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가 주최한 비상대책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에 레이첼은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를 받는 즉시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긴급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광기어린 집단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 레이첼을 아끼는 사람으로부터."

레이첼은 이 메시지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알렉스를 비롯한 무리가 거액의 자산을 노리고 돌발적인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레이첼도 짐작하고 있었다. 레이첼은 폰의 앱을 다시 확인했다. 여차직하면 앱에 깔려있는 비상 버튼을 누르면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레이첼이 집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살벌했다. 거실에는 슈만이 밧줄로 꽁꽁 묶인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발란스키와 샤몽키츠가  슈만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고, 또다른 정체불명의 사내가 레이첼을 맞이했다. 월식 때 죽었다가 살아난 딜마다드는 총을 들고 창밖을 경계하고 있었다. 알렉스가 레이첼을 슈만 옆에 꿇어 앉힌 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슈만과  레이첼에게 말했다.

"고통스럽게 죽을지 편하게 죽을지 선택해라.  유서를 쓴다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테지만 거부한다면 이 밤이 얼마나 고통스런 밤이 될지 실감하도록 해주지."

슈만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그만큼 안락하게 살았으면 되지 않았나?  이제  생을 마감하면 저세상에서 영원히 안식을 누릴수 있을 테니. "

레이첼이 물었다.

"유서를 쓰고 나면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유서를 쓰고 나면 저기 천장에 설치된 밧줄에 목을 매어 죽는 거지. 아주 편하고 고요하게."

"유서를 거부하면?"

"저기 드릴로 이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주지. 샤몽키츠가 그런 거  전공이거든."

슈만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말했다.

"유서를 쓸 테니 문구를 불러라."

"이렇게 써라. - 우리는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지고 목숨으로 사죄하려 한다. 남는 유산은 모두 알렉스와 검은태양단에 기증할 것을 유언한다. 본인 슈만은 레이첼과 더불어 위 사실을 확인하고 어떤 협박이나 위협도 없이 자발적으로 결정하였음을 확인한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레이첼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알렉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는 되지 않았나?  이 집에는 안팎으로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네이비실 보안청에서 경찰들을 대동하고 10분 후에 들이닥칠 예정인데 어찌하려고 이러시나. "

레이첼의 말에 알렉스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 CCTV화면으로는  우리가 이 집을 방문한 친밀한 이웃들로 보일 텐데 무슨 걱정인가? 시간이라도 끌어보겠다는 게야?  나를 놀리는 거야, 지금?"

알렉스의 겁박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레이첼이 맞받아쳤다.

"모바일 비상 버튼을 눌렀거든. 이 버튼이 눌러지면 15분 이내로 경찰이 출동하게 되어 있지."

그러면서 비상용 모바일 앱을 알렉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마침 밖에서 경찰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경찰들이 곧바로 레이첼의 집을 두드렸다.

"버튼을 누른지 벌써 15분이 지났나 보군. 알렉스! 이제 다 끝났어."

알렉스의 표정이 험악해지더니 칼을 겨누며 레이첼에게 다가가려 하자 어디선가 금속구슬이 튕겨 나와 알렉스의 눈을 맞혔다. 알렉스가 악!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동시에 총을 들고 창밖을 경계하던 딜마다드도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알렉스를 비롯한  일당들을 모조리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 사이에 거실 뒤에서 금속구슬을 날렸던 사나이는 어둠 속으로 슬며시 사라졌다. 레이첼은 그가 모사드 요원임을 알고 있었다. 레이첼이 염려가 된 모사드에서 이미 레이첼의 집에 특수 요원을 잠입시켜 놓았던 것이다. 

(출처 : PxHere)

경찰들이 알렉스 일당을 체포하여 차에 태우려 할 때 또 다른 형사들과 기동타격대가 대거 들이닥쳤다. 인터폴에서 급파된 형사들과 기동탸격대였다.  기동타격대까지 출동한 것은 알렉스가 그만큼 위험인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체포영장을 제시하며 알렉스의 신변을 인계받았다. 

인터폴 형사들과 아울러 기동타격대까지 가담하여 알렉스를 긴급체포한 배경은 아이러니하다.  리옹에 있는 인터폴 지국장 자크베르는 메로나 마을의 둥가돌프로부터 알렉스의 신원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렉스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렉스가 태고 마을로 이주하기 전에 이름이 히치파농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히치파농이 교통사고로 얼굴을 성형수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히치파농은 인터폴 적색 수배자로 인터폴에서 수 년 간 찾고 있던 요주의 인물이었지만 얼굴과 이름을 바꾼 알렉스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자크베르가  즉시 알렉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메로나 마을로 형사들과 기동타격대를 급파했던 것이다.

수갑이 채워진 채 기동대와 인터폴 형사들에게 끌려가는 알렉스가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요람의 세포에서 무덤의 구더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악한 운명의 희생양에 불과할 뿐이야."

