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정야

주 1회씩 한시(漢詩)를 연재, 우리들의 눈을 맑히는 분이 있다. 함께 교정에서 봉사하는 장산(長山) 이동일 선생이다. 아래는 얼마 전에 그분이 올린 글이다.

「계강자(季康子)는 춘추 시대 말기의 노(魯)나라 사람으로 대부(大夫)가 되어 국정을 전담했다. 그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아래와 같이 답한다.

“政者, 正也(정자, 정야)”

이 말을 풀이하면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 된다. 즉, 정(政)이라는 글자의 본뜻은 나라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니, 천하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12편에 나오는 말이다.

“子帥以正 孰敢不正(자솔이정 숙감부정)”

이어지는 원문이다. 위에서 ‘帥’ 자는 ‘본보기 솔’로 ‘본을 보이다’, ‘솔선수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선생이 바른 처신으로 솔선수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게 행동하겠습니까?’는 말이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다시 묻는다.
“만약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떻습니까?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공자는 “어찌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정사를 논하시렵니까? 그대가 선을 하고자 하면 백성도 으레 선해질 것입니다(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유하며, 풀은 바람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쓰러집니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안연 19편에 나오는 말로, ‘偃’은 ‘쓰러질 언’ 자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모태 신앙과 같은 것, 공자는 계강자가 사람의 목숨까지 어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쭙잖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비유적인 표현을 들어 일갈한다. 여기에서 ‘군자’와 ‘소인’은 각각 위정자와 백성을 말한다. 위정자의 덕을 바람에 비유하고, 백성의 덕을 풀에 비유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 풀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고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모든 건 위정자가 할 탓이다는 말이다.

공자는 정치가를 본을 보이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공자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본령일 뿐이다. 요순(堯舜)시대가 도래한들 삼베옷을 입고, 띠풀과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푸성귀국으로 연명하는 임금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왕위 '선양(禪讓)'은 고사하고, 재위 시절부터 퇴임 후 자신과 살붙이들의 안위부터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참담하다.

대립은 파벌을 낳고 갈등을 조장한다. 갈등이 깊어지면 대립각이 날카롭다. 그럴수록 다툼은 격화되고 사람이 짐승으로 돌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사는 결국 끼리끼리 으르렁대는 정글 법칙이 지배하고, 그 정점에 정치꾼 모리배가 버티고 있다. 내로라하는 조폭도 드러내 놓고 활보하진 않는다.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낄 게 없는 저들은 무소불위를 자랑한다.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오사리잡놈 같은 정치꾼 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평생 그 휘하에서 핍진한 상태가 된다. 속절없이 몸뚱이까지 바치고 뺏기고 뜯기고 짓밟히면서 끝판에 떼송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렇다! 政(정사 정) 자는 正(바를 정) 자와 攵(칠 복)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 자에 攵 자가 결합한 政 자는 ‘바르게 잡는다’라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나 ‘정사(政事)’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네이버, 디지털 한자 사전 e-한자). 결론적으로 정치가는 먼저 제 몸부터 바르게 다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정한 세상을 바르게 잡는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1주년 때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정치 좌우명으로 꼽았으리라.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정치인 하면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공무원'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다. 선거에 의해 취임하거나, 지방의회나 국회 동의를 얻어서 임명되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고작해야 국회도서관 몇 번 드나든 게 전부인 내가 감히 그런 위인들을 어찌 알겠는가. 하다못해 그 분들에게 딸려 있다는 보좌관•비서관•비서•인턴 한 사람 아는 이가 없다. 당연히 정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길가에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노래를 부를 위인도 못된다. 이를테면 이런 노래 말이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거듭 말하지만 나 같은 필부가 감히 ‘정치’를 논하겠는가? 잠꼬대 같은 소린 말자. 다만, 소위 정치깨나 한다는 사람을 보면 연기파 배우들도 혀를 내두르고 남을 자들임을 안다. <정치가>는 간데없고 <정치꾼>만 난무한다. 「가」를 「꾼」으로 한 글자만 바꾸면 그 흉악한 몰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참으로 만감이 교집한다.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극혐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위장과 눈속임의 귀재들도 본뜨지 못하리라.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시사 코미디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이 땅의 정치판 자체가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이기 때문일 것이다.

