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다리, 범꼬리, 터리풀, 미나리아재비, 박새

'큰원추리'가 가득 핀 중봉은 그야말로 구름이 흘러가는 곳이었다. 아니 구름이 피어나는 곳이었다. 중봉 뒤에서 구름이 피어올라 능선으로 흘러갔다. 숨이 멎었다. 중봉 근처에는 약 10사람이 있었지만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 소리가 모든 소리를 압도했다. 그 자리, 그 시간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연의 특별한 선물이다. 

중봉 뒤에서 구름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피어오른 구름이 서서히 중봉을 지나간다.  

저 멀리 백암봉을 뒤덮고 능선 건너편으로  흘러간다. 

피어났던 구름이 다 흘러가고....

하늘이 열렸다. 

언제 구름이 중봉을 덮었나 싶게  파란 하늘과 구름이 맑고 산뜻하다.   

덕유산 '큰원추리'도 실컷 보았다. 구름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장관도 보았다. 이번 산행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봤으니.. 집에 가도 되련만 우리는 백암봉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중봉 막 지나 백암봉을 향해 가는 길은 층계로 되어있는 곳이 많다. 바위 길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이 중봉의 또 다른 백미다. 멋진 바위와 어우러진 야생화가 우릴 반기기 때문이다. 중봉 사면에 '큰원추리'와 함께 피고 있는 야생화는 '일월비비추', '미나리아재비', '범꼬리', '박새', '노루오줌' 등이다.   

중봉 사면에 피어있는 야생화
중봉 사면에 피어있는 야생화

'일월비비추'는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진 못했다.  지난 '6월 국립수목원에서 만난 야생화'에서 일월비비추는 자세히 설명했으니 여기선 그 고운  자태만....

일월비비추
일월비비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인 '미나리아재비'도 '큰원추리'에 질세라 노란 빛을 뽐내고 있다. 유난히 꽃 표면이 반짝거리는 것이 미나리아재비란 이름 붙은 꽃의 특징이다. '아재비'란 말은 비슷하지만 더 큰 식물에 붙는 말이다. 미나리아재비는 미나리보다 키가 크다. 미나리는 20~50㎝, 미나리아재비는 50~70cm이다. 미나리 꽃은 희고, 미나리아재비 꽃은 노랗다. 미나리와 미나리냉이는 먹을 수 있는데 미나리아재비는 먹을 수 없다. 독성이 있다. 중국에서는 항종양성이 있다 하여 풀 전체를 약으로 쓴다고 한다. 

미나리아재비
미나리아재비

범의 꼬리 같이 생겼다 해서 이름 붙은 '범꼬리'에 벌이 와서 맛난 꿀을 마음껏 먹고 있다. 꿀벌이 꿀 빠는 소리가 쭈우욱~ 쭉~ 세차게 들리는 듯하다. 범꼬리는 우리나라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6~7월에 연한 홍색이나 백색 꽃이 핀다. 꽃은 줄기 끝에서 나와 이삭꽃차례로 달린다. 범꼬리를 살짝 만져보면 꽃잎이 아기 뺨같이 보드랍다. 호랑이 꼬리가 이리 보드라운가? 그런데 이게 꽃잎이 아니다. 꽃받침이다. 꽃잎은 없다. 꽃받침보다 길게 나온 8개 수술이 범꼬리의 귀여움에 한몫하고 있다.   

범꼬리 
범꼬리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서도 많이 나타났던 '박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며 높은 산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곧추선 줄기가 100~150cm이니 멀리서 봐도 다른 꽃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래 그럴까? 좀 멋대가리 없어 보인다. 야생화는 좀 숨은 듯 말 듯 한 맛이 있어야 더 예쁜 것 같다. 

박새 꽃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봐야 조금 예쁘다. 6장 꽃잎속이 연두색이다. 꽃잎 뒷면도 연두색 줄무늬를 가졌다. 꽃잎 앞면과 뒷면이 이렇게 다른 건 처음 보았다. 그래서 특이하다. 산에 다닐 때 박새 잎은 많이 봤는데... 꽃은 처음 만났다. 봄에 만난 박새 잎은 삶아서 쌈 싸먹기 딱 좋게 넓은 잎을 가졌다. 하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먹어선 안 된다고 한다.  

