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늘에 소낙비’라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강더위만 이어지는가? 지난 5월에는 때아닌 우박에 장맛비까지 내리더니, 7월 이후로 비다운 비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기상청은 예보가 아니라 생중계가 낫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다. 대기 불안정으로 강수량의 지역 차가 크다는 것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온다 온다 하는 비는 오지 않고 불볕만 이글거린다.

내가 사는 일산에도 이레 전에 돌풍 불고 천둥 치고 소낙비가 쏟아지긴 했다. 부리나케 옷 갈아입고 나서려는데……. 하늘도 싱겁지, 모처럼 밭에 나가 웃거름 좀 주려고 했더니 빗줄기는 이기죽거리면서 벌써 눈앞의 정발산 너머로 줄행랑치고 만다. 뭐가 그리 켕기는 게 많은지 채 십 분을 채우지 못하고 달아나는가. 기다리던 비는 감질만 내고 그렇게 내빼고 말았다.

고추, 가지, 토마토 할 것 없이 속이 타들어 간다. 녹두, 참깨, 옥수수 모두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축 처진 몰골이다. 고구마도, 땅콩도, 서리태도 헉헉거린다. 길 가다 마주친 비둘기도 길냥이도 잰걸음 다 어디 가고, 개개풀린 눈 하며 볼썽사납긴 마찬가지다. 저마다 사지가 풀어지고 뿌리까지 들뜬 채 몸부림치고 있다. 너나없이 살려고 발버둥질인데, 매미 떼만 무슨 살판났다고 밤낮없이 자지러지게 울어 젖힌다.

그 와중에 깨진 시멘트나 돌 틈에서 허덕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개미자리를 비롯해서 중대가리풀, 바랭이, 괭이밥, 제비꽃, 땅빈대 등이 그렇다. 뉘라서 굳이 그런 데를 좋아할까마는, 공생 관계에 있다는 개미들 탓이기도 하다. 아니다. 그나마 개미들 덕이라고 해야 맞다. 근데, 웬 개미? 풀떼기들이라고 종족 보존 욕구가 다를 리가 없다. 자손을 위해서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비위치레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갖은 묘안을 강구한다.

보충하면, 남들처럼 날개도 갈고리도 끈끈이도 만들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육질 좋은 열매를 만들어 동물을 매개로 영역을 넓힐 재주도 없다. 이동 수단이 전혀 없는 풀떼기가 포도시 짜낸 좀꾀가 바로 몸보시다. 결국 씨앗 껍데기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유질체(elaiosome)를 살짝 발라놓는다. 이는 지방, 단백질, 비타민이 풍부한 종합 영양제이다. 결론적으로 씨앗에 유질체를 입혀서 개미를 유인,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전략이다.

 

유질체(elaiosome)를 함유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씨앗들(출처 : Wikimedia Commons) 엘라이오솜은 oil을 뜻하는 그리스어 'ělaion'과 body를 뜻하는 그리스어 'sǒma'의 합성어로,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방체를 말한다. 개미는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는 종자를 개미집으로 물어가 이것을 떼어서 애벌레의 먹이로 이용하고, 남은 종자는 개미집 내부의 쓰레기장이나 집 밖의 모래 언덕 또는 개미 군체의 영역 경계로 내다 버린다(김갑태, 2014).
유질체(elaiosome)를 함유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씨앗들(출처 : Wikimedia Commons) 엘라이오솜은 oil을 뜻하는 그리스어 'ělaion'과 body를 뜻하는 그리스어 'sǒma'의 합성어로,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방체를 말한다. 개미는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는 종자를 개미집으로 물어가 이것을 떼어서 애벌레의 먹이로 이용하고, 남은 종자는 개미집 내부의 쓰레기장이나 집 밖의 모래 언덕 또는 개미 군체의 영역 경계로 내다 버린다(김갑태, 2014).