걸핏하면 ‘경제’를 살린답시고 시장에 들러 국밥집 할머니 손 한 번 잡고, 생선가게 아주머니랑 사진 한 장 찍고, 포장마차 기웃거리며 어묵 꼬챙이를 문다. 지하철을 타 보는데 교통카드 단말기를 찾지 못해 절절매고, 본인은 물론 자식까지 군면제받은 자가 항공점퍼는 왜 즐겨입는지, ‘유전면제 무전입대’의 표상인 주제에 말이다. 분노와 비방과 궤변과 거짓과 거드름을 빼면 남는 게 있을까? 패거리즘(牌거리ism)의 정점에 서 있는 자들이다. 한마디 보탠다. 몽클레어 패딩 입은 손녀를 시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까지 시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제발 “뼛속까지 서민”이라고 우기진 마라. 가증스럽지 않은가? 정상 외교를 펼친다고 떠벌리지나 말지, 딸이랑 손녀는 왜 특별기에 태우고 다니면서 혈세를 축내는가. ‘구신 씻나락 까묵는’ 허튼소리 닥치고, 제발 ‘차카게’ 좀 살자.

사실이 이런데도 남녀노소를 떠나서 앉으나 서나 타령질이다. 집타령•돈타령•신세타령•백신타령•빨갱이타령이 도처에서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니 편•내 편•걔 편이 혼재한 채 사납게 할퀴고 물어뜯고 들볶으니, 코로나도 신물이 나서 도망가려는 참에 때마침 ‘위드 코로나’ 소리가 들려 온다. 아하! 그래, 얄궂기도 하지. <위드 정치꾼>이로군! 우린 모리배를 옆구리에 끼고 살아야 할 팔잔가 보다.

대구에 가면 아들이라 하고, 광주에 가면 사위라고 하더니, 공주에 가서는 손자로 둔갑한다. 촌에 가서는 조상 대대로 전답을 일구었으니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씨부렁거리다가, 서울에 와서는 학연•지연•혈연에 인터넷 인맥까지 까발리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제2의 본향이라고 유세를 떤다. 두 눈알 희번덕거리며 기억마저 취사선택하는데, 말끝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잡것들이라 낯짝이나 있을까? 번연한 거짓말까지 고개 빳빳이 쳐들고, 정치적인 술사라고 눙치려 든다. 이를 거론하는 자는 여지없이 세상 물정 모르는 종간나새끼로 규정하고, 그래도 홉뜨는 자 있다면 그는 영락없이, 철딱서니 없는 깡촌의 무지렁이로 치부하고 만다. 기고만장한 모리배들의 속살이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정치(政治)다. 사전에서는 그 ‘정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정치가라고 했다. 그러나 인제 대한민국에서 정치가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 유치원부터 높은 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디 출신인가?
- 출생지•본적지•원적지가 어디인가?
- 성과 본관(本貫)과 파계(派系)가 어디인가?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준거점을 속치부하고, 이와 별도로 텃새•철새•나그네새 가리지 않고, 처삼촌은 물론 사돈집 재당숙까지 들먹이며 기어이 유사점을 찾아 무리를 늘려나간다. 그 안에서도 성골인지 진골인지 육두품인지 등급을 매겨 비빔밥 속 당근인지 밥알인지 저울질을 한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패거리들은 벌떼처럼 끼리끼리 굉음을 내면서 동작동에서 광주로 봉화로 몰려다닌다. 노회한 이들일수록 소리가 없다. 겹겹이 장막을 치고 벽 안에서 원격으로 조정한다. 칼잡이•망나니•졸개를 앞세워 망을 보고 집적거린다. 일명 간보기를 한다. 기왕에 ‘벌떼’로 규정했으니 물고 뜯고 찢고 빨고 핥는 ‘주둥이’ 자체가 살상 무기임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따로 없다. 수틀리면 한집에 살아도 무참하게 격퇴하고, 동족이든 아니든 자기 아닌 누구든지 힘으로 제압하고 압살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종족의 체내•외에 자기 종자를 싸지르는 기생충이요, 날강도다. 남의 살과 피를 발판삼아 살아가는 흡혈귀다. 이제 그 뒤를 붙좇는 글쟁이•말쟁이•사진쟁이들은 패거리 두목의 밭은기침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받아적고 옮기느라 분주하다. 우두머리의 무지가 탄로 날 때마다 술사와 모사꾼은 와전이다, 왜곡이다, 윽박지르면서 숲을 보라고 되레 큰소리친다.

