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유일사와 주목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8.09.21l수정2018.09.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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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을 언제 가봤던가? 30년 전일까? 25년 전일까? 젊어서 남편은 수년 동안 직장산악회 등반대장을 했다. 아이 키우는 나를 두고, 한 달에 한번 단체산행을 갔다. 어느 해 겨울, 태백산에 미끄럼 타러 간다고 했다. 철이 덜 들었는지 몸살이 나도록 가고 싶어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따라 갔다. 그 산행은 어디서 시작했는지 어디로 내려왔는지 아무 기억이 없다. 단지 비료포대 타고 생각보다 심한 경사에 무서워하며 내려 온 기억만...

이번에 <숲과문화연구회>를 따라 태백산 주목을 보러 갔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나무다. 태백산을 대표하는 나무인 주목은 태백산에 약 2800그루 산다. 그 중 11m 이상 키 큰 주목은 59그루, 지름이 1m 이상 되는 주목은 15그루이다. 지름이 가장 큰 것은 1.4m 되는데 500년 이상 된 주목이라고 한다(주1).

이 주목을 보러 유일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유일사를 거쳐 장군봉으로 오르며 주목을 관찰하고 능선길을 따라 비로봉 천제단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일정이다.

▲ 유일사 주차장에서 임도 아닌 산길로 들어섰을 때 초입에 조림된 낙엽송

유일사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일사 갈림길까지 가는 길은 좁은 오르막길이다. 주로 임도를 따라 걷는 우회도로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이 길은 단체 등반을 위한 길 같지 않다. 길이 좁아 한 사람 정도 다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옆 풀숲에 야생화들을 가깝게 만날 수 있다. 모두 자신을 봐달다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

▲ 투구꽃
▲ 진범

특히 투구꽃과 진범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두 꽃은 표정이 있는 꽃이다. 마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삐져서 고개를 쌩 돌린 것 같기도 하고, 합창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이삭여뀌

이삭여뀌는 7~9월에 빨간색 꽃이 핀다. 꽃이 이삭처럼 달린 여뀌라 해서 이삭여뀌라 부른다. 습지나 냇가에 많이 피는 흔한 향토 초화인데 쓰임새는 아주 많다고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약재로도 쓰인다. 생선 비린내를 잡아줘 생선요리에도 사용하고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도 있다고 하니, 흔하다 해서 만만히 볼 풀이 아니다.

▲ 궁궁이. 까실쑥부쟁이, 쥐손이풀, 미역취

산골 냇가에서 핀다는 이름이 특이한 궁궁이와 들국화의 일종인 까실쑥부쟁이도 여기저기 많이 피어 있다. 잎 모습이 마치 쥐 손바닥을 닮았다 해서 부르는 쥐손이풀은 이름은 별로지만 꽃은 아주 앙증맞게 예쁘다. 취나물 일종으로 미역 맛이 난다고 이름 붙여진 미역취도 노란 꽃이 눈에 많이 띈다(주2).

유일사 갈림길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유일사 쉼터로 가는 능선을 따라갔다. 우리는 이상하다 생각하고 임주훈 선생이 강조한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한참 가도 길 같지 않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너덜길까지 나왔다. 아무래도 잘못 왔다 싶어 되돌아 나오는데 유일사를 찾아오는 일행을 만났다. 유일사로 가기 위해선 대부분 임도를 따라 걷거나 능선을 따라간다. 이 길은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이라 하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길이 좀 험해,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 된 것이다. 

▲ 너덜길에서 바라본 앞산

너덜길에 서서 마주 본 앞산이 신비롭다. 자작나무 같이 새하얀 줄기를 가진 사스래나무와 신갈나무 등이 옅은 산안개에 묻혀있는 모습은, 그날 그 시간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비경이다.