알렉스가 읊조린 것은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에 나오는 대사였다. 그는 끝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운명을 탓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그 자리에서 뮌헨교도소로 압송되었다. 

이로써 메로나 마을의 근심거리가 일거에 해소되었다. 여행작가 스티브를 사칭한 조나단은 런던 교도소에 수감되어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을 예정이고, 알렉스 또한 뮌헨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인터폴 적색수배자로 체포되어 중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을을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넣었던 어둠의 세력이 일거에 물러가자 메로나 마을은 서서히 예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조나단과 알렉스가 구속되자 그들과 영합하며 부화뇌동했던 지할퐁크는 언젠가부터 마을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지할퐁크는 메로나 마을 설립 초기에 잠시 행정실장을 맡았다가 비리를 저지르고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등 다비드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여 해임된 바 있다. 지할퐁크가 검은태양단의 비밀조직원이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지할퐁크는 극우 조직의 일원으로 코로나 백신을 끝내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파이며 다혈질인  어거스틴이 그 소식을 듣고 픽 하고 비웃음을 지었다.

"지랄방구 같은  녀석이  제  분수도 모르고 까불대더니,  기어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평화를 되찾은 메로나 마을에서는  주민들로 구성된 평의회를 구성하여 마을 기금을 운영하기로 했다. 평의회에서 논의를 거듭한 끝에  목적과 활동처별로 구분하여 총괄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지구환경과 기후위기를 위한 녹색운동 기금, 아랍과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기금 그리고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재속 프란치스코 활동 기금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을의 기금을 주민들의 행복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엘리스는 아르테미스 제사장의 축복을 받으며 닉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에 엘리스는 닉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했고, 닉은 엘리스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투란도트에서 활동을 하겠다는 엘리스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조나단과 알렉스의 음모에 잠시 흔들렸던 레이첼과 슈만 부부는 다시 한 쌍의 원앙이 되어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어나갔다. 레이첼이 슈만에게 모든 걸 고백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 PIXNIO)

 

그로부터 10년 후.

닉이 다비드의 뒤를 이어 메로나 마을의 수장이 되었고, 카포팅어가 사라폰티의 뒤를 이어 윤리위원장직을 맡았다. 카포팅어는 부친이 신장위구르 출신이고, 모친이 프랑스인이다. 지난 10년간 신장위구르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카포팅어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신장위구르에서 이름이 바뀐 동투르키스탄 국가로부터 최고영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레이첼은 어느날  산책을 하며 슈만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리라 다짐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고 있었고  나무들은 햇빛을 맞으며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심중에 숨겼던 진실을 고백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이 아닌가.  레이첼은 슈만에게 자신이 모사드였으며, 모사드의 지시에 따라 다이아나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고백했다. 놀랍게도 슈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슈만은 아무 말 없이 레에첼을 안아 주었다.

"그 어떤 것도 당신 탓은 아니오.  당신은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일 뿐, 아무 죄가 없소."

레이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이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한 참회의 눈물인지, 아니면  슈만에 대한 감사의 눈물인지는 레이첼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닉과 결혼한 엘리스는 투란도트의 비숍이 되었다. 엘리스는 모친의 유언을 이행했다. 모친의 유언은 오키나와 독립을 위해 애써달라는 것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본령이지만 19세기 말까지는 류큐 왕국이었다. 엘리스가 투란도트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투란도트가 오키나와의 독립이라든가 신장위구르와 티벳의 독립을 비밀리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투란도트에서 오키나와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결과, 얼마 전에 오키나와는 드디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독립한 이후 오키나와는 전 주민의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에 편입할 것을 결의하였다. 엘리스의 모친은  고려의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에 쫓겨 오키나와로 피신했을 때 오키나와를 지배했던 삼별초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투란도트의 비숍이었던 제레미는 비숍 자리를 엘리스에게 물려주고,  그보다 상위 조직인 오르페의 사무총장이 되어 '지구의 미래를 위한 시민연대' 활동에 열심이었다.  오르페(ORFHE)는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한 기구'로 글로벌제왕협회가 지원하는 조직이다. 글로벌 제왕협회는 대한민국의 한강왕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부이사장은 유럽의 오토왕이 맡고 있다. 한강왕은 한강 유역에 모여 살던, 한국의 고대국가 고구려와 백제, 발해의 유민이 옹립한 왕으로 현재의 왕은 79대 한강왕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제왕협회는 공식적인 국제기구는 아니지만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중에 역사와 전통을 고려하여  엄선된 민족만이 글로벌제왕협회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현재 이집트와 이스라엘 , 한국과 인도 등10여 개 국가만이 글로벌제왕협회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어느날 제레미가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 위스콘신에 거주하는 초순진으로부터 온 메시지다.