사실, 나 같은 퇴물은 아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40년 교사 생할 퇴직금 2억 받아, 아들 장가갈 때 눈 딱 감고 1억 떼어준 게 전부니 말이다. 누구는 아비 잘 만나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5년 9개월 만에 어떻게 50억 원이라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아니 히어로라 불리던 조기축구회 공격수가 어떻게 산업재해성 건강 악화로 위로금을 받았는지, 아니 산재 신청도 안 한 자를 어떻게 중재해로 판단했는지, 하나에서 열까지 신묘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나같이 무능한 늙다리는 그렇다 치자. 믿을 건 자유롭고 정의로운 우리 20•30 세대다. 일손 다 내려놓고 매달려서 겹겹이 싸인 그 경이로운 속살을 파헤쳐야 하리라.

허나 고작 50억 원으로 덮고, 물꼬를 돌리려는 저들의 꼼수에 휘둘리지 마라. 드러난 것만 해도 그 백배 천배에 이르지 않은가. 화천대유는 곧 현대판 복마전이다! 아무려면 최고 존엄(?)이라고 무사할까? 그런 류의 악의 소굴을 낱낱이 소탕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공정을 말하지 마라. 정치를 내세우지 마라.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면.

 

위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열린공감 TV, jtbc, 한겨레 그림판,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위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열린공감 TV, jtbc, 한겨레 그림판, MBC 뉴스 화면 갈무리

 

몇 번이고 되묻는다. 우리들의 정치가는 어디 있는가? 이 땅에 정치가가 있기나 한가? 잠룡(潛龍)인지 잡룡(雜龍)인지 눈을 씻고 봐도 거짓과 탐진치(貪瞋癡 : 탐욕•노여움•어리석음)가 판을 치는 이무기들뿐이다.

넉살도 좋지 그래. 부처님오신날에는 절에 가서 합장하고, 성탄절에는 교회 가서 성호를 긋는다. 지나가던 개도 소도 웃을 일이다. 무슨 신심이 있어 그러겠는가. 순전히 표를 구걸하기 위한 기만과 술책에서 비롯된다. 신앙까지 팔아넘기는 영혼팔이에 다름 아니다. 그런 자에게 표를 주는 자 또한 신심 없는 거짓 종교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땅의 정치꾼이 여기저기 집적거리며 내지르는 구호나 헛공약까지 무슨 경전이 되고, 이를 옹호하는 자들이 흔들어 젖히는 태극기가 팔도에 범람한다. 그딴 걸 성경처럼 떠받드는 예수팔이들은 날만 새면 정치꾼을 찬송하고, 불경처럼 섬기는 부처팔이들은 눈만 뜨면 모리배를 게송(偈頌)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관이다.

그렇다면 이를 긍휼히 여길 신은 이 땅에 존재하는가? 어디 계신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신을 믿는 이들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단언컨대 예수나 부처가 청와대에 좌정해도 하루를 못 버티고 돌아앉고 말 것이다. 부처쟁이 많아도 부처를 거역하고, 예수쟁이 넘쳐나도 예수를 따르지 않으니, 천근(千斤)이나 되는 불상이 산꼭대기에 앉아 굽어보고,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십자가는 천근(天根)에 닿아 있을 뿐,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들은 알지 못한다.

 

왼쪽 : 설악산 신흥사 석불(불교신문, 2010.10.30.), 오른쪽 :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전경(한겨레신문, 2018.01.12.)
왼쪽 : 설악산 신흥사 석불(불교신문, 2010.10.30.), 오른쪽 :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전경(한겨레신문, 2018.01.12.)

 

(계속)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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