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평화’는 순전히 하늘을 찌를 듯 도도하기 짝이 없는 자들만의 전유물이다. 그네들 기침 한 방이면 수천수만의 풀씨가 곤두박질치고, 그네들이 기지개를 켜는 날 수천 년 이어온 풀떼기네 가계(家系)는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를 익히 알고 있기에 걸핏하면 ‘쥐좆도 모르는 개돼지’ 소리까지 들으며 견뎌야 한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씨부려도 한없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퍼벌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솔직히 밥 빌어먹기는 장타령이 제일이라는 말을 제 입으로 하고 싶겠는가마는, 지네들끼리 어깨를 겯고 ‘태평가’를 노래할 때도, 곱사춤사위로 응수하며 맞장구를 쳐야만 했다. 허구한 날 저들이 부르는 태평가는, 뼛속까지 저들을 우러르게 하려는 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왜 아니 모르겠는가. 풀떼기들은 결국 이놈 저놈 눈치만 보다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20년대 선조들이 읊조리던 ‘희망가’를 되뇌며 속울음을 삼킨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슬픈 얼굴의 피에로는 어릿광대가 돼야 한다. 사람들을 웃기지만, 본인은 막상 어떤 경우에도 웃으면 안 되는 캐릭터이다. 풀떼기들은 오늘도 가면을 쓴 채 뒤에서 눈물을 흘린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라이브 화면갈무리(2019년 7월 25일)한겨레 TV는 윤석열 씨가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던 날, 처참하게 이지러진 오늘날의 ‘검찰개혁’을 예견했을까? 윤석열과 조국을 검찰개혁 투톱으로 내세우면서, 자작극을 벌인 ‘신림동 피에로’를 뒤에 배치했으니 말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할수록 참으로 절묘하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어릿광대짓으로 보인다. 피에로보다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무리들과, 광댓짓에 맞장구치며 놀아나는 저들의 꼭두각시놀음! 피에로는 아마 지금쯤 가면 뒤에서 울고 있지 않을까? 이땅의 광대극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진 출처 : 한겨레 라이브 화면갈무리(2019년 7월 25일)한겨레 TV는 윤석열 씨가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던 날, 처참하게 이지러진 오늘날의 ‘검찰개혁’을 예견했을까? 윤석열과 조국을 검찰개혁 투톱으로 내세우면서, 자작극을 벌인 ‘신림동 피에로’를 뒤에 배치했으니 말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할수록 참으로 절묘하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어릿광대짓으로 보인다. 피에로보다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무리들과, 광댓짓에 맞장구치며 놀아나는 저들의 꼭두각시놀음! 피에로는 아마 지금쯤 가면 뒤에서 울고 있지 않을까? 이땅의 광대극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렇다! 풀숲은 풀동네다. 풀끼리 사는 수풀이다. 풀 아닌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 없고 풀 아닌 누군가에게 기대본 적 없다. 풀끼리 의지하고 풀끼리 떠받치면서 살아왔다. 저 혼자 잘났다고 뻐팅기는 법 없고, 저 혼자 살겠다고 나대지도 않는다. 그럴 위인들도 못된다. 아파도 내색하지 못하고, 더 아파하는 이를 돌봐야 한다. 죽을 때가 아니면 눕는 법이 없다. 죽으나 사나 선 채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일가친척 모두 살 붙이고 살다가 죽으면 그뿐, 풀끼리 도닥이고 어루만지면서 서럽게 살아간다. 그렇게 평생 너덜밭 가꾸는 동안 장작개비처럼 뻣뻣해진 손가락은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는다. 어깨는 돌아가고 허리는 휘어지고 무르팍은 틀어지고 가슴속 켜켜이 옹이가 박혔으니 모진 목숨이다. 풀숲은 이제 풀떼기들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대대손손 이어받은 가난뱅이 흙수저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부정식품이라 그러면은,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랫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이거야.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윤석열 국민의당 대권 후보가 한 말이다. 그나마 주당 120시간은 일을 해야 먹여 줄 수 있다는 게지.... 아마도 그는 자나 깨나 배곯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어쩌면 본인이 그런 기아 체험을 하며 살았는지도 몰라. 아니면, ‘혁명공약’을 본뜬 건 아닐까? 박정희 향수에 젖은 인간에게는 흔한 일이거든. 그러니까 1963년, 5•16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혁명공약 제4항에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란 구절이 나온다.

