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농부의 주적 가운데 하나이다. 아니 그렇게들 말한다. 국어사전에서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두산백과>에서는 “경작지·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이나 목본식물”로 규정하고, 아래와 같이 그 폐해를 나열한다.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됨.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물의 품질을 저하함.
•작물(作物)보다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하며 종자의 수명도 긺.
•작물이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양분과 수분을 빼앗음.
•일광을 차단하여 작물의 광합성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작물을 웃자라게 하고 지온을 저하하며, 통풍을 저해하는 등으로 작물의 생장을 방해함.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로서, 이를 전파하는 근원이 됨.

잡초란 식물학 용어는 아니다. 작물의 상대어로 사용하는 농학 개념의 용어일 뿐이다. 성경(마태복음 13장)에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통하여 잡초는 쭉정이, 가짜, 불량품 등 어떤 가치도 인정할 수 없는 형벌로 규정한다. 추수 때에 불태워질 사탄의 씨앗으로 비유된다.

그런가 하면, 고달프고 힘든 인생살이를 감수하면서 모성애로 아이들을 기르는 버림받은 여인이다(임권택, 1973년 작 ‘잡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사는, 이름 모를 이 또한 잡초이다(나훈아, 1982년 작 ‘잡초’). 잡초는 곧 하층민이나 흙수저를 의미하는 인문학 용어로 확산하고, 때로는 강고한 민초를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

“올 이른 봄에 겪었던 ‘잡초’ 사건이 기억난다. 마늘밭을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 놓은 그 괘씸한 ‘잡초’들을 죄다 뽑아 던져 버린 뒤에야 그 풀들이 ‘잡초’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 먹고 효소 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은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죄다 수고롭게 땀 흘려가며 뽑아서 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지.”

윤구병은 「잡초는 없다」(보리, 1998:91)에서 ‘잡초’의 참모습을 깨단하지 못한 자신을 뉘우치며 잡초를 새로 본다. 약이 되는 풀을 잡초로 알고 뽑아버린 무지를 탄하면서,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걸 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전남 곡성에서 토종 씨앗으로 자연농을 하는 농부, 변현단은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들녘, 2010년)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인디언 사회에는 잡초라는 말이 없다. 인디언들은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않았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 이유가 있는 생명이며,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잡초는 식용이자 약용이 되어주는 고마운 식물이었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잡초를 ‘쓸데없는 풀’로 간주한다. 인간의 필요나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나고 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금성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했다.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藥(약 약)자는 艹(풀 초)자와 樂(즐길 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풀이 곧 건강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원천이라는 말이다. 물론 약에도 독이 있다. 약독(藥毒)이라고 한다. 가려 먹어야 한다. 약용식물 가운데 목본을 제외한 것이 약초다. 약초는 잡초의 한 부류로, 둘은 결코 동떨어진 풀이 아니다.

2016년 2월에 퇴직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만나 생태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4년 전이다. 언제나처럼 ‘민들레 들여다보기’를 하던 시간이다. 보통 한 송이라고 부르는 민들레꽃은 100여 송이가 한데 피어 있는 꽃다발이다. 낱꽃을 떼어서 돋보기로 보면 꽃잎이 5장으로 갈라진 통꽃이다. 또 암술과 수술, 꽃잎과 꽃받침이 있는 갖춘꽃이다. 여느 국화과 식물과 달리 혀모양꽃이 참꽃이다.

 

잡초와 화초

 

아이들에게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하지만 의도적으로 잡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뽑아요, 밟아요, 죽여요, 나쁜 놈이요, 도둑놈이요, 기생충이요….’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공부한 민들레는 어떤가? 잡초인가, 화초인가?
잡초라고 말한 아이는 거의 없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화초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냉이, 꽃다지, 씀바귀, 꽃마리 등의 꽃을 보여주며 같은 질문을 했다. 역시 화초라고 한다. 처음 보는 꽃이라고 하면서 자못 황홀한 표정이다.