분비나무는 엄마 젖 같은 흰 송진을 줄줄 흘리고 있다. 분비나무는 1000m 이상 고산에서 자라는 소나무과 전나무 일종이다. 나무껍질이 회갈색 흰 빛을 띈 분비나무는 원래 분피(粉皮)나무였다가 분비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줄줄 흘러내리는 송진을 보고 송진이 많이 분비되어 분비나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 눈측백

눈측백도 만났다(주3). 언뜻보니 잎이 꼭 눈 결정체같이 보인다. 그래서 눈측백인가 했더니 누운 듯 자라는 측백이라 ‘눈’자가 붙었다 한다. 눈측백같이 누운 듯 자라는 눈향나무도 있다. 묘향산의 이름이 ‘묘한 모습을 가진 향기 있는 산’이라 해서 묘향산이라 이름 지었다는데... 묘향산 향기는 눈향나무에서 난다고 한다. 눈향나무 향기 맡으러 묘향산에도 가봐야 하는데....

▲ 초록 양탄자

사람이 잘 안다녀서 그런가?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그 길이 너무 멋지다. 유일사로 가는 돌길에 바위채송화와 솔이끼 등이 초록 양탄자를 만들었다. 사람 발길이 드물다 보니 자연은 제 맘껏 살아가는 것 같다. 혹시나 내 발걸음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양탄자가 상처나지 않을까 조심조심...

▲ 나래회나무와 산앵도나무

깊은 산에서 산다는 빨간 열매 나래회나무와 열매가 맛난 산앵도나무도 보았다. 물기 머금은 나래회나무는 열매가 톡 터질 것만 같다. 지의류로 여기저기 자란다. 마치 꽃처럼 바위에도 피었고 나무에도 피었다.

▲ 지의류

유일사에서 시원 달콤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좋다고 꼬리치는 강아지를 몇 번 쓰다듬은 후 가파른 층계를 올라 장군봉을 향해 쉼없이 갔다. 유일사를 찾아 헤매다 1시간 정도 허비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숨을 고를 겸 가야할 길과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없다. 호젓한 산 속에 나와 산만이 단 둘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장군봉에 다가갈수록 산안개가 점점 짙게 깔린다. 비단실보다 가는 실비가 바람과 함께 얼굴을 스친다. 이럴 때 산 정상에 오르면 비록 안개에 가려 멀리 능선을 바라 볼 수 없지만, 산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이 품은 나무, 풀, 꽃, 바위, 흙들이 비밀스런 문을 살짝 열어 자신들 진짜 세계에 나를 초대하는 것 같다.

▲ 장군봉의 주목

장군봉에서 비로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아쉽게도 시간을 맞추느라 가볼 수 없었지만, 장군봉 주변도 주목과 들국화가 어우러져 우리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 장군봉의 가을

태백산 장군봉은 가을 들국화 천국이다. 산쑥부쟁이, 미역취, 구절초에... 갈대와 단풍까지 어우러진다. 9월이 잔잔한 가을로 물들어 가고 있다.

하산길에 만난 단풍도 가을임을 알려준다. 얼마 전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백두대간 고산 침엽수들이 고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겨울철 수분 공급원인 눈이 적게 내리고 빨리 녹아 증발하면서 침엽수들이 목마름에 시달려 고사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태백산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칩엽수가 죽어나가면 산은 어떻게 살아남으려 애를 쓸까? 올 여름 그 무더위에 사람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찜통지옥에서 고생한 나무들이 그래도 계절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또 멋진 모습을 선사해준다.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리 해줄까?

▲ 5월 28일 지리산 천왕봉 동쪽 능선에서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능선 일대를 항공촬영한 모습.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가 집단 고사해 숲이 회색으로 얼룩져 있다. 서재철 제공(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주1) 숲과문화연구회 임주훈 숲탐방위원장이 제공한 '태백산 주목숲' 자료집을 참고했다. (주2)와 (주3)은 숲과문화연구회 김강숙 숲해설사의 도움을 받았다. 두 분께 감사를 드린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48315.html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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