맞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거지. 이제 ‘없는 놈들’은 꾀를 벗고 얼씨구 절씨구 춤이라도 춰야 하지 않을까? 배곯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부정식품보다 아랫것을 싸게 먹게’ 해 준다고 했을까? 근데 그 말을 뒤집으면 ‘가진 것들은 팔진미보다 더한 쌍껏(上~)들을 처먹을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어쩌면 그는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 소장과 함께 뉴라이트 교과서를 다시 소환할지도 모른다. 하기사 쪽잠 자다 일어나서 냉수 한 사발로 허기진 배 채우고, 오늘도 새벽같이 인력 시장을 기웃거리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래도 나라님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도갓집 앞 서성이며 술찌겡이 얻어다가 그걸 씻고 빨고 끓여 먹고 학교 다니던 아이들의 눈물을 기억해야 한다. 까만 고무신 기워 신고 망태 메고 깔 비러 갔다가, 송쿠 발라 씹어 먹고 똥구멍이 미어터져 데굴데굴 구르던 아이들의 아픔을 기억해야지. 십리사탕 입에 물고 자랑하다가 똘뚝에서 떨어뜨리고는, 한하고 울면서 할머니를 보채던 아이들의 슬픔을 기억하란 말이다.

할머니는 설날 아침, 까잘까잘한 십 원짜리 지폐 - 앞에는 첨성대, 뒤에는 거북선 문양이 있다 - 를 넣어주시며 주머니밥이라고 하셨다. 아이들과 신작로 누비며 고샅길 헤집고 다니다가 생각난 듯 수시로 그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큰동네 점방 앞까지 내달렸다. 양갱이 먹고 싶어 열 번도 넘게 값을 물었을 거다. 차마 사 먹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내게는 지금 그보다 백배 천배 많은 돈을 갖고 있다. 그깟 양갱쯤이야 트럭으로 살 수도 있는데, 삭힌 홍어 즐기시던 할머니는 가시고, 삶은 계란 좋아하는 어머니는 요양원에 누워 계신다. 쓰잘데기도 없는 걸 왜 이리 쟁이고 살아왔는지....

선반에 고이 모셔 둔 운동화가 있었다. 일 년에 네 번밖에 신지 못했거든. 소풍날•운동회•추석•설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설날 아침 할머니가 내려놓으며 먼지를 털어 주셨는데, 그놈의 발이 너무 커서 안 들어가는 거다. 고걸 신겠다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어. 늘어난 발꾸락을 원망하며 또 그렇게 울었지. 운동화를 바라보며 서럽게 울고 보채던 아이가 자라, 그때를 떠올리며 또다시 못내 눈물짓는다. 아, 도리듯이 욱신거린다. 유년의 추억마다 가슴을 저민다. 저민 가슴 풀숲에 묻고 하늘을 본다. 나가 바로 풀떼기로구나....

이렇다 할 빽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다.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누가 나서서 거적때기 한 장 덮어 줄 리 만무하다. 살던 집이 무덤이요 풍장터(風葬-)다. 까닭 없이 치받혀도 입술 한 번 비죽거리지 못한다. 볼품사나운 처지에 금이 간 아스팔트나 깨진 시멘트 바닥이 제격이다. 차라리 맘이 편하다. 아니면 시궁창 속에 파묻혀 생목숨을 버려야 한다.

하나같이 마뜩하지 않지만 어쩌랴. 그러다가 찾은 곳이 보도블록 틈새다.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기댈 언덕도 있다. 자유로이 숨 쉴 공간이 넉넉하다. 나다니는 강아지나 개미 발바닥에 묻은 흙가루가 보르랍게 품어 준다. 때로는 부전나비나 꽃등에가 이웃 소식을 전해 주고, 먼뎃 소식은 바람결에 전해 듣는다. 봄이 가고 가을이 가도 방세 내라고 독촉하는 이도 없다. 생애 최상의 보금자리다.

그늘 한 점 없다. 이어지는 무더위와 불가물만으로도 어지럽고 아득하다. 불가마 땅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예초기가 번뜩인다. 열돔(Heat dome) 하늘에서는 전기톱이 춤을 춘다. 소리만 들어도 까무러칠 지경인데 미화원 아저씨는 제초제와 살충제를 퍼붓는다. 한 방울만 튕겨도 삼족이 깡그리 몰살당하기 십상이다. 겨우 숨 좀 돌리려나 했는데 난데없이 자동차 꽁무니에서 뿜어대는 배기가스는 아예 숨통을 끊으려 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어디에도 코딱지만 한 몸뚱어리 하나 기댈 곳은 없다. 그렇다고 이젠 뒤로 물러설 데도 없다.

바로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사각 배수구 덮개판과 맞닿은 아파트 주차장 경계선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마음마저 이글거리게 하는 가마솥더위다. 주변의 풀떼기 모두 자료실 표본처럼 미라가 됐는데, 그는 용케도 살아 있었다.

