눈빛이다, 어떤 원망과 애절함이 들어있는 눈빛.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한 눈빛.

잠시 후에 그 눈빛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난주 토론회가 끝난 후 뒷풀이에서 윤위원이 나와 마주보고 있을 때도 그런 눈빛을 본 것 같다. 그 때는 그 눈빛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알 듯 하다.

지난주에 윤위원이 나에게 그 눈빛을 보낼 때 내 옆자리에는 문학 평론가인 정일섭 작가가 있었다.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게 되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마련이다. 그 때 정일섭 작가는 으레 그렇듯이 카페에 올라있는 글들을 여지없이 깎아 내리며, 그런 것들도 글이라고 올리냐며 혹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혹평의 대상 중에 윤영란 위원의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아마추어인 내가 문학평론가의 말에 이의를 달수는 없는 일이었고, 나는 문학 평론가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가급적 주의 깊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맞은편에서 우리를 보고있던 윤영란 위원은 마음이 편치 않았던 듯하다. 정일섭 작가는 그렇다쳐도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내가 밉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확실히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눈빛은 지금과 같이 원망과 애절함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래도 윤영란 위원과 내가 가깝다면 가까운 처지에 반박은 못할지언정 자기 글을 혹평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으니 얄밉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눈빛이 그때와 닮아있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윤영란 위원이 그 때의 일로 나에게 섭섭해 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는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의 글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었을 때 <9편> 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나의 글 전부를 삭제하자고 주장한 사람도 윤영란 위원이었고, 나의 글을 카페에 다시 올리자고 긴급 제안을 한 운영위원도 다름 아닌 윤영란 위원이라는 사실을...

나로 하여금 추적을 하도록 이끈 것은, 후배와 술친구의 실수를 알기 위해서도 아니고, 반대를 찬성으로 잘못 누른 배철성 위원의 실수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닌, 바로 윤영란 위원이 그때 내게 보낸 눈빛의 의미를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윤영란 위원의 눈빛을 마주보며 나는 비로소 어떤 깨달음의 미소를 짓는다.

"그 때 정일섭 작가가 글을 혹평할 때 바로 반박하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윤영란 위원의 눈빛이 정감어린 눈빛으로 바뀌며 실토를 한다.

"그러게요. 그 때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박사님 글을 내리자는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올 줄은 저 자신도 몰랐어요. 약간 골탕을 먹일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제안이 통과될 줄도 몰랐고요. 그 당시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다음 날 얼른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박사님 글을 올리자고 제안했던 거지요."

나와 윤영란 위원은 그제야 맺힌 게 풀리기라도 한 듯, 화평의 엷은 미소를 짓는다. 오해가 풀리고 나니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망과 애절함의 눈빛은 어느새 친근하고 정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제야 비로소 추적자의 마음이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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