아름다움은 가까이 있다. 다만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모르고 지내니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다 보니 알아차릴 수가 없다. 학교 화단은 물론 논밭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고 하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어서 잔디를 보호하면서, 민들레를 비롯하여 위와 같은 풀을 죽이는 선택적 방제약이 아주 많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거의 동시에 표정들이 일그러진다.

 

위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냉이, 꽃다지, 꽃마리, 란타나(칠변화), 수선화, 서양등골나물이다.
위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냉이, 꽃다지, 꽃마리, 란타나(칠변화), 수선화, 서양등골나물이다.

 

위 사진 속 6종은 관점에 따라서 모두 잡초로 취급한다.
먼저, 냉이와 꽃다지는 한집안이다. 나물이나 국거리로 사용하지만 밭갈이할 때 거의 뽑아버린다. 그러다 보니 녀석들은 누구보다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농부가 밭에 나오기 전에 꽃을 피우고 서둘러 씨앗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꽃마리도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줄기의 끝부분에 짧은 꽃자루를 가진 꽃들이 말린 상태로 달려 있다. 즉, 꽃이 필 때 태엽처럼 둘둘 말려 있던 꽃들이 펴지면서 밑에서부터 한 송이씩 피기 때문에 꽃마리란 이름이 붙었다. 꽃마리는 물망초의 축소판으로 꽃 모양이 거의 같다. 다만, 꽃마리는 우리 자생종으로 꽃이 좀 작고, 물망초는 도입종으로 꽃이 좀 크고 색깔이 다양하다. 둘 다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me-not)’이다.
란타나(lantana)는 원산지가 열대 아메리카이다. 우리는 흔히 집안에서 곱게 기르지만, 아메리카 열대 지역에서는 잡초로 취급한다. 그만큼 흔하기 때문이다. 꽃 색은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다양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 색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칠변화(七變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는 연못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물속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로 유배 갔을 때, 사람들은 소도 먹지 않는 독초로 알았다. 보리갈이 할 때 모두 뽑아 버릴 정도로 아주 흔한 잡초였다.
끝으로 서양등골나물은 미국등골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의 토종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학교 교정은 물론 공원, 산, 들, 강변 할 것 없이 곳곳에서 강세를 보인다. 환경부의 ‘생태계 교란 생물 지정 고시(시행 2021. 8. 31.)’에 따르면 돼지풀을 비롯하여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가시상추, 갯줄풀, 영국갯끈풀, 환삼덩굴, 마늘냉이 등 모두 16종이 생태 교란 식물이다.

잡초와 화초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떻게 활용하는지, 가치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보는 눈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바람에 꺾인 둥굴레 꽃줄기를 보며 안타까워하지만, 둥굴레 차를 내야 하는 농부는 둥굴레를 모조리 낫으로 쳐버린다. 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뿌리를 취할 뿐이다. 꽃을 즐기려는 선비는 매화나무라고 부르지만, 열매를 중시하는 농부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 밀밭에서 자라는 보리도 때에 따라서는 잡초가 되지만, 고추밭에 자라는 쇠비름도 누군가에게는 오행초(五行草)라 하여 귀한 약재로 취급한다.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음을 안 원효대사가 뭐라고 했는가?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대오(大悟)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잡초를 말하면서 감히 원효대사를 인용하다니 황송쩍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잡초니 화초니 모두 마음의 산물이다.

 

‘잡놈'도 즐겨 쓰는 말이다.
유월에 잡는 새우 맛이 으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유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육젓이 제격이다. 근데 돈이 궁한 이들이 5월 사리때 잡는다. 5월 사리에 잡으면 그물 속에 새우 말고 온갖 잡것들이 들어 있다. 밴댕이를 비롯하여 갈치, 황석어, 멸치, 학꽁치, 서대, 하모, 꼴뚜기, 칠게, 갯가재가 넘친다. 새우젓이 아니라 새우 잡젓이 되고 만다. 오사리잡놈은 새우 잡젓에서 온 말이다. 천하의 잡놈이란 뜻이다.