어느 날 그를 발견한 뒤로는 집에 드나들 때마다 눈맞춤하고 지낸다. 생각한 것보다 예의 바르고 곰살갑기 그지없다. 먹다 남은 생수병을 기울여 주면 고개 숙이고 큰절을 한다. 우산으로 땡볕 가리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살랑살랑 춤을 추기도 한다.

 

안개초는 바로 이런 데서 살아가고 있다. 안개초는 강인하다. 주변의 이웃들은 험한 세상 견디지 못하고 다들 먼저 갔다. 그러나 안개초는 굳세게 살아 남아 꽃을 피웠다. 셋째 줄 오른쪽 사진에서 황색 동그라미 안에 홀로 피어 있다.
안개초는 바로 이런 데서 살아가고 있다. 안개초는 강인하다. 주변의 이웃들은 험한 세상 견디지 못하고 다들 먼저 갔다. 그러나 안개초는 굳세게 살아 남아 꽃을 피웠다. 셋째 줄 오른쪽 사진에서 황색 동그라미 안에 홀로 피어 있다.

 

차라리 네 이름을 모를 때가 좋았어. 내가 상상하던 이름을 마음대로 불러 주면 됐으니까.

하늘하늘 하늘이
살랑살랑 살랑이
방실방실 방실이
사랑옵다 사랑이
멀뚱멀뚱 싱겁이
가련하다 가련이
오매불망 반쪽이
속도없는 철부지

고백하지만 네 이름을 알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사람을 찾아다녔어. 쥐손이풀을 좋아한다는 분으로부터 ‘안개초’를 듣는 순간,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했어. 하나 솔직히 환상이 사라졌어. 그때부터 넌 한낱 안개초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난 사실, 지금도 네가 입김에 날아갈까 손길에 부러질까 볼 때마다 조마조마해. 아침에 나갈 때마다 자동차 범퍼 밑에 가려진 네 모습에 안도하거든. 소갈딱지가 문드러졌을 법도 한데, 넌 대체 볼 때마다 웃음기를 흘리니 이해할 수가 없어. 게다가 한 달 남짓 꽃을 보듬고 있잖아. 사대삭신 몽땅 말라비틀어져도 꽃을 보듬고 있는 너, 분홍 안개초야! 내가 널로 하여 위안을 받을 줄 미처 몰랐어. 오늘따라 유난히 선홍빛이 도렷하구나. 폭염도 코로나도 이겨내라는 무언의 덕담으로 받아들일게.

 

안개초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내한성이 강하다. 가는 가지 끝에 눈송이처럼 희고 작은 꽃이 많이 피어오른다. 마치 안개가 깔린 것 같은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안개초라고 한다. 영명으로는 아기의 숨결 같다고 하여 baby’s breath라고 한다(서울농업기술센터, 2015).한편, 안개초는 대표적인 필러플라워(filler flower)다. 절화 장식의 꽃꽂이에서 자잘한 꽃송이로 공간을 채우고, 장미나 나리 등을 한층 돋보이게 해 준다.
안개초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내한성이 강하다. 가는 가지 끝에 눈송이처럼 희고 작은 꽃이 많이 피어오른다. 마치 안개가 깔린 것 같은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안개초라고 한다. 영명으로는 아기의 숨결 같다고 하여 baby’s breath라고 한다(서울농업기술센터, 2015).한편, 안개초는 대표적인 필러플라워(filler flower)다. 절화 장식의 꽃꽂이에서 자잘한 꽃송이로 공간을 채우고, 장미나 나리 등을 한층 돋보이게 해 준다.

 

그날 이후 안개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밥보샘, 우리같은 풀떼기가 무슨 이름이나 있겠어? 있어도 불러주질 않으니까 그냥 잡풀떼기지, 뭐. 우린 모두 한해살이야.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말은 아니야. 부디 흉보진 마. 오늘 당장 끼니를 걱정하고 누군가 갑자기 허리를 베고 뿌리를 뽑고 집터를 밀어버릴까 맘을 졸이고 산다는 거야.

한 가지 더.
우리들끼리는 나름 몇 가지 규율이 있어. 이를 어긴다고 해서 누가 어쩌지는 않아. 하지만 그런 일은 곧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린 공동 운명체(共同運命體)거든.