"한때 한강왕에게 반란을 일으켜 분란을 일으키더니 이제 어느새 한강왕의 충신이 되어 오르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나도 이제 오르페 미주 지국장으로 임명받아 다음 달부터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한민족의 후예로서 발해의 유민과 고구려 백제의 유민이 힘을 합쳐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었으니 영광스럽기 그지없군요. - 초순진 "

제레미는 한국계 영국인으로 한국 이름이 모연중이다. 부친이 한국 고대국가인 발해의 후예이고, 모친은 영국인으로 제레미 일가는 유럽에서 메이저급 보안용역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제레미는 예전에 한강왕에게 반기를 들던 때를 떠올렸다. 비록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제레미 일가는 유럽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한강왕의 뜻을 펼치기로 의기투합한 바 있다. 

당시 초순진은 한강왕과 합방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자취를 감추었다가 지난 해부터 한강왕과 연락이 닿았다. 차기 한강왕의 야망을 내려놓은 초순진은 미국에서 낳은 딸이 성년이 되면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기를 바라는 탄원서를  한강왕에게 올렸다. 한강왕이 초순진의 청원을 받아들여 멀리서나마 뜻을 같이하기로 하여 오르페 미주 지국장을 맡게 된 것이다.   

민중운동과 동행하는 교회 / 출처 : catholicworker.co.kr
민중운동과 동행하는 교회 / 출처 : catholicworker.co.kr

 

어느날 투란도트의 비숍인 엘리스의 폰에 메시지가 떴다.

- 알렉스가 뮌헨교도소에 수감 도중 드좀증 증세가 악화되어 스위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음. 그 병원은 휴바콤과 제휴하여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데 드좀증에 걸린 환자들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투란도트에서는 생체의학 전공자인 스치나코 요원을 스위스 정신병원에 침투시켜 휴바콤과의 커넥션을 밝히도록 지시했다. 엘리스는 카포팅어와 협력하여 긴밀하게 상황에 대처하기 로 했다. 

메로나 마을은 지난 10여 년에 걸쳐 전 세계에 50여 개의 분점 마을을 설립했다. 다비드는 전 세계에 있는 메로나 마을 연협회장이 되어 마을의 활동을 지도 감독하고 있고,  사라폰티는 연합회 자문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레이첼은 연합회의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비드가 저녁 식사후 소피아와 가볍게 산책한 후 어딘가로 이메일을 송부했다. 수신자는 오르페의  이사장인  한강왕이었다. 

- 메로나 마을 초기부터 기금을 지원해주셔서 오늘날 평화와 행복의 터전이 되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오르페 이사장님이자 글로벌제왕협회장이신 한강왕께 더할 나위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사장님의 지원과 격려에 힘입어 오늘도 전세계에 걸쳐 '정의 평화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활동이 왕성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왕의 평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비드는 과거를 회상하며 동트는 새벽 놀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신의 섭리를 묵상하며 다비드는 깊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  

그때 평생의 지인들이 다비드를 찾아왔다. 줌(zoom)으로 열리는 전 세계 메로나 마을 연합회 화상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연합회 자문위원장인 사라폰티와 연합회 감사를 맡고 있는 레이첼이 아침 일찍 방문한 것이다. 

"어서들 오시게. 그대들이 있어 오늘날의 메로나 마을이 이렇게 평화와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걸세."

사라폰티는 기쁨에 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10년 전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요. 그런 역경의 세월을 극복하고 나니 이렇게 좋은 시절이 오네요."

다비드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답변을 대신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그러자 레이첼이 그다음 구절을 읊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출처 : PIXNIO)
(출처 : PIXNIO)

 

다비드는 사라폰티와 레이첼과 더불어 덕담을 나누며 메로나 마을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했다.  메로나 마을의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그날 따라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햇볕은  따사롭고 화사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줌 화상 회의를 마치고 홀로 오솔길을 산책하는 다비드에게 바람의 정령이 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과 공간이 속삭이는 밀어였다. 공간이 시간에게 속삭였다.

"내가 믿을 건 너밖에 없어. 니체의 말대로 인간이 대지에 피부병을 잔뜩 옮겼거든. 나는 쉴 곳이 없어졌어. 나는 너무 비참해. 너에게 나의 운명을 맡길까 해. 미래에게."

"아냐, 공간!  현재를 포기하면 미래도 없어. 너무 낙심하지는 마. 꿈과 소망을 잃지 않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야. 오로빌이나 메로나 마을의 주민들같이."

"그렇긴 해. 세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지만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도  겨우 숨을 쉬고 있어."

"그래. 공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봐. 현재의 지구적 상황은 암울하지만 그 암울한 현실 속에 평화와 행복을 이룰 씨앗이 숨어 있으니까 말야. 과거의 문명이 몰락하는 이 시대가 지나가면 곧이어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맞이하리니."

"그럴까. 현재의 너보다 미래의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진흙탕 물 같은 연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이 찬란한 미래는 혼탁한 현재를 터전삼아 다가올테지. 앞으로는 현재의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노력해볼게."

  <끝>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물은 특정 국가나 단체, 종교와 무관하고, 특정  마을이나 인물과도  무관하며,  이는 작가의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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