잡초와 잡놈을 말하다가 ‘잡(雜)’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본다. 잡지를 비롯하여 잡채, 잡곡밥, 잡탕, 잡념, 잡젓, 잡종, 잡담, 잡내, 잡뼈, 잡음, 잡화, 잡일, 잡목, 잡학, 잡상인, 잡종견, 잡놈, 잡년, 잡것, 잡범….

‘잡범’에 이르자 누군가 갑자기 큰소리로 ‘최순실!’이라고 했다. 4학년 아이였다. 이미 알 건 다 아는 아이들이다.

최순실’은 물론 감옥에 있는 사람 누굴 붙잡고 물어도 스스로 잡범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어느 누구도 ‘나는 잡범이오.’라고 고백하는 법도 없다. 재밌는 것은 ‘잡범’이란 말을 즐겨 쓰는 이들이 따로 있다. 의원 배지를 달고 있거나 그런 아류들이다. 무슨 무슨 『특권』이 무한정 보장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건뜻하면 잡범 타령이다. 한결같이 방귀깨나 뀌는 이들이다. 말이 참 거칠고 상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말하는 이나, 그를 두둔하는 이나, 그걸 대서특필하는 이나, 그걸 인용하고 회자하는 이들 모두 도긴개긴이다.

“무슨 전직 (박근혜) 대통령을 「잡범」 취급을 한다. 나라가 미쳐 전직 대통령을 잡아넣는 데에 혈안이 됐다.”(김진태 <국회의원>, 오마이뉴스, 2018.02.28.)

“살인·강도나 「잡범」도 아니고, 한 나라의 정권을 담당했던 전직 대통령들 아니냐? 당사자들 입장에선 2년, 3년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이재오<국민의힘 상임고문>, KBS, 2021.01.04.)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폄하하는 「잡범」보다 ‘이명박근혜’는 훨씬 더 죄질이 안 좋고 형량도 무겁다.”(정청래 <국회의원>, 서울경제, 2021.01.07.)

"최강욱이 윤석열 고발? 이 천하의 「잡범」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머니투데이, 2020.01.24.)

“우리가 검찰당이면 (더불어민주당은) 「잡범」당 혹은 죄인당이냐?”(김웅 <국회의원>, 스카이데일리, 2021.03.07.)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에 안전하겠나?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감옥 보냈다. 거기다가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다). 국사범(정치범)도 아니고 「잡범」으로. 대통령을 모욕주고 「잡범」 취급했다.”(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세계일보, 2019.06.04.)

“박영수 포르쉐 해명, 「잡범」도 하지 않을 조악한 변명”(원희룡 <제주지사>, 한국경제신문, 2021.07.08.)

감옥에 가지 않은 이까지 싸잡아서 ‘잡범’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일러 ‘천하의 잡범’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스스로 ‘천하의 잡놈’임을 고백하는 말로 들린다. 오사리잡놈이 따로 없다. 오색잡놈(五色雜놈)이라고도 한다.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하는 잡놈을 이르는 말이니, 잡놈에게도 계층이 있다는 말이다. 함부로 ‘천하의 잡범’이라 뇌까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잡범」이란 무엇인가? 누굴 두고 그렇게 불러야 하는가? 그 실체가 궁금하다. 이에 대하여 2019년 7월 24일, 국립국어원에 질의했다.

“3개 단어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잡범 雜犯 : 정치범 이외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범죄. 또는 그 범죄를 지은 사람.
•정치-범 政治犯 : 국사범(국가나 국가 권력을 침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국사-범 國事犯 : 국가나 국가 권력을 침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불법 행위. 또는 그런 행위를 저지른 사람. ≒정사범ㆍ정치범.

아무리 생각해도 잡범과 정치범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차이를 설명해 주세요.”

 

 

그로부터 며칠 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이다.