흙 한 알갱이면 일가붙이가 살기에 족하지. 이슬 한 방울이면 동네방네 친인척 모두 잔치를 벌이고도 남아. 몸에 밴 궁핍함은 나눔이 기본일세. ‘나 홀로’나 ‘나 먼저’란 말은 왕조시대에나 통용하던 말이지. 자연스럽게 키도 몸도 작아야 하구, 옹크린 삶을 평생 감내해야 해. 매연•황사•산성비 달고 살아도 푸념은 금물이야. 무더위•불더위•찜통더위마저 분에 넘치는 호사인 셈이지. 허리가 접히고 모가지가 비틀려도 외마디소릴 지르는 법이 없어. 어떤 경우에도 투덜대거나 뻐기면 안 돼. 모든 걸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는 거지.

그래, 밥보샘. 먼저 분명히 할 게 있어.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신들보다 연원이 훨씬 깊어. 당신네 할머니의 할머니 이전에 우린 이땅을 지키고 있었어. 또 우리는 지금도 당신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곳에서도 거뜬히 살아가고 있어. 이를테면 이땅의 물속이나 땅속은 물론 태양계를 넘어 은하계 어디에도 발붙이지 않은 데가 없어.

누가 그러는데 머잖아 이땅은 ‘거주 불능(The Uninhabitable Earth)’이래. 코로나 하나 때문에 지구인 모두가 세기말적인 팬데믹 어쩌구 하지만,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백만 종 이상 존재한다는 거지. 물론 망측한 추정이지만 말끝마다 ‘역대급’이란 말을 달고 살잖아. 산불•폭염•폭설•폭우•한파… 재앙 아닌 게 없어.

밥보 샘, 내 말을 가볍게 듣지 마. 막말로 이땅이 사라지면 당신들은 갈 데가 없어. 다시 말하지만 지구 역사상 5개의 대멸종도 우릴 어쩌지 못했어. 우린 살아남았다구.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쉬운 존재는 아니란 걸 이제 실감할까? 아무튼 제발 풀떼기라고 허투루 대하지 마.

풀숲에서 쫓겨난 풀떼기들은 이제 갈 데가 없다. 보도블록 틈새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풀떼기들의 보금자리다. 그나마 오랜 불가물과 가마솥더위로 황량하다. 풀떼기마다 죽음으로 항변하고 있다. 그런 불지옥 속에서도 안개초는 살아 있다. 그가 사는 곳은 주차 경계선과 사각 배수구 덮개판 사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필자가 사는 아파트 지상의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깨진 타일 부스러기에 산다.

순간순간이 버겁다. 하루하루가 힘겹다. ‘오늘도 무사히’는 24시간 되뇌는 기도말이다. 숨줄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가 없다. 고맙게도 밤에는 차량의 뒷범퍼가 그를 가리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바퀴가 뒤로 빠진다면, 그 순간 그는 죽음이다. 차량이 없을 때는 사람들의 통로로 변한다. 자칫하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송두리째 삶을 마감하게 된다.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내뿜는 매연으로 속이 시커멓게 타고, 땡볕이 내리쬐는 대낮에는 허옇게 문드러진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번아웃(burn out)이 된다.

그러나 그는 쉬이 스러지지 않는다. 여느 풀떼기들과 마찬가지로 현화식물(顯花植物, flowering plant)이다. 곧 죽어도 꽃을 피우고, 씨방 안에서 아기를 키우는 고등식물이다. 비가 온 뒤에 나가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사하게 반긴다.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고개를 숙인 꽃은 이미 수정을 마쳤음을 곤충들에게 대놓고 말하고 있다. 난 이미 씨앗을 잉태했으니, 나보다 나중에 핀 꽃을 찾아가라는 신호인 것이다. 그런 배려심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비롯된다.

엎드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 진 자리에 새 잎이 돋고, 그 잎 겨드랑이에서 연둣빛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천륜을 모르는 풀떼기는 없다. ‘인간’보다 훨 낫다. 피고 지고 열매 맺고, 다시 피고 지고.... 그러다가 찬바람 일면 모두 스러진다. 어미 묻힌 자리에서 이듬해 새잎이 돋아, 다시 피고 지고 맺고.... 이 세상에 천덕꾸러기같은 삶은 없다. 역대급 팬데믹도 풀떼기를 어쩌진 못한다.

 

생명은 아름답다.
살아 있어 고맙고
살아 남아 기쁘고
다시 살아 행복하다.

 

아파트 주차장 귀퉁이 깨진 타일밭에 핀 분홍 안개초. 엎드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 진 자리에 새 잎이 돋고, 그 잎 겨드랑이에서 연둣빛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 귀퉁이 깨진 타일밭에 핀 분홍 안개초. 엎드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 진 자리에 새 잎이 돋고, 그 잎 겨드랑이에서 연둣빛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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