아닌 게 아니라 개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씨앗을 물고 집 안으로 나른다. 애먼 놈들 손을 탈세라 창고 안 뒤주 속에 깊숙이 감추어 두고, 번갈아 가며 망을 본다. 검부러기 하나 없이 말끔하게 걷어내고 또다시 닦는다. 그래도 미더운 나머지, 손발이 닳도록 비비고 털고 훔쳐낸다. 건너편에서는 입으로 이물질을 물고 빨고 핥느라 여념이 없다. 행여 상하지 않을까, 환기통마다 열어두고 온몸으로 부채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듯 금이야 옥이야 처쟁인 씨앗은 오로지 아기 전용 영양식이다. 뉘라서 감히 손을 댈 엄두를 내겠는가? 써빠지게 일만 하던 녀석들은 밤새 뜬눈으로 뒤주를 지키다가 날이 새면 다시 먹이 사냥을 나간다. 그게 일개미들의 일상이다. 너야말로 풀떼기의 분신이로구나, 움직이는 풀떼기....

 

애기똥풀 종자의 유질체를 운반하는 개미(출처: Getty Image Korea) / 네이버 지식백과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는 蟻(개미 의) 자이다. 虫(벌레 훼) 자와 음을 나타내는 義(옳을 의) 자의 합성어이다. 예로부터 개미의 됨됨이를 의롭고 선량하다고 보았음 직하다. 물론 개중에는 놀고먹는 고등룸펜도 있다. 어딜 가도 그런 놈은 있게 마련이니 마음에 둘 까닭은 없다. 아무튼 손발은 물론 날개도 없는 씨앗을 널리 퍼뜨려 주는 이가 개미들이다. 풀떼기들에게 개미는 생명의 은인이다.

개미와 풀떼기들의 공생은 연구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과제가 되기도 한다.
테네시 대학의 생태학자 찰스 크윗(Charles Kwit)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8월, 미국 생태학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그들은 장다리개미 등 개미들이 체내에 항균 물질을 지니고 있는데 주목했다. 개미들은 이것을 통해 자신과 동료들의 몸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편, 연구팀은 꽃생강‧혈근초‧깽깽이풀의 씨앗 속에는 여러 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사이언스타임즈, 2020.08.13, 이강봉 객원기자).

 

혈근초(血根草) 씨앗(사진 : cotinis) 직경이 약 2.5mm인 혈근초(血根草) 씨앗을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한 것으로 종자 측면에 있는 다육질의 젤라틴 같은 구조는 개미에게 매력적인 엘라이오솜이다.

 

혈근초 (사진 : Wikimedia Commons & Wikipedia)혈근초는 북미 동부가 원산지인 다년생 초본으로 영어명은 ‘Bloodroot’이다. 뿌리나 잎 또는 줄기에 상처를 주면 붉은빛이 나는 즙이 나온다. 그 수액의 색깔로부터 혈근초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찍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혈근초의 다양한 약효를 이용해 전통 의약품으로 기관지염과 천식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질병 치료에 활용해 왔다.

 

결론적으로 풀떼기들은 씨앗 속에 각종 미생물을 배양함으로써 건강한 자손 번식을 도모한다. 이와 함께 유질체를 만들어 개미를 유인하고, 나아가 개미들의 건강에까지 기여하고 공생을 도모한다. 풀떼기들과 개미는 합동으로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관리한다. 둘의 공생은 절대자로부터 위임을 받은 특별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생명의 전도사요, 창시자요, 파수꾼이다.

여기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 너는 누구와 공생 관계인가? 겉으로는 공생을 표방하면서 너만을 위한 편리 공생(片利共生)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과연 너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나 할까?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귀는 열고 주머니는 풀라고 했다. 인색한(吝嗇漢)이 따로 없다. 이날 입때까지 숱한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우라지게 아끼고 모으고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나 아낀 것은 허섭하고, 감춘 것은 툭 불거져 오히려 추레하다. 앙상한 몰골 위로 덕지덕지 눌어붙은 더께가 나를 짓누른다. 아무때나 너절하게 손 벌리고, 아무 데나 기웃기웃 훔쳐보면서 주접을 떨었다. 낼모레가 종심(從心)인데 어이하여 이제사 깨단하는가. 선현들은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는데, 부끄럽다. 그 말씀 좇아 눈빛 세우고 나름 올곧이 가려 하나, 일마다 왜 이다지 얄망궂은가? 좀스럽고 꾀죄죄한 삶, 우리 ‘하니’랑 ‘서누’ - 필자의 손주들 - 가 알까 두렵다.