늘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길가에 서서 인사하는 '노루오줌'도 큰원추리와 함께 중봉 사면을 장식하고 있다. 노루오줌처럼 예쁘게 인사하는 꽃이 또 있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향해 가다 만난 '터리풀'이다. 

터리풀과  큰원추리
터리풀과  큰원추리

터리풀은 흰 털이 잔뜩 달렸다고 해서 '털'이 붙여진 이름이다. 수술이 꽃잎보다 길고 많아 마치 흰 털 같아 보인다. 터리풀은 국내에서만 자생하는데 이 터리풀은 예전에 곰배령에서 만났던 터리풀과는 좀 다르다. 흰색이 아니고 연분홍을 띄고 있다. 작은 보석 같은 꽃 몽우리는 더 색이 진하고 곱다. '단풍터리풀'이 연홍색을 띄고 있다고 한다. 그럼 단풍터리풀일까?

터리풀
터리풀

이호균 선생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터리풀과 단풍터리풀은 잎이 매우 다르다. 터리풀은 잎이 깊게 갈라지지 않았다. 단풍터리풀은 잎이 깊게 갈라졌다. 따라서 아무리 연홍색을 띠었다 해도 우리가 만난 터리풀은 그냥 터리풀이다.  

왼쪽이 터리풀, 오른쪽이 단풍터리풀(사진 출처 :https://blog.daum.net/ihogyun/2763257#article-reply)
왼쪽이 터리풀, 오른쪽이 단풍터리풀(사진 출처 :https://blog.daum.net/ihogyun/2763257#article-reply)

큰원추리 빼고 덕유산 산행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꽃.... 다른 꽃들이 들으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이 꽃의 간결한 아름다움은 말이 필요 없다. 바로 '꿩의다리'다.  6~7월에 흰 꽃이 피는 미나리아재비과 여러해살이풀이다. 

꿩의다리 
꿩의다리 

예전에 금대봉에 갔을 때 홀딱 반했던 꽃이 '산꿩의 다리'다. 산에서 보는 하얀 야생화 중 가장 청초함이 느껴지는 꽃 중 봄꽃은 '꿩의바람꽃'이고 여름꽃은 '산꿩의다리'라고 생각했다.

2019년 8월 금대봉에서 만난 산꿩의다리
2019년 8월 금대봉에서 만난 산꿩의다리

그런데 꿩의 다리도 만만치 않게 청초하다. 두 꽃 다 꽃받침은 일찍 떨어지고 꽃잎은 없다. 하얀 수술로만 꽃을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 깔끔하고 청초해 보인다. 꿩의다리는 산기슭 양지에서 자라 그런지 키가 1~2m인 반면, 산꿩의다리는 깊은 산속 그늘진 곳에서 살아 그런지 키가 작다. 약 20~60cm다. 

꿩의다리 꽃대
꿩의다리 꽃대

꿩의다리는 꽃을 받친 꽃대가 꿩의 다리처럼 날씬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꿩의다리는 산꿩의다리를 비롯하여 '은꿩의다리', '금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 등이 있다. 모두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언젠간 실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 이번에는 그 아쉬움을 이호균선생님 블로그에서 4종류의 꿩의다리를 가져와 달래본다.

좌상에서 시계 방향으로 '은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사진 출처 : https://blog.daum.net/ihogyun/search/은꿩의다리?page=1)
좌상에서 시계 방향으로 '은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사진 출처 : https://blog.daum.net/ihogyun/search/은꿩의다리?page=1)

꽃구경을 실컷 하고 다시 중봉을 지나 향적봉으로 가는 길이다. 은은한 색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지만 저 멀리 중봉 정상 층계까지 보인다. 그 하늘 아래 고사목은 우리에게 시원한 모습을 선사해준다. 정말 고맙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 왼쪽에 중봉이 보인다
멀리 왼쪽에 중봉이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백암봉에서 1km만 가면 또 다른 원추리 군락이 있다고 한다. 백암봉까지 가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 백암봉 원추리는 무슨 원추리일까? 덕유평전과 같은 종류일까? 궁금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백암봉 원추리 군락도 꼭 가봐야겠다.

*  늘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주주통신원 이호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 참고 사이트 : 이호균의 풀꽃나무광 블로그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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