[답변] 잡범과 정치범

안녕하십니까?
잡범과 정치범의 차이를 문의하셨는데, 이곳에서 사전의 뜻풀이 외에 더는 답변해 드릴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특히, 사전에서 보셨겠지만 '정치범'이라는 표제어는 '법률' 전문 용어로서 올라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범, 잡범 등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법률 용어 사전 등 법률 관련 전문 서적을 직접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문의해 주셨지만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국어사전 풀이가 오히려 더 옹색하다. “정치범 이외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범죄꾼”이 잡범이라면, 잡범은 태질 정도로 그쳐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범이 “국가나 국가 권력을 침해한 죄인”이라면, 그들에게는 교형(絞刑)이나 참형(斬刑)이 마땅하다. 때로는 능지처참(陵遲處斬)이나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해도 싸다. 왜냐하면, “국가나 국가 권력을 침해한 죄인”은 곧 나라와 겨레를 등진 반역자요 매국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원 배지 나부랭이를 단 이들은 ‘정치범’을 무슨 신념에 찬 양심수나 순교자로 포장하고, 무죄 방면을 주장한다.

최근에 영아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학대,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모(29·남) 씨를 두고 날을 세운다. 윤석열 후보가, 사형시키겠다고 한 홍준표 후보를 ‘두테르테 식’이라고 비난하자, “귀하는 (문재인이라는) 두테르테의 하수인이었다.”며 되받아친다. 이에 장성민 전 의원은 “자유당식 건달 정치를 하고 있는 윤 전 검찰총장이, 한국과 우방국 필리핀과의 국가 외교를 치명적으로 훼손시키며 국익 침해 행위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한다(세계일보, 2021.09.01.).

‘잡범’, ‘두테르테’, ‘하수인’, ‘자유당식 건달 정치’, ‘국익 침해 행위’란 말이 어지럽게 춤을 춘다. 누가 더, 기본적 인권인 사람의 생명권을 보장하려 하는가? 아니 누가 더,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정의의 사도일까? 들으나 마나 뻔한 답을 구하려니 객쩍기 그지없다. 공염불이다. 앞에서 말한 양모(29·남) 씨라는 ‘잡범’을 말하기 전에, “국가나 국가 권력을 침해한 정치범”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수백 수천의 천추원혼(千秋怨魂)과 그 유족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볼 일이다.

한낱 필부가 한 마디 보탠다.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의당 육형(肉刑)을 당하고도 남을 저들의 등뒤에서 사바사바하고, 가증스럽게 의뭉떠는 자는 정치인이 아니다. 당신이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그런 ‘잡범’을 화두로 삼기 전에, 온 산하를 피로 물들인 사전적 의미의 ‘정치범’들을 어찌할 것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치 떨리는 저들의 민낯을 까발리고, 낱낱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려야 하지 않은가?

그럴 용기도 소신도 없다면, 당신은 「그때」 누구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고백하라. 그도 저도 아니라면 ‘정치’를 들먹이지 말라. 그러고도 당신이 정치 운운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당신을 천하의 잡범인 정치꾼, 모리배(謀利輩)라고 단언한다. 육형은 곧 중국에서 육체에 과하던 형벌임을 덧붙인다. 먹으로 몸뚱어리에 죄명을 새기는 ‘묵(墨)’, 코를 베는 ‘의(劓)’, 발뒤꿈치를 베는 ‘비(剕)’, 남자의 고환을 썩여 떼는 ‘궁(宮)’, 팔다리를 자르는 ‘단지(斷肢)’, 손목을 자르는 ‘단수(斷手)’, 목을 베는 ‘대벽(大辟)’ 따위가 있었다.

 

조선 시대 사형 제도의 하나인 교형(絞刑)과 참형(斬刑) 모습. 이는 역모나, 살인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출처 : KBS 역사저널 「그날」, 2019.05.09.).
조선 시대 사형 제도의 하나인 교형(絞刑)과 참형(斬刑) 모습. 이는 역모나, 살인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출처 : KBS 역사저널 「그날」, 2019.05.09.).

 

(계속)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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