개미들은 깔끔한 성격 탓에 아가들이 먹고 난 쓰레기 – 유질체가 없는 씨앗 - 는 바로바로 치운다. 부스러기 한 올 남기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내다 버린다. 가다가 그만 시궁창에 빠뜨리기도 하고 칼벼랑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맘씨 좋은 몇몇은 풀숲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풀숲은 모든 풀떼기가 꿈에서도 그리는 이상향이요 본향이다.

풀숲!
처음 보는 풀숲은 정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낙원이었다. 삼라만상 모두 남의 자리 탐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까지 닿은 나무는 땅끝까지 뿌리를 내린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피조물이 나무 위에서 하늘 가는 길목을 지킨다. 아름다운 새들은 그들을 독려하며 쉬지 않고 우지진다. 밤에는 총총한 별숲이 기꺼이 조명을 자처한 가운데, 풀벌레들의 떼창이 이어진다. 우주로 통하는 나무는 크고 작은 길짐승, 날짐승 가리지 않고 먼바다 물짐승까지 따뜻이 품어 준다. 사시사철 비바람을 막아 주고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나비•나방 가리지 않고 익충•해충 차별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미물들에게까지 달콤한 열매와 수액을 골고루 나눠 준다. 나무가 내뱉는 숨결은 공기청정기요, 나무가 내뿜는 몸엣것은 맑은 샘물이 된다.

그러나 풀씨들이 본 풀숲은 사뭇 달랐다.
외양은 뻔지르르하나, 뒷골목 문화가 판을 쳤다. 관목(灌木. 떨기나무)은 관목대로 으르렁드르렁댄다. 서로 물고 뜯고 할퀴느라 여념이 없다. 교목(喬木, 큰키나무)은 교목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찌르렁쩌르렁댄다. 메치고 둘러치고 후려치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갈잎나무든 늘푸른나무든 나무갓의 꼭대기에서 어린뿌리 끝에 이르기까지 도처가 전장(戰場)이다.

풀씨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풀숲이 곧 인간 사는 세상과 진배없음을.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허구일 뿐, 이 세상도 ‘인간’들과 다를 게 없구나! 누구처럼 날마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것도 그렇고, 도리질에 삿대질에 드잡이질도 빼닮았다.

살다 살다 이런 판상놈(판常놈)이 따로 있을까. 말문이 막히면 되레 먼저 설레발을 친다. 그때마다 허우대 큰 쩍벌남은 까드락거리며 진의를 왜곡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이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받아쓰고 베껴쓰는 이들이 있다. 구린 데는 눙치고 덮고 가리느라 무던히 애를 쓰는 놈들이다. 바로 글쟁이•말쟁이•사진쟁이, 그리고 엽전으로 쟁이들을 부리는 천하의 모사꾼들이다. 그 거덜들과 모사꾼이 움직이면 순대국집에서 술 마시는 것까지 ‘역대급 리더’가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 무덤까지 찾아가 묘비를 어루면 광주의 한이 치유되고, 대구에 가서 의료진을 만나면 자칭 ‘K 방역의 성지’라고 규정한 ‘대구민란’도 잠재운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 아닌가. 예수나 부처까지 들먹이지 말자. “모래로 쌀을 만들고, 솔방울로 총알 만들며, 가랑잎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는 김일성! 평양성에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면서 무덤 속에서 자다가도 치를 떨 위인들이 김일성 우상화는 부러웠던 게지. 현대판 거덜들같으니라고. 거덜은 원래 말고삐를 붙잡고 따라다니던 잡직이다. 고작해야 “쉬~ 물렀거라!”, “이놈들, 게 섰거라!” 하고 소리치던 하인이다. 그런 자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으면 ‘거덜나다’라는 말이 ‘몽땅 털어먹다’는 뜻으로 남았을까. 그러고 보니 맨앞에서 거들먹거리며 두리번거리는 놈이 바로 왕거덜이로구나....

아, 풀숲은 그런 곳이었어.
세상눈을 피해 올 곳이 못 된다.
동경하던 풀숲은 살 데가 아니었구나!

 

